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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자택에서 강부자와 나눈 ‘50년 연기 인생’
청담동 자택에서 강부자와 나눈 ‘50년 연기 인생’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6.22 1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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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어머니 상을 연기해온 강부자. 여러 역할 속에서 적절하게 또는 파격적으로 변신하는 모습들에서 남다른 연기 열정이 엿보인다. 2007년 방영돼 화제가 된 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의 연기 폭과 깊이가 가히 짐작이 가리라. 실로 존경스러울 정도. 연기로도 삶으로도 한평생 어머니로 산 강 부자는 진정 아름다운 배우였다.

취재 박현희 | 사진 양우영 기자

 
평생을 배우로 살았지만 촬영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제일 먼저 도착해 준비를 한다. 카메라 불이 켜지면 NG를 내는 일도 거의 없다. 배우로서는 자신에게 가혹할 정도로 철저하지만 생활인으로는 작은 일에도 눈물짓고 감동할 줄 아는, 여린 감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는 인터뷰를 하던 날에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인생이라는 고목에 무수히 새겨진 나이테는 그이를 울고 웃게 만들었고,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계속해서 꿈꾸게 했다.

인터뷰는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이뤄졌다. 29년간 살던 집에서 지난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그이는 새롭게 옮긴 터전을 제법 마음에 들어 했다. 지금 집은 빌라인데 한옥에서 사는 것이 꿈이라 천장에는 서까래를 대고 창문에는 한지를 발랐다. 집 안은 소박한 느낌의 가구들로 차 있고 그 가운데 조소과를 나온 딸의 작품이 있었다.
“배우 집이라고 하면 화려한 것을 생각하는데 우리 집은 그냥 소박해요. 무엇이든 쉽게 못 버리는 성격이라 오래된 가구도 많고, 부모님이 쓰던 그릇도 아직 가지고 있죠. 나는 그냥 이렇게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웃음).”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의 끊이지 않는 고민들

1941년 일곱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이는 충남 논산군 강경읍 중앙동에서 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 호기심 많고 활달해 동네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들은 소식을 부모님께 자주 전하곤 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그이를 유달리 예뻐했다. 마당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연극 무대도 자주 꾸몄다고. 그 모습을 보고 동네 어른들은 “커서 뭐가 되려고 이리도 똑똑하냐”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했단다. 어릴 때부터 배우가 될 끼가 있었다. 대청마루에 어머니 치마를 막으로 걸어놓고 배우 흉내를 내 동네 사람들 칭찬을 받기도 하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직접 쓴 각본으로 1인 3역을 해 전교생의 박수갈채를 받은 적도 있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 숙직실에 라디오가 있었는데 거기서 라디오 DJ라도 된 양 음악도 틀고 진행도 하면서 끼를 발휘했다.
그러다 대학에 진학해 학교를 다니던 중 우연히 탤런트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당시에는 라디오 연속극이 인기였다. 그래서 그녀의 꿈도 성우였다고. 그런데 탤런트도 성우와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아 탤런트 모집에 응시했고 단박에 합격했다. 하지만 막상 들어오는 배역은 주로 아주머니나 할머니. 흑백 TV시절이었으니 20대 초반의 나이로 중년, 노년의 역을 맡아도 그럭저럭 비슷해 보였던 걸까.
어쨌든 스물두 살의 나이로는 여간 부담스러운 작업이 아니었을 텐데 그래도 그 시절이 연기 인생의 기반이 되었다고.
“1962년에 데뷔를 했어요. 첫 작품에서 마흔다섯 살 중매쟁이를 연기했죠. 그 이후로도 주로 노역을 맡았어요. 당시에는 그게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다행이다 싶어요. 지금까지 배우 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거든요.”
요즘에는 방송국에 의상실, 미용실이 갖춰져 있지만 당시만 해도 분장 외에는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해야 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했던 그이는 촬영이 있는 날이면 새벽 4시에 일어나 미용실에 들러 극에 맞는 머리를 하고 1시간 일찍 방송국에 도착했다. 드라마 스튜디오에서 움직여야 할 동선을 체크하고, 자신의 분량뿐 아니라 다른 배우의 대본까지 꼼꼼히 살펴본 다음 분장실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선배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러한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제는 그만 게으름을 피울 만도 한데, 연기 생활 50년째 베테랑 배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50년을 성실한 연기자로 살아온 그이. 그이가 생각하는 연기는 무엇일까
“연기에는 ‘뿌리’가 있어야 해요. 근본 없는 연기를 하면 안 되죠. 배우라면 자신이 연기하는 것 외에도 극의 전체 흐름을 알아야 해요. 그런데 요즘에는 자신이 나오는 부분만 찢어서 다니는 배우들도 있더군요. 그런 건 고쳐야 돼요.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연기해야 하죠. 그렇게 한 작품, 두 작품 점점 경험을 쌓아가며 진정한 배우로 성장하는 거예요. 지혜로운 배우가 되는 거고요. 가끔 분장실에 앉아 있으면 항상 예쁘게만 보이려는 후배들이 있어요. 그러면 옆에서 ‘오늘 같은 신에서는 조금 덜 예뻐도 돼. 그 예쁘기만 한 얼굴로 어떻게 천의 얼굴을 만드니’라고 이야기해주죠.”
하지만 이런 그이도 가끔은 꾀를 부리고 싶다고 한다.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해요. 우리 집에 천 가지 가면이 있어서 상황과 배역에 맞추어 가면을 바꿔 쓰고 싶다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탈이 없으니 연기로 만들어내야죠.”

 
국민에게 감동과 보람을 선사해온 배우 인생 50년

그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 3종은 꼭 정독한다.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정치·사회면. 아름답고 흐뭇한 기사를 기대하며 첫 장을 펼쳐 들지만, 요즘 들어 부쩍 그런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성범죄, 정치인 비리가 정치면과 사회면을 채울 때마다 가슴이 턱턱 막힌다고.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이이기게 더욱 그러리라. 사실 그이가 정치판에 발을 디딘 건 국민, 그녀가 늘 연기해왔던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정치인으로서 그이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정치가는 배우만큼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더라고요. 사실 배우처럼 좋은 직업이 또 어디에 있어요. 자신에게 게으르지 않고, 똑바르면 사방에서 존경해주잖아요. 물론 배우로서 올곧게 자신의 길을 가야만 비로소 사람들의 인정을 받겠지만요.”

50년의 연기 생활 동안 부침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터. 그이는 이런저런 루머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상처도 조금씩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았다.
“오래전부터 나를 따라 다니는 악성루머가 있었어요.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배우로서  부끄러운 일 한 적이 없는데,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니 무척 속상했죠.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시간이 지나 소문이 잠잠해지려고 하니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는 ‘강부자(강남·부동산·부자)’ 내각 때문에 또 한 번 구설에 올랐죠. 모르는 사람들은 저를 지칭하는 것으로 아니까요. 마음이 너무 힘들어 민주당 대변인을 만나 이야기를 하니 미안하다면서 앞으로는 안 하겠다고 하더군요. 한동안 억울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냥 웃고 말아요.”

 
인생의 진정한 멋을 아는 여자 그리고 배우

“김수현 작가는 나를 두고 ‘독일탱크’라고 불러요. 자기 관리를 잘해 고장(?)이 잘 안 난다는 뜻인데, 한 번은 촬영을 하면서 NG를 냈더니 ‘어머 독일탱크 고장 났네’ 하더군요(웃음). 또 연극배우 박정자는 나를 ‘송곳눈’이라고 불러요. 둔하게 생겼어도 실은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이라는 뜻이죠. 김수미는 생일 카드에 ‘어느 때는 묵묵한 고목 같고 어느 때는 왕성한 야자수 같고 어느 때는 여리디 여린 언니’라고 썼더군요. 이 모든 말들이 저를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요. TV에서는 억세고 무섭고 극성스러운 시어머니처럼 보이지만 저 스스로는 들꽃 같은 여자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생김새가 그렇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안 하죠.”
그이는 눈물이 많다. 굴러가는 낙엽만 보아도 눈물을 흘릴 정도. 가까운 지인 중 한 명은 한 방송에서 그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새처럼 우는 강부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 마시기를 즐겨하고 때로는 지인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서 몇 시간이고 스탠딩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멋을 아는 사람”이라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날, 박정자 씨가 나를 만나러 방송국에 온 거예요. 방송국에서 만나 막 정문을 나서려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아 오늘 날씨 좋다’라고 말했죠. 옆에 서 계시던 할머니들이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시더라고요(웃음). 안개가 자욱하게 끼면 경기도 양평의 한 호숫가를 찾아가요. 안개 낀 호수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가히 예술이죠. 이런 날 지갑 하나씩 들고 창이 큰 커피 집에 모여 앉아서 수다를 떨다 보면 정말 행복해요.”
남편 이묵원과 함께하는 시간도 그이에게는 기쁨이다. 남편은 <사모곡>, <안개>, <수사반장>, <겨울안개>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모았던 KBS 2기 탤런트 출신이다. 그이는 부부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TV에서 김현중을 두고 살인미소라고 하는데 원조 살인미소는 우리 남편”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남편은 나와 달리 컴퓨터도 잘하고 문자 메시지도 보낼 줄 알아요. 내가 구세대라면 남편은 신세대에 가까워요.

 
그이의 생일날 미국에서 찍은 사진. 아들네와 딸네 그리고 손녀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일 아침 운동을 나갈 정도로 자기관리도 철저한 편이고요. 저보다 세 살이 많은데 모르는 사람은 제가 연상인 줄 알아요. 올해 나이가 일흔 넷인데 멋쟁이에요. 흰 머리도 별로 없고요. 그리고 은근히 잘 챙겨주죠. 제가 연극을 할 때면 어김없이 와서 오신 손님들에게 저 대신 인사도 하고 집까지 오가면서 태워다 줘요. <산불>을 연출한 임영웅 선생이 남편 보고 ‘이렇게 매일 올 줄 알았으면 역할을 하나 맡기는 건데 과부마을이라 배역은 치매 걸린 할아버지밖에 없으니’라고 해, 크게 웃은 적이 있죠.”
슬하에 자녀는 1남 1녀. 결혼을 해 지금은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아들은 미국에서 파킨슨병에 대해 연구하고 있고, 딸은 굴지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남편을 내조하고 있다. 미국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만 그래도 보고 싶고 걱정되는 자식들이다.
“부모 눈에 자식은 나이가 많든 적든 언제나 어리게 보이는 것 같아요. 좋은 것을 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니까요. 만일 제게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고 물으면, 결혼해 집을 장만하고 처음으로 빨래했던 날을 이야기해요. 아이들 기저귀를 푹 삶아서 파란 가을 하늘 아래에 널었는데, 바람결에 날리는 빨래가 어찌나 예쁘던지.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생각했어요(웃음).”

열심히 산 이 시대의 여성으로 기억되고 싶어

다른 여배우처럼 화려한 외모는 아니지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싫어 그저 있는 그대로를 가꿔왔다.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 때 흰머리가 너무 많이 나 남편의 권유로 염색을 하기로 결심했지만, 그조차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 최대한 흰머리를 살려두었다.
고희를 막 넘긴 지금 그이의 얼굴에 아로 새겨진 주름은 수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대사를 외울 수 있는 그날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그이가 죽기 전 마지막 이루고 싶은 꿈은 예상 외로 '신사임당 상을 타는 것'이다.
“사람은 한 번은 가야 하는 거지. 안 가는 사람은 없어. 세계적인 석학도 부호도 정치가도 죽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 나도 언젠가는 가야하는데. 나는 가끔 우리 남편하고 나하고 한 날 한 시에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요. 아이들이 조금 덜 힘들게. 슬픔은 두 배겠지만 아픈 일을 두 번 겪지는 않아도 되니까…. 만일 죽기 전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신사임당 상’을 타는 거예요. 우리나라 주부클럽이 매년 시상하는 상인데 연예계에서는 아직 한 명도 나오지 않았죠. 호적도 깨끗하고 배우로서 아내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어요. 잠깐의 루머가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닌 남들이 만든 루머니까 충분히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 상을 못 받더라도 그것을 목표로 하기에 더욱 정직하고 바르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후대에 ‘열심히 산 이 시대의 여성, 배우 강부자’로 기억되고 싶은 바람이에요.”

 
1 반야심경이 적혀 있는 고가구.
그이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다.











 
2 강부자의 아버지가 금강산 여행을
다녀온 후 사온 목기찬합과 어머니가
쓰던 나무그릇들. 부모님이 느껴지는
물건이라 더욱 귀하게 보관하고 있다.









 
3 한국 음식은 놋그릇에 먹어야
한다는 그이. 미국에 사는
자녀들에게도 보내준 놋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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