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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만의 따뜻한 시선과 마주하다
김중만의 따뜻한 시선과 마주하다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4.11 2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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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파인더 너머
 

사진만큼 단시간에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또 있을까. 오랜 퇴고를 거쳐 완성한 한 편의 시처럼, 정성 들여 수줍게 써내려간 연애편지처럼 인물도 장르도 다양한 그의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남들이 스쳐지나가는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사진작가 김중만. 시대의 기록자로 살아가는 그와의 만남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취재 김선영 기자 | 사진 권오경 기자

# 순수예술에서 새로운 인생을 발견하다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다.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훌쩍 떠나 새로운 세상을 담아오는 모습은 흡사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제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레게 머리와 귀걸이. 특유의 블랙 스타일의 그를 만날 것을 상상하니 나에게도 약간의 일탈(?)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블랙 와이셔츠를 골라 입어본다. 인터뷰 전날 괌에서 돌아왔다는 그. 이제는 내가 찍고 싶은 사진만 찍을 것이라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이재만 괌에는 어떤 일로 다녀왔나요?
김중만 나비를 찍으러 간 여행이었어요. 3개월 전에 잠깐 2∼3일 쉬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우연히 수백 마리의 나비들이 있는 걸 봤어요. 마치 낙원의 한 장면 같았죠. 몇 장 찍으려고 했는데 실패해서 이번에 다시 찾아간 거였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때가 짝짓기 철이라 유독 나비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알을 까고 있는 중이라 그때보다 나비수가 줄었지만 목적의 한 70%는 달성하고 돌아온 것 같아요. 올 연말에 다시 가려고 생각 중이에요.

이재만 평소 흑백의 어두운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에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김중만 감성의 표현이기 때문이에요. 제 감성이 어둡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제가 보고자 하는 사물이라든지 담고자 하는 빛의 용량이 보통에 비해서는 좀 더 어두운 쪽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사람들이 좀 관심 없고 무겁고 어둡다고 하면 저는 속으로 좋아하고요. 그렇다고 가벼움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재만 꽃을 찍은 사진처럼 마치 인생의 절정을 보는 듯한 느낌의 사진도 있어요. 그런 사진은 어둡다고 볼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김중만 어두움이 너무 무거워서 잠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꽃 작업이었어요. 그전에 아프리카의 야생동물을 찍고 나서 본격적으로 꽃을 찍었는데요. 삶에 대한 긍정과 밝음의 한 면을 보여주는 거였고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꽃은 간간이 작업하고 있어요.

이재만 아프리카 사진은 대중의 반향이 특히 컸어요. 사자를 찍은 사진을 봤는데 사자의 눈이 굉장히 선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중만 실제로도 그래요. 눈이 섬뜩한 동물은 표범이죠. 렌즈를 통해 눈을 마주 보는 순간에도 섬뜩해요. 가장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는 동물은 기린이고요.

이재만 사자를 찍을 때는 보호장비 없이 가까이서 찍었다고 들었어요.
김중만 처음에는 20미터 거리에서 사자를 봤는데 나중에는 차에서 내려 10미터까지 다가갔어요. 그 정도 거리라면 공격 받더라도 충분히 돌아서서 차에까지 올 수 있다고 생각했죠. 나중에는 4미터 거리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엄청난 엔도르핀을 느꼈죠. 온몸에 다 전기가 오르는데 무섭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사자가 사냥할 때 100미터를 4초에 뛴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하마터면 0.4초 안에 잡아먹힐 뻔한 거죠(웃음).

이재만 다시 사자와 만나는 순간이 생긴다면요.
김중만 결국 동물사진의 관건은 얼마만큼 가까이 다가가느냐 싸움이기 때문에 전 다시 카메라를 꺼내들 겁니다.

이재만 당시 아프리카 사진을 찍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김중만 “사진가로서 아프리카를 위해 무언가를 하라”는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동물사진 찍는 일을 시작했어요. 원래는 그런 곳에 들어가 몇 달씩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거든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제 아이에게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래서 열 살 난 아들과 아내와 함께 셋이 아프리카로 들어갔죠.

이재만 아프리카에서는 사진 찍는 것 말고도 축구골대를 세우기도 했죠.
김중만 아프리카의 풍광과 부족을 찍다가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을 찍은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그 작업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너무 허무했죠. ‘저 천사 같은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5, 6년 밖에 못 살고 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축구골대를 세우기 시작했어요. 계산해보니 골대 하나면 200명 정도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열세 개 정도 세웠는데 10년 뒤에는 드롭바 같은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재만 나눔은 한번 시작되면 계속 퍼져나가는 것 같아요. 캄보디아에는 김점선 화가의 이름을 딴 미술학교를 세우고 있다고 들었어요.
김중만 김점선 미술학교는 올해 완공될 예정이에요. 살아생전 저와 가까웠던 화가인데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한 번도 외국에 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세계문화유산이 있는 곳에 자기 미술학교가 있으면 하늘에서도 행복해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추진하게 됐어요.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암릿에 한국 미술학교가 하나쯤 세워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고요.

# 셔터를 눌러야 사는 남자

 
아프리카와 그의 인연은 어린 시절 정부 파견의사인 아버지 김정 선생을 따라 의료봉사를 가면서 시작되었다. 타잔이 뛰노는 밀림을 기대하며 갔지만 현실은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인근에 제대로 된 교육기관조차 없는 아프리카에서 1년을 살다가 고등학생 시절 홀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 니스 국립응용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던 그는 우연히 친구의 암실에서 사진이 인화되는 과정을 보고 그 매력에 사로잡혀 지금껏 사진을 찍어오고 있다.

이재만 인화의 속도성에 매료되어 전공을 사진으로 바꿨다고 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중만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당시 사진은 정말 재주 없는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학교를 다닐 때는 샤갈을 비롯한 쟁쟁한 화가들이 인근지역에서 활동하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한참 시간이 흘러서 사진작가가 된 후에 교수님들을 찾아뵀더니 사진 하길 잘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같이 공부한 친구들 중에 저만 유일하게 밥벌이를 하고 있다고요.

이재만 사진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1977년 프랑스 ARLES 국제사진 페스티벌에서 젊은 작가상을 받았고 같은 해 프랑스 ‘오늘의 사진’에 선정됐어요. 80인의 젊은 작가에도 최연소 작가로 선정됐고요. 스스로 그렇게 짧은 시간에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리라 예상했나요.
김중만 저도 가끔 제가 어떻게 초반에 일찍 빛을 볼 수 있었을까 생각해요. 지금 돌이켜보면 까마득한 일이지만 그때는 사진을 사진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 사진을 그림으로 생각했거든요. 머릿속에서 미리 다 그려 가지고 그대로 사진기로 재현하는 방식이었죠. 아마도 그 방법이 사람들에게 새롭게 보였나 봐요.

이재만 80인의 젊은 작가에 선정되기 전까지는 어떻게 지냈나요
김중만 변호사님은 20대 남자의 가장 큰 관심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재만 그야 아무래도 여자 아니겠어요.
김중만 저도 그랬어요. 당시 저한테는 작업의 수단이었죠.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여자친구들을 만들 수 있었는데 그때 깨달은 것이 소통의 힘이에요. 보통 남자들이 여자에게 환심을 사려고 여러 이벤트를 준비하는데 사진은 그냥 주면 딱 느끼거든요. 그땐 주로 벗은 여자친구들의 사진을 찍었어요. 완전히 벗기는 건 안 좋아해서 살짝 보이는 정도로만 찍었죠. 그때는 그런 작업만 했어요. 처음에는 제 방식에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진을 보고 나면 다들 ‘뭔가 있다’고 느꼈던 모양이에요.

이재만 지금까지도 필름카메라를 쓰고 있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김중만 요즘에는 필름 가격이 예전에 비해 열 배 정도 올라서 애로사항도 있어요. 그래도 고집하는 이유는 입자 때문이죠. 디지털과 달리 필름만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입자가 있거든요. 그 입자를 좀 더 좋아하는 편이고요.

이재만 30년간 50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어요. 김중만 작가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인가요.
김중만 세상의 빛을 기록하는 일이에요. 사진가는 시대의 기록자이고요. 그 시대의 감성과 아픔과 사랑을 기록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 아픔과 고뇌 없이는 누구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문학가는 시나 소설에 자신의 인생을 어느 정도 반영하기 마련이듯 사진 역시 작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자신의 사진이 조금 무겁고 어둡다고 말한 이유도 순탄치 않았던 삶과 기록이 대신 말해주고 있다. 스스로가 아프고 좌절해보았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슬픔을 렌즈에 담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재만 우리나라 최고의 상업사진 작가로 활동하다가 2007년 11월 작가주의를 선언했어요.
김중만 그동안 한국에서 가장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 노래 잘하는 가수들과 작업을 해왔죠. 그러다 문득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보았죠. 그러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을 찍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후 끊임없어 오지를 다녔죠. 지난 5년 동안 상업적으로 클라이언트에게 돈을 받아서 작업한 경험은 서너 번 정도예요. 그 사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마이너스 통장으로 사는 거랄까요.

이재만 예전에 “셔터 소리가 심장소리처럼 들린다”고 말한 것을 들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김중만 그만큼 아프다는 것이죠. 약간의 흥분도 없잖아 있는데요. 그건 육체적인 부분인 거고요. 내면적으로는 아픈 거예요. 아프리카에서 동물사진을 찍을 때 아내가 제 모습을 보고서는 행복해 보인다고 말했을 때 말고는 셔터를 누르면서 행복감을 느낀 적이 없어요.

이재만 활동 초기에는 국내에서 사진전시회를 했다가 추방당하기도 했죠. 그후의 삶이 사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요.
김중만 그때 제가 프랑스 국적자였는데 당시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외국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그렇게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제가 감지를 잘 못했죠. 지금까지 일본과 미국으로 두 번 추방당했어요. 그 경험들이 제가 사진가로 좀 더 성숙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거든요. 덕분에 용서를 많이 할 수 있는 똘레랑스(관용)를 갖게 된 것 같아요.

이재만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겠어요.
김중만 그래요. 추방이란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시간과 공간과 세계에 떨어지는 것이거든요. 아무런 대책과 방법이 없는 상황에 떨어지는 거죠. 결론적으로 그 일로 얻은 게 많지만 더 이상은 경험하고 싶지 않아요.

이재만 어느 유명한 조각가는 좋은 대리석을 보면 조각을 해야겠다는 욕망이 일어난대요. 돌 속 숨겨진 다비드 상이 보여서 그것을 드러내게 하고 싶은 거죠. 김중만 작가의 경우는 어떤가요.
김중만 저도 약간 보입니다. 한 60% 정도 보이고요, 나머지 40%는 몸으로 때우는 겁니다.

이재만 그럼 60%가 선천적인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김중만 그동안 30년 정도는 선천적인 것을 부정했어요. 근데 최근 들어 제 아이들을 보면서 부정이 긍정으로 바뀌었어요. 한번은 해인사에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는데, 나중에 막내아들이 해인사에 가서 찍어온 사진을 보니 시점이 같은 거예요. 제 사진을 보여준 적도 전혀 없고 심지어 해인사 계곡은 수 킬로미터가 되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제는 유전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재만 두 아들 모두 사진가의 길을 걷고 있어요. 아버지로서 어떻게 보나요.
김중만 겉으로는 사진을 하라는 이야기를 한 적 없지만 속으로는 좋아하고 있죠(웃음). 내심 사진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내색한 적은 없었어요. 아이들이 사진 찍는 것에 대해서도 거의 관여하지 않는 편이고요.

이재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산으로 남기신 돈이 200만원 정도였다고 하던데요. 혹 아들들에게 아버지처럼 물려주실 생각인가요.
김중만 그 부분은 아이들에게 미리 말했어요. 저도 200만원씩 주겠다고. 그 이상은 없어요. 나머지는 모두 나라에 기증할 생각이에요. 모든 저작권이나 콘텐츠를 대한민국 국민이 쓸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에요. 이 일은 죽은 뒤가 아닌 살아 있을 때 하고 싶어요. 생전에 칭찬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걸 어떻게 잘 쓰나 감시하려는 생각 때문이에요. 어떤 보상이나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진정한 나눔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데 관심도 없고요.

이재만 사진가로서나 개인으로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김중만 사랑이죠. 사랑 그 자체요. 사랑을 안 하면 죽는 거죠. 매일같이 드는 생각이에요. 사랑이라는 것을 하고 안 하고는 살아가는 데 있어 상당히 중요해요. 어떻게든지 사랑하는 대상이 필요하죠.
저는 사랑이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자 목적,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 늘 새로운 감동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남자
 
보통 사진작가들은 한 가지 주제를 두고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아프리카. 꽃. 패션, 인물, 풍경. 전통 등 다양한 주제의 사진을 찍어왔다. 지금도 그의 관심사는 계속 변하고 있다. 그의 눈에는 매일같이 새로운 것이 보이는 모양이다. 어느 날은 길가의 돌이, 어느 날은 나무가 그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러면 그는 렌즈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존재의 의미를 이끌어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재만 김중만 작가의 인물사진을 보고 있으면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질 때가 많아요.
김중만 저는 제가 찍는 상대나 사물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요. 세계 최고입니다. 사자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가장 아름답고 멋있어요. 그것이 볼품없는 거리의 한 그루 나무일지라도 저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배우라서 좋게 보고 이름 없는 사람이라 쉽게 보고 한 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이재만 대한민국의 스타라면 김중만 작가를 거쳐가지 않은 인물이 없을 정도인데요. 그중 가장 인상 깊은 배우는 누구였나요.
김중만 전도연 씨를 꼽고 싶어요. 내면적으로 도연 씨가 지니고 있는 배우로서 인성이 좋았어요.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여자의 본능은 예쁘게 보이려고 하는 것인데도 말이죠.
도연 씨는 자신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남자배우 중에는 차승원, 이병헌 씨가 사진작업을 편안하게 했던 사람이고요.

이재만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사진도 많이 찍고 있죠.
김중만 그 작업을 하는 시간이 50% 이상이죠. 상업작가 활동을 그만두고 처음 한 것이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한국의 엽서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그 작업을 계기로 우리나라를 발로, 몸으로 다시 볼 수 있었죠. 우리 것을 좀 더 따뜻하게 보려는 마음가짐이 생기면서 지난 4년 동안 찍었는데 대한민국처럼 모든 것을 가진 나라가 세상에 없어요.

이재만 대한민국에서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추천한다면요.
김중만 전국이 다 좋은데요. 각각 특이한 부분이 있지만 제주도가 가장 사진 찍기 좋은 것 같아요. 하나의 장소에 여러 가지 콘텐츠가 있고 계속 찍고 있는데도 새로운 것이 나오니까요.

이재만 작업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김중만 빛이에요. 그 외에 기술적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아요. 저는 흔들리거나 어두운 사진도 좋아해요. 선명하지 않거나 뚜렷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죠. 특히 사람들이 말하는 구도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성이에요. 좋은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한 해법은 없습니다. 저 역시 끝없이 고민하면 살아가는 사람이고요.

이재만 지금까지 찍은 사진 중 작가 김중만을 만족시킨 사진은 무엇인가요?
김중만 요즘 찍고 있는 사진이 나를 표현해주는 것 같아요. 중랑천 둑길에 있는 나무들을 2년째 찍고 있거든요. 거기에 버려진 나무들이 50그루 정도 있는데 4년 전에 한 나무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찍을 자격이 있는지 물어봤어요. 계절이 여러 번 바뀔 정도로 시간이 흐른 뒤에야 허락을 받아냈죠. 지금까지 250번 정도 그 길을 갔어요. 어제도 그곳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사진을 찍다 왔고요.
그 사진들이 지금까지 찍은 작품 중에서 저를 가장 가깝게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보면 볼수록 이 버려진 나무들이 나 같고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재만 앞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영역이 있나요.
김중만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1년 동안 아프리카에 혼자 가서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다른 하나는 히말라야 K2에서 6천 미터 정도 되는 곳에 올라가고 싶어요. 예전에 4천 미터 높이까지 올라가본 적이 있는데 완전히 딴 세상이더라고요. 빛도 완전히 다르고요. 그때 좋은 경험을 해서 설경에도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어요.

이재만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중만 자유로운 영혼을 갖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희생이 필요해요. 그래서 과연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이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죠. 개인적으로는 자유로움을 갈망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이재만 변호사
서울중앙지방법원 조기조정위원, 경찰청 법률고문, 대한체
육회 법률고문,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주병진·송일국·
주지훈·권영찬 등 스타사건 담당 변호사, KBS TV 이재만
변호사 드라마법정 등 출연.
법률 속에서 사람을 위한 따뜻함을 찾아 전달하고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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