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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장르물의 위력-클래스가 다르다
케이블 장르물의 위력-클래스가 다르다
  • 이윤지 기자
  • 승인 2015.02.21 2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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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로맨스의 따분함이나 스타 타이틀 롤의 뻔한 트렌디 드라마와 다른 그 무엇. 바로 케이블 미니 시리즈물에 있다. <나쁜 녀석들>, <미생>, <닥터 프로스트> 등이 공중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서로 아주 다르며 모두 굉장하다.

취재 이윤지 기자 사진

얼마 전 종영한 <나쁜 녀석들> 시청자 게시판엔 아우성이 가득하다. ‘시즌 2’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를 묻는 글과 새 시즌을 방영해달라는 요청들. 이 드라마는 공중파에서 보기 힘들었던 본격 액션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까지 내걸어 화제성을 제대로 모은 케이블 액션이었다. <나쁜 녀석들>뿐만 아니다. 세련된 범죄 수사물, 직장인 드라마, 심리 수사극까지 케이블 드라마의 쫄깃한 재미. 

케이블 드라마, 열광할 거리가 되다

요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를 꼽자면 <미생>, <나쁜 녀석들>일 것이다. 또 볼 만 했던 버라이어티를 꼽으라 한다면 <슈퍼스타K 6>, <삼시세끼>가 아닐까. TV 버라이어티를 조용히 평정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케이블 방송사들이다.
인기 웹툰이 원작이라는 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지만 뛰어난 연출을 선보이며 마니아 층을 공고히 거느린 <미생>의 쾌거가 가장 눈에 띈다. 전쟁터 같은 사무실을 그대로 재현해 원작의 세밀한 장면들만큼이나 공감을 이끌어내며 인기몰이 중인 <미생>은 주인공 ‘장그래’와 오 차장‘을 주축으로 매회 아주 흥미로운 ’판‘을 벌이고 있다.
많은 말을 하지도, 내레이션을 남발하지도 않으면서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직장인들, 또는 ‘미생’들의 애환을 어루만진다. 주된 힘은 집중력일 것이다. 애먼 연애 사건으로 극을 흔드는 일이 없고 철저히 사실적이다.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탁월한 각색만큼이나 드라마 <미생>만의 ‘한 수’도 분명히 있다. 에피소드마다 꾸준히 새 인물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더 다채롭게 이어진다. 과감하고 색이 짙은 케이블 장르물만의 기법은 그간 예측 가능하고 이슈에만 편승해 왔던 연속극들에 질린 취향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하다. 
철저히 사전제작하고 캐릭터에 잘 맞춰진 배우들로 승부를 건 제목부터 수상한 <나쁜 녀석들> 역시 오랫동안 화제다. 지난달 13일 11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드라마 속 의문점들에 대한 궁금증이 시청자들을 애타게 했다.
<나쁜 녀석들>의 경우 ‘사이코패스’, ‘연쇄살인’, ‘1급 범죄자’ 같은 섬뜩한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자칫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으로 반감을 살 법도 했다. 어둡고 긴장이 끊이지 않았던 <나쁜 녀석들>은 최고의 범죄자들이 더 나쁜 놈들을 잡는다는 아이러니한 설정의 디테일을 강단 있게 꺼내보였다. 정직 중인 강력계 형사와 각각 중범죄로 수감됐던 이른바 ‘나쁜 녀석들’이 주인공인 하드보일드 수사극은 공감의 단초가 없는 시놉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강력계 형사와 조직폭력배,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살인청부업자 등의 1급 범죄자들은 드라마틱하지만 열광의 대상이 되기 힘든 이름들이 아닌가. 그러나 <나쁜 녀석들>은 여기저기서 찬사를 받았고 ‘녀석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점점 더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다.
근육 파열로 6주, 손목 부상으로 전치 6주. 바로 <나쁜 녀석들> 배우들의 실제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쁜 녀석들> 촬영 준비로 바빴을 시기에 만난 배우 조동혁은 이미 ‘정태수’의 얼굴이었다. 검게 태워 더욱 단단해 보이는 몸과 삭발한 머리, 강도 높은 운동으로 새 역할에 온 심신을 맞춰가고 있던 그. 웰메이드 드라마에서 제대로 승부해 보는 것이 목표라던 조동혁은 ‘웰메이드’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다. 김상중, 마동석 같은 색깔 있는 배우들의 깊이 있는 열정 역시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사이코패스를 연기한 박해진 역시 극찬을 받으며 몰입도를 높였다.
누구 하나 <나쁜 녀석들>의 균형감을 깨지 않은 채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조절하며 회차를 이어나갔기 때문에 우리는 숨 막히는 스릴을 맛볼 수 있었다. 해외드라마를 쉽게 접하게 된 국내 시청자들의 안목도 평균 이상이 됐다는 점도 이 같은 상황과 연관이 있다. 장르의 매력과 치밀한 구성으로 무장한 웰메이드 드라마의 만족도를 이미 맛본 드라마 시청자들은 더 이상 인기 있는 배우, 잘 나가는 작가, 익숙했던 내러티브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아주 안심할 만한, 긍정적인 변화다.   
 

 

‘선택과 집중’이 만들어낸 쾌거

‘케이블 드라마’가 선전한 것은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가깝게 보자면 <응답하라 1997, 1994>는 세대를 막론하고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고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는 시즌 14를 준비 중이다. <나인>의 센세이션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이 20부작 드라마는 출연진만큼이나 제작진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킬 정도로 호평을 받았었다. 개국 초기 ‘19금’물이나 쇼 프로그램 정도가 눈길을 잠시 끌었을 뿐 드라마 부문에서 이 같은 성장을 이루리라고는 쉽게 예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재미있는 볼거리는 케이블과 종영방송에 집중돼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영향력 있는 작가들-김수현, 노희경 등-도 편성에 눈을 돌리는 것을 보면 케이블 채널이 독보적인 자리를 형성해내는 데 이미 성공한 것이다. 인물을 발굴하고 장르성을 실감나게 고민한 드라마들은 오랜 매너리즘을 단숨에 걷어내고 ‘TV 볼 맛’을 찾아줬다.
조금 무섭게 시작했고, 1급 범죄자들의 마지막은 진정성 있는 속죄와 진한 감동으로 끝을 맺은 <나쁜 녀석들>에 이어 <미생>도 마지막을 향해 간다. ‘원 인터내셔널’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라기엔 너무나 낯설면서도 기묘하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회사원들이 빼곡하다. 이름은 희미하지만 사무실이라는 공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극적인 전략이 숨어들어 있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으로 환호를 이끌어낸 케이블 장르 드라마. 엇비슷한 시놉시스 덕에 그게 그거인 것 같은 일명 ‘아침드라마’나 ‘주말드라마’와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각양각색인 이야기들 중 내 입맛에 맞게 잘 선택해 지루하지 않게 집중할 수 있는 신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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