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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의 깊이
모정의 깊이
  • 김도형 기자
  • 승인 2015.02.23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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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

저녁에 헤드폰을 쓰고 노래를 들으며 한 시간 정도 걷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된 지 오래다.
집과 가까운 불광천을 따라 한강까지 가는 코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혼자 호젓하게 걷기 좋은 길을 찾아내어 꾸준히 걷는다.

그 길은 서울 마포와 경기도 고양의 경계를 이루는 향동천을 사이에 둔 둑방길인데,
이 쪽과 저 쪽을 연결한 작은 다리 두 개를 이용해 트랙을 돌 듯
한 시간에 몇 번이나 서울과 경기도를 넘나든다.

경기도 길 쪽 목재 가구공장에는
내가 지날 때마다 꼬리를 치며 반가워하던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기르며 사랑을 주었던 추억 속의 개들을 떠올리며
쪼그리고 앉아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곤 했는데,
지방 출장을 다녀와 제법 오랜만에 그 곳을 지나던 하루는
그 개가 갑자기 사납게 짖으며 달려드는 통에 혼이 나서 뛰듯이 달아난 적이 있다.

건너편 길을 걸으며 암만 생각해 봐도
나와 그토록 사이가 좋았던 그 개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혹시 그 날 입은 내 옷 색깔이 자극을 주어서 그랬을까 하는 짐작을 해보며
다시 그 공장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 때도 역시 동네가 떠날 듯이 짖어대며 나를 위협했지만
이번에는 무서워도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서서
도대체 그 원인이 뭔지를 알아 보려는데,
순간 공장 안쪽에서 몇 마리의 새끼들이 쪼르르 달려나와
내 신발 끈과 헤드폰 줄을 물고 흔들기도 하며 천진난만한 장난을 쳤다.

나와 새끼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본 어미개는 더 크게 짖었는데
그제서야 그 개가 낳은 지 얼마 안 된 자기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본능으로
사람의 접근을 경계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끼들을 쓰다듬어 주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둠이 짙어지고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글 사진 김도형 기자

 

어미는 새끼들을 둥지로 들였을 것이다.
사람이나 개가 지능은 다를지 몰라도
자식이나 새끼를 향한 모정의 깊이는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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