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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이 만난 사람-‘연탄은행’ 대표 허기복 목사
이재만이 만난 사람-‘연탄은행’ 대표 허기복 목사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5.01.11 2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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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정을 나누는 사람

 
500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어쩌면 아이들 과자 한 봉지도 사주기 힘든 보잘 것 없는 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 500원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500원은 연탄 한 장 가격이다. 500원이면 두 손을 녹이고 두 발을 따뜻이 할 수 있다. 연탄과 꼭 닮은 허기복 목사를 만났다. 만약 산타클로스가 있다면 분명 이런 모습이리라. 그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지도, 빨간 장화를 신고 있지도 않았고 루돌프가 끄는 썰매 또한 없다. 그러나 산타클로스가 그러하듯 그는 나눔과 베품을 선물하기에 바빴다.

취재 이시종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 안경협찬 (주)이안옵틱 | 의상협찬 에트로

Part 1.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든든한 은행, 연탄은행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중(中)). 허기복 목사와 만나며 떠오른 시구다.
어떤 이들에게 연탄은 젊은 시절 혹은 유년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낭만적 도구일 뿐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연탄은 간절함이다. 엄동설한에 내 가족을 추위로부터 지키고, 언 두 손과 두 발을 녹일 수 있게 하는 없어서는 안 될 것. 허기복 목사가 궁극적으로 전하는 것은 연탄이 아니라 어쩌면 그의 체온인지도 모르겠다.

이재만_ 연탄은행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허기복_ 연탄은행은 지난 1998년도 외환위기 때 어려운 이웃들의 밥상을 책임지는 ‘밥상공동체’로 시작이 됐어요. 동전의 양면성이 있듯이 당시에는 성장과 빈곤이 공존했고, 빈곤 슬럼화와 고령화 사회가 진입을 시작했던 때죠. 그러다 2002년도에 냉방에서 지내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나게 됐어요. 당시 연탄 1장에 250원이었는데, 그 250원조차도 없어서 일 주일 동안 냉방에서 지내셨던 겁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한 이후였어요. 대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고 하는데, 250원이 없어서 냉방에 일 주일 동안 지내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돌아와서 잠을 한 숨도 못 잤어요. 그 후 어떤 개인 후원자를 통해 연탄 1천장을 그 할머니께 전해드리면서 사실상 연탄나눔 운동이 시작된 거죠. 그때 생각했어요. 이런 분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선물해야겠다고 말이죠.

이재만_ 연탄은행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어려운 이웃을 대하는 대표님의 배려심이 느껴집니다. 어떤 고민을 거쳐 연탄은행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나요?
허기복_ 어려운 분들께 연탄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단체 이름을 어떤 걸로 할까, 하고 고민을 했어요. 고민 끝에 연탄을 필요로 하는 분들께 연탄을 드릴 수 있고, 그분들에게 연탄을 드릴 수 있게끔 수입과 지출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적합하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은행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됐어요. 연탄을 후원하는 분들과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단체의 성격을 알리는 데도 이만한 단어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또 은행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한몫 했고요.

이재만_ 연탄은행에서는 연탄만 제공하나요? 아니면 다른 것들도 제공하나요?
허기복_ 연탄이 잘 탈 수 있도록 외적인 것도 돕고 있어요. 보일러도 오래 쓰면 망가지니 보일러도 손 봐야 하고, 연탄가스가 찰 수 있으니 배출기 교체도 해야 해요.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들 대부분이 주거환경이 그렇게 좋지 못해요. 특히 문틈에 바람이 너무 세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문풍지도 발라 드리고 있어요. 또 연탄 사용 가구의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 아동센터, 문화교육사업, 진료봉사, 나들이 봉사 등도 함께하고 있어요. 연탄후원에서 지금은 범위가 많이 넓어졌죠.

이재만_ ‘아직도 연탄을 때는 곳이 있나’라는 물음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실제 어느 정도 인구가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있나요?
허기복_ 우리 단체에서는 연탄가구 조사를 해요. 제주도 울릉도까지 전국적으로 하고 있죠. 2014년을 기준으로 연탄사용 가구는 16만8천 가구예요. 경북도와 강원도가 가장 많고, 서울의 경우는 3천여 가구가 연탄을 사용하고 있어요. 연탄 소비는 2014년도에는 전년보다 6.7%가 증가된 수치예요.

이재만_ 연탄을 지원 받아야 하는 가구는 16만8천 가구 중 얼마나 되나요?
허기복_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고 생활하는 수급자 가정, 자식이 있어서 수급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구,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소외가구, 그것이 약 10만 가구예요. 국가의 지원만(으)로는 힘든 상황이죠.

이재만_ 연탄은행이 설립되지 1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거나 인상 깊었던 일화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허기복_ 몇 년 전에 제주도를 갔는데 연탄 200장을 받은 할머니가 엉엉 우셨어요. 이 늙은이가 한겨울 얼어 죽지 않도록 해줘서 고맙다고 말이죠. 연탄 200장을 돈으로 환산하면 10만원 정도예요. 그 10만원, 200장의 연탄이 할머니의 방안을 한 달 보름 정도 따뜻하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에게 살아가는 쉼터를 만들어준 것이죠. 할머니로부터 “찾아오지 않는 자식보다 낫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찡했어요.
또 이런 일도 있었죠. 결혼을 앞둔 두 청년이 혼수를 마련하다보니 돈이 부족했어요. 그런데 이 청년들은 어차피 돈이 부족하니 부족한 대로 혼수를 장만하기로 하고 자신들의 결혼의 앞날을 위해서 10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가지고 왔어요. 참 대단한 젊은이라고 생각했어요. 연탄 한 장 한 장에는 이처럼 이들의 온정이 그대로 녹아 있어요.

이재만_ 금전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재능을 기부하는 재능 기부자들도 많을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이 기억나십니까?
허기복_ 고마운 분들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특히 저희 재단법인 이사님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연탄은행 이사인 김용균 변호사님과 이재만 변호사님의 영향으로 법조계에서 연탄봉사 바람이 불었고요, 정애리 씨는 10년 가까이 꾸준히 저희를 도와주시고 계시고, 서희태 지휘자님도 크고 작은 행사에서 재능기부를 지속적으로 해주고 계세요. 이분들 덕분에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어요. 또 일을 함께 하는 식구들인 자원활동 활동가들에게도 감사하죠. 정말 많은 일들을 묵묵하게 해주고 있어요. 여름이면 연탄가구 조사하고, 데이터를 구축하고, 또 받으신 분들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등 이들의 땀이 없었으면 지금의 연탄은행은 없었을 거예요.

Part 2.

가난은 불행이 아니라 불편한 것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는 물음을 던진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인간들은 소유와 존재의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끊임없이 뭔가를 소유하기 위해 애를 쓴다. 마음에 드는 좋은 옷과 멋진 승용차, 그리고 좋은 집을 소유하는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됐을 때, 성공을 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허 목사를 보면서 ‘이런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의 삶은 ‘소유보다는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했다. 소유가 물질적이라면, 존재는 정신적이고 영적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철학적으로 사고하며 삶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는 삶. 바로 그의 삶이 그렇다. 그가 이제껏 걸어온 삶도 그랬고, 앞으로 걸어갈 삶도 그렇다.

이재만_ 연탄은행보다 먼저 생긴 것이 밥상공동체입니다. 밥상공동체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습니까?
허기복_ 밥상공동체를 세운 것은 1998년도예요. 당시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로 실직자와 노숙자가 많이 생겨났죠. 사람이 기본적으로 먹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적어도 내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의 반경 4km까지는 밥을 굶고 사는 사람은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밥상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쌍다리 밑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재만_ 과거에 목사님도 어려운 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절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허기복_ 제 고향이 경기도 부천이에요. 아버지는 농부셨죠.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희 집안 또한 어렵게 살았어요. 집에 연탄이나 쌀이 풍족하게 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는 항상 외상으로 연탄을 사오셨어요. 많이도 못 샀어요. 많이 사봐야 20~30장 정도였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어렵게 살면서도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짜증을 내거나 한탄을 하는 것을 본적이 없어요. 그저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시고, 찬송가를 부르시는 것이 전부였어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려울 때는 어머니처럼 이겨가야 되겠구나’ 라고요.
또 잘은 모르지만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은 참 훌륭하신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 영향 때문에 신학과에 진학했어요. 대학시절에도 항상 어려웠어요. 밤이면 차가운 자갈길을 맨발로 다녔어요. 단벌 구두가 닳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죠. 그때 맨발로 길을 걸으면 서 생각했어요. 내가 가난을 좀 이기고 나면 나 같은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아야 겠다고요. ‘밥상공동체’라는 이름은 그때 지어 놓았어요.

이재만_ 아무래도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것 같아요. 우리들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허기복_ 우선 불우이웃이라고 하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해요. 왜냐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지 불행하거나 불우한 사람은 아니에요. 언론 매체를 보면 ‘불우이웃돕기’라고 하는데, 불우이웃이라는 용어는 상당히 교만하고, 결례되는 용어입니다. 어려운 이웃이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라는 용어로 바꿔가야 해요. 어차피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날 때는 없이 태어났어요. 그러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을 봤을 때 내 모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좀 성찰하는 모습을 가져야 해요.

이재만_ 이 글을 보시고 나눔의 손길을 보태고자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어떻게 도울 수 있나요
허기복_ 전화 1577-9044, 홈페이지(http://www.babsang.or.kr)를 통해서 문의하시면 됩니다. 일단 후원은 돈만은 아니에요. 재능기부도 큰 도움이 되죠. 아이들을 위한 교육, 연탄배달, 의류 지원 등 방법이 많아요. 쌀 지원도 좋고요. 500원이면 연탄 한 장으로 여섯 시간 동안 방안을 따뜻하게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어요.

이재만_ 최근 몇 년간 정치권에서도 복지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현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허기복_ 제가 논할 바는 못 돼지만, 현장에서 볼 때 정치권에서 사각지대를 자세히 살펴서 촘촘한 정책이 나왔으면 해요. 봉사활동을 하는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파트너십을 갖고 정책을 펴나갔으면 해요. 일례로 정부가 공기업의 만성적자 해결을 위해 연탄가격을 인상하려고 하는데, 연탄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연탄가격을 인상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기업의 만성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연탄가격을 올린다는 것은 정책이 아니고 전략이에요. 정부는 정책을 세워야지 전략을 펼치면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현장의 이야기를 듣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입니다.

Part 3.

해외로 뻗어나가는 나눔 프랜차이즈

그의 나눔 정신은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도 번졌다. 허 목사는 2011년 중앙아시아 키르키스스탄에 연탄은행 34호점, 해외 1호점 연탄은행을 설립했다. 그는 어려운 이웃이든 국가든 풍성해서 나누는 것보다 작으면 작은 대로 나누는 마음을 가지면 우리 모두를 살찌우게 하는 힘이 되고 글로벌 시대에 소통하는 메시지가 된다고 믿고 있다.
우리나라는 잘 사는데 옆의 나라는 빈곤하다면 오늘날의 행복의 개념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의 풍족함과 편안함으로 인한 행복을 조금 줄이고, 남의 불행을 조금 줄여주고, 우리의 행복을 나누는 모습들을 가지면 지구촌이 모두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이재만_ 2011년 10월 키르키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 해외 1호점을 설립했습니다.
허기복_ 키르키스스탄은 국토의 94%가 산악지역이며 전기와 가스 등 난방요금이 비싸 국민들의 난방비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빈곤층의 경우 동상환자들이 속출하고 있을 정도예요. GNP는 천 달러가 안 되기 때문에 에너지 빈곤층이 상당히 많은 편이에요. 우리 동포인 고려인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얼마 전 연탄공장도 세워졌어요. 거기서는 연탄이 한 장에 360원인데, 일년에 약 십만장 정도 연탄을 공급하고 있어요. 키르키스스탄 정부에서 연탄은행이 키르키스스탄의 에너지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 줬다는 평가를 들었어요. 키르키스스탄에 굉장히 호응이 좋고, 고려인들도 어깨를 좀 필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2년전 국위를 선양했다고 해서 외교부장관에 표창을 받기도 했어요.

이재만_ 일각에서는 이런 국제적 나눔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국내도 아직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굳이 해외까지 도울 필요가 있냐는 것일 텐데요.
허기복_ 그 말에도 일리는 있다고 봐요. 다만 나눔이라고 하는 큰 틀에서 볼 때 단순히 지리적, 제한적, 부분적인 틀 속에서 보는 것보다 글로벌 시대로의 인식전환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우리나라 6·25때를 보면 터키를 비롯해서 외국의 국가나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도와줬어요. 그들이 풍족한 선진국가여서 도운 것이 아니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더 어려운 이웃과 국가를 위해 도우면서 사랑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한 인간과 한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우리가 좀 보듬고 가야 하지 않느냐는 그런 대우주적인 사고와 발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재만_ 그간 연탄은행을 운영해오면서, 운영상의 위기를 여러 번 넘기셨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가장 어려울 때는 언제였고,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셨나요
허기복_ 어려움을 말하자면 이제껏 지원해온 연탄만큼 많아요(웃음). 인력도 부족하고 재원도 부족하고, 사회복지에 대한 전문 인력도 부족하고, 달라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은 부족하고, 한두 가지가 아니죠. 처음에는 이 일의 취지를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가 아팠을 때였어요.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이었는데, 어느 날 집에 갔는데 애 얼굴이 시커멓게 됐더라고요. 학교에서 부딪혀서 넘어졌는데 크게 다쳤다고 하더군요.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돈이 없었어요. 이웃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인데, 정작 내 아이가 아픈데 병원비가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후원금을 쓸 수는 없는 거고…. 그런 딜레마가 있었어요. 만약 제가 어렸을 때 가난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이 어려움들을 이겨내지 못했을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가난은 나를 가르치는 ‘하늘나라 교과서’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여기서 이기면 되는 거지라는 사고를 갖게 됐어요. 그게 지금 얻은 긍정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재만_ 연탄은행을 통해 어떤 비전을 품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허기복_ 무엇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웃음을 짓고 함께 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또 나아가 이를 통해서 돕는 사람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에요. 봉사는 비록 그 시작이 허세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진정성이 나오지는 않지만, 하다 보면 진정성이 나오게 돼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500원의 가치를 잘 몰라요. 그런데 연탄봉사 온 아이들에게 연탄 한 장에 500원이고, 그 돈이면 할머니가 여섯 시간 정도 따뜻하게 난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500원의 가치를 달리 갖더라고요. 용돈을 모아서 “연탄 열 장 주세요” 하면서 후원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어려서부터 지식적 사고도 중요하지만, 인성교육과 전
인적 발달을 위해서 봉사나 기부문화를 어려서부터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아이들이 장성해서 계속되면 그것이 선진국이 아닐까 싶어요.

이재만_ ‘나눔은 자꾸만 이자가 붙는 행복한 투자’라는 말을 자주 하신다고 들었어요. 이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허기복_ 봉사는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자기를 위한 선한 투자입니다. 나누면 당장은 내 주머니가 비는 것처럼 느끼지만, 나눔은 이상하게 선순환의 원리가 있어요. 나누고 돌아가면 나눔이 돌고 돌아서 처음 출발했던 그 자리로 들어오죠. 나눔이라는 것이 남을 위하는 일 같지만,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투자일 수 있어요. 합리적으로 올바른 사람이라면 나눔에 투자하는 것이 옳은 것 같아요. 나눔 창구에는 공수표가 없고, 은행에는 이자율이 떨어질 수 있지만, 여기에는 이자율이 떨어지지 않죠.
나눔으로써 결국에는 자기 존재의 가치를 느끼고, ‘나눔=행복’, ‘행복=나눔’이라고 생각해요. 기차의 레일이 두 개가 있듯이 같은 흐름으로 흘러가야만 결국에는 자기 존재가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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