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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 1923’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이방인의 넋이 담긴 곳
‘딜쿠샤 1923’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이방인의 넋이 담긴 곳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5.21 0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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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간을 품다①

약 2천만 명이 발을 딛고 사는 서울이란 공간. 서울의 역사를 말하면 자라나는 아이들은 국보1호인 남대문과 63빌딩 고층 건물, 그리고 한강 등을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화려한 도심과 번화한 네온사인 거리로 넘쳐나는 서울의 모습만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백제 문화가 싹트고 한강을 끼고 있는 도읍지로서 조선왕조가 자리 잡은 지 60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고대사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진 역사만을 서울의 전부로 알고 있지는 않았을까. 급격한 도시화의 진척에 따라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는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글·사진 백남우(tbs TV 영상콘텐츠부장)

 
▲ 서울 종로구 사직 2길의 골목 한 편에는 낡고 오래된 벽돌집이 있다. 이곳은 한국 독립
운동에 관심이 높았던 UPI통신의 알버트 테일러 기자의 흔적이 담긴 곳이다.

딜쿠샤 1923, 행복한 마음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2길. 골목길 한편에 낯설고 이국적인 서양식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건물의 아래 모퉁이를 들여다보니 ‘딜쿠샤(DILKUSHA) 1923’이라고 새겨진 초석이 보인다.
딜쿠샤(DILKUSHA:)는 힌두어로 ‘이상향’, ‘행복한 마음’이라는 뜻이다.
1919년 2월 28일, 3.1 독립선언 하루 전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난 미국인 브루스 테일러. 만세운동 준비로 어수선했던 그날, 그의 침대 밑에는 독립선언문이 숨겨져 있었다. 1940년에 이 땅을 떠난 후 87세의 노인이 된 그가 66년 만에 고향 한국을 찾았다. 서울 양화진 묘지에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무덤이 있다. 한국은 이들 테일러 일가와 어떤 인연이 있는 걸까.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심이 컸던 브루스 테일러의 아버지 알버트 테일러는 UPI통신의 기자 신분으로 3.1 만세운동을 취재, 이를 미국 언론들이 보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그는 수원 제암리 학살 사건이 발생하자 언더우드와 스코필드 등의 선교사들과 함께 제암리로 내려가 그 학살 현장을 취재하였고, 일제의 만행이 담긴 사진들을 당시 총독이던 하세가와에게 내보이며 학살을 중지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일제의 미움을 받은 그는 1942년 5월 한국에서 추방되었고, 1948년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평소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부인 메리는 유골을 한국에 묻는다. tbs TV 영상기록 <서울, 시간을 품다>에서는 그런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노인이 된 브루스의 여정을 그렸다. 이 여정을 통해 시청자들은 1919년 이 땅에 살았던 외국인의 시선으로 재현되는 3.1운동의 새로운 면모를 만나게 될 것이다.
브루스의 어머니 메리는 남편 알버트의 행적과 일제 치하의 한국 풍경을 한 권의 자서전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기억을 안고 66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브루스 테일러. 그를 맞는 것은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닌 다이내믹한 거대 도시 서울의 풍경이다.

 
▶ 알버트 테일러(좌)와 그의 아내인 메리 테일러. 알버트 테일러는 3·1만세 운동을 취재, 이를 미국 언론들이 보도할 수 있도록 했다.

tbs TV에서는 근현대 문화유산의 미래유산화 작업의 일환으로 서울의 영상기록물 축적을 통한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고화질 HD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tbs 홈페이지 tbs.seoul.kr에서 다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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