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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붐을 타고 온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중동붐을 타고 온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10.20 2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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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칼럼

서울, 시간을 품다 18

▲ 서울중앙성원 외경
글 사진 백남우(tbs TV 영상콘텐츠부장)

▲ 알라-후 아크바르(녹색글자, 알라는 위대하시다)
서울 최초의 관광특구 이태원. 미군의 거리에서 2000년대 들어 다문화의 상징으로 변한 이곳 한 언덕배기에 유난히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색적인 3층 구조의 건축물이 있다. 이슬람식의 아치를 지나 끝이 뾰족한 큰 돔과 아라베스크풍의 치장이 돋보이는 한국 이슬람교의 허브, 서울중앙성원이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1만5천여 명의 병력을 파견한 터키 제6여단 사령부 압둘 카푸르는 당시 한국에 이슬람 선교를 시도했다. 중동 붐을 타고 이슬람 국가와의 친교가 긴요했던 무렵이었다. 전쟁 후 한국 이슬람 협회가 결성되면서 한국 무슬림 1세대가 형성됐고 그리고 1970년대 두 차례 오일 쇼크. “오일 달러가 쌓이는 중동시장에 공장을 짓고 건설 인력을 수출하자”는 슬로건처럼 오일 쇼크와 중동 진출로 이슬람 국가들과의 우호증진이 절실했던 1970년대 이슬람은 한국으로 성큼 다가왔다.

1969년 5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특별 배려에 따라 한국 정부가 약 5,000㎡(약 1천500평)의 성원 건립용 부지를 본회에 희사(喜捨)하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가 성원 및 이슬람 센터 건립비용 전액을 지원함으로써 1974년 10월 착공, 1976년 5월 21일 개원한 것이 바로 한국 최초의 이슬람 성원이다.

건물 1층에는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KMF, Korea Muslim Federation)의 사무실과 회의실, 2층에 남자 예배실, 3층에 여자 예배실이 각각 설치되어 남녀의 구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루 다섯 번 한국으로 온 전 세계 무슬림들의 바람이 이어지는 곳이다. 정문에서 입구를 통과해서 올라가다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두 개의 첨탑이다.

▲ 모스크 내부 전경
첨탑을 ‘미나렛’이라고 하는데 이 첨탑은 두 개의 기능을 한다. 첫째는 신도들에게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 즉 ‘무에진’이 ‘아단’을 외치는 장소이고, 둘째는 모스크(이슬람교의 예배당)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모스크 위치를 알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평화를 상징하는 지붕 위의 큰 돔(꿉바)은 자연채광과 설교가 잘 들리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성원 계단을 올라 2층에서 신발을 벗노라면 외벽에 꽃문양에 기초해 일정 비율로 복잡한 기하학적 문양이 수놓은 아라베스크풍 벽면을 지나 ‘마스지드’에 들어서면 정면에 ‘미흐랍’이 메카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 미흐랍(움푹 들어간 벽감)+민바르(설교단)
미흐랍 옆에는 설교에 사용되는 실제로 이동시킬 수 있는 계단으로 제작된 설교단(민바르)이 보인다. 생소하고 낯설지만 한국 이슬람교의 본산이자 관광특구 이태원의 이색 명소로 소문난 서울중앙성원. 하지만 그 안엔 38년 전, 열사(熱沙)의 땅에서 소금 땀을 흘린 우리 근로자들의 이야기도 깃들어 있다.
 
<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 문화유산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고화질 HD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tbs 홈페이지 tbs.seoul.kr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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