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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있어 즐거운 다행촌락(茶幸村樂)-경남 하동 악양
차가 있어 즐거운 다행촌락(茶幸村樂)-경남 하동 악양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4.12.29 0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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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시티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에는 예로부터 다향(茶香), 문향(文香), 도향(都香), 만향(漫香)의 향기가 난다고 한다. 산기슭에 숨어 지내는 야생 차밭이 1천200년 넘게 하동을 지키고 있고, 소설이 절로 써지는 아름다운 산세가 병풍처럼 장막을 쳤다. 일부러 예쁘게 보이기 위해 단장하지 않은 이곳에서 도시 사람들은 느림의 미학을 온 몸으로 느낀다.

취재 박현희 기자 | 사진 및 자료제공 한국슬로시티본부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문향(文香)’의 마을

▲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 댁 전경
섬진강변 평사리 최참판 댁의 서희가 악양의 넓은 논두렁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하동은 소설 <토지>의 모습 그대로다. 박경리는 아미산 아래에서 동정호까지의 넓은 들판, 만석지기 부자를 서넛은 낼 만한 악양 ‘무딤이들(들판)’을 보고 <토지>의 주 무대로 낙점했다고 한다. 하동군 악양은 일조량이 좋아 비닐하우스가 없는 몇 안 되는 마을 중 하나다. 박경리 역시 이곳의 따뜻한 햇살을 느껴 부농의 이미지를 떠올렸으리라.
자연이 주는 햇빛과 신선한 공기로 녹차가 산기슭에서 흐드러지게 자라고, 햇살과 바람이 대봉감을 뽀얗게 분칠해줘 곶감을 단장케 한다. 수천 년을 두고 흐르는 섬진강은 마음을 더욱 여유롭게 해준다. 말 그대로 ‘슬로 시티’다.

아름다운 산수 지닌 마을

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3개 도, 12개 군을 걸쳐 600리를 내려온 섬진강은 남해에 흘러들기 직전 하동을 품고 지난다. 하여 사람들은 이곳을 하옹촌(河擁村)으로도 부른다. 악양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신선이 푸른 학을 타고 다닌다’는 이상향 ‘청학동’이 있다고 믿는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지리산 남쪽에 화개동(花開洞, 악양동의 동남)과 악양동(岳陽洞, 지리 산 남쪽 섬진강변)이 있다. 두 곳 모두 사람이 사는데 산수가 아름답다”고 적혀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자락에 있는 하동의 특산품으로는 야생녹차, 대봉감, 밤, 매실, 하동 송림의 솔잎한우, 섬진강 재첩 등이 유명하다. 특히 대봉감은 크기가 크고 그 색깔이 선명하며 당도가 월등히 높아 그 옛날 임금에게 진상할 정도로 유명하다. 하동 대봉감의 80% 이상을 생산하는 악양면은 분지형으로 바람의 피해가 적고 겨울이 따뜻해 품질이 뛰어난 대봉감을 생산하기에 적지이다. 대봉감은 홍시로도 먹고 말려서 곶감으로도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녹차의 향기

악양에서는 어느 집을 찾아도 “녹차 한잔 들고 가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보성이나 제주가 녹차를 대량 생산하는 지역이라면, 악양은 그보다 작은 규모이다. 이곳의 야생녹차는 대량 생산하기 위해 개량된 품종이 아닌 재래 품종으로 한국 최초의 차 시배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집집마다 차밭을 갖고 있다.
차 맛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각 집안의 개성에 맞는 다양한 스타일의 차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 이곳에는 예로부터 감기에 거리면 발표시킨 붉은 차를 뜨겁게 데운 후 꿀이나 설탕같이 단 것을 넣어 감기약 대신 먹었다고 하는데, 이 붉은 차가 바로 홍차이다. 비교적 소량만 생산되지만, 향긋하고 깔끔한 맛이 좋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소설 <토지>의 배경을 좇다 향긋한 녹차에 취하는 하동 악양. 입에 머금고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이곳의 녹차처럼, 소박한 멋 덕분에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그런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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