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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古家 ‘백인제 가옥’
100년 古家 ‘백인제 가옥’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11.25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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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상을 품다

글, 사진 백남우(tbs TV 영상콘텐츠부장)

▲ 사랑채 외관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된 가회동 백인제 가옥은 건립 당시 100칸이넘었을 만큼, 서울에서도 몇 채 안 되는 규모의 한옥이다. 조선후기 주택으로 보존 상태가 좋고 사랑마당으로 들어서는 대문과 안마당 쪽 담의 꾸밈이 눈길을 끄는 집이다.

▲ 화려한 장식의 사랑채 서측 벽
가옥은 1913년, 이완용의 외조카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인 한성은행의 전무로서,총독부를 등에 업고 최상류의 삶을 누린 한상룡이 지은 근대 한옥이다.

▲ 안채 부엌
한상룡이 1928년까지 15년간 거주했던 이 가옥은 한성은행의 경영 악화에 대한 총독부의 압력으로 한성은행에 소유권이 넘어갔다. 그 후 가옥은 이후 1935년 한성은행에서 민족 계몽주의자인 최선익에게 넘어갔고 1944년 인제대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박사가 사들이고, 그가 6.25전쟁 중 납북된 이후에도 후손들의 소유로 관리되어 오다가 지난 2009년 서울시가 '북촌문화센터'로 활용하기 위해 150억 원에 사들여 개보수 공사를 하다가 원형을 보존하자는 문화재 전문가들의 권유로 중단했다.

▲ 천정+돔(꿉바)=평화를+상징
서울시는 2009년 2월 '문화재 지정명칭 변경고시'를 통해 '가회동 백인제가’를 '가회동 백인제 가옥’으로 바꿨다. 높은 대지 위에 솟을대문과 행랑채가 있고 행랑마당에 들어서면 앞쪽으로 상당히 높은 기둥으로 일부 2층으로 된 안채와 사랑채가 이어져 있다.
솟을대문 좌우에는 광과 부엌이 있고 그 앞에 담장이 있다. 사랑채에는 네 칸의 방과 대청이 있고 대청과 방은 앞뒤에 퇴간으로 연결되어 있고 다시 긴 툇마루로 안채와 연결되고, 그 사이에 작은방이 있다.
일본의 보편적 건축 재료인 흑송을 사용하고 방마루, 2층 다다미방, 속복도로 일본적 요소를 가미하고 창호는 근대식 재료인 유리를 사용했다. 이런 장치들은 당시 주요 방문객인 일본 관료나 기업인들에게 일본화 된 본인을 보여 주는 도구로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친일파의 건축물이란 논란이 일면서 서울시장 공관 이전이 무산된 백인제 가옥.
그렇게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고가(古家)는 무조건 훼손할 수 없는 서울의 근대 한옥의 사료이기도 하다. 아픈 역사도 역사다.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고화질 HD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tbs 홈페이지 tbs.seoul.kr나 네이버 TV캐스트(http://tvcast.naver.com/seoultime)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수상 약력 :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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