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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삼시세끼> 연출의 힘
<무한도전>, <삼시세끼> 연출의 힘
  • 이윤지 기자
  • 승인 2015.05.22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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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큰 웃음, 누가 만들었나


 

‘토토가’로 또 한 번 바람을 일으킨 <무한도전>, ‘꽃보다’ 시리즈부터 <삼시세끼>로 이어진 라이프 채널, 1988년 버전으로 돌아온다는 ‘응답하라’ 다음 시즌. 이 프로그램들의 충성도 배경은 연출의 힘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스타들의 존재감만큼 익숙해진 ‘잘 나가는’ PD들의 뛰어난 힘. 

취재 이윤지 기자 | 사진 MBC 제공

웃을 일 없는 나날들이라고는 하나, 같이 웃자고 만들어지는 콘텐츠들은 넘쳐난다. 쉴 새 없이 빠르게 소재들은 회전하고, 더욱 가볍고 황당한 ‘웃음거리’들이 등장한다. 이런 와중에 가볍지만은 않은, 독특한 히스토리를 만들어낸 몇몇 프로그램들이 있다. 

‘토토가’가 보여주는 김태호 PD의 토요일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의 여운이 길다. <무한도전>다운 발상이 가져온 굉장한 결과다. 여느 때처럼 <무한도전> 멤버들은 재미난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 ‘그때 그들’이 소환되고 흥겨웠던 한때가 작은 무대 위에 재현됐다. 다시 보니 좀 촌스러운 무대의상, 다시 만나니 너무도 반가운 우리가 열광했던 가수들. 그리고 무엇보다 일파만파 퍼지던 기대 이상의 감동은 꽤 오랫동안 우리로 하여금 ‘앙콜’을 외치게 했다. 김태호 PD는 따분한 얼굴로 TV 앞에 앉아 있는 우리의 갈증을 잘 아는 사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만 한 낭만이 없다는 것이 깨달아지면서부터 8, 90년대를 되짚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 자체로는 신선하다 볼 수 없는 이 소재가 어떻게 왕년의 스타들에게 새로운 스포트라이트를 선물하고 바랜 노래들을 꺼내 보게 했을까. <무한도전>의 이 기획은 연출의 힘을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무도’ 멤버들은 매주 새 주제를 이야기할 때, 마치 그것이 아주 편안한 농담 속에서 툭 튀어나왔다는 듯한 뉘앙스로 포문을 연다. 치밀한 계획이나 묵직한 의미를 여유롭게 잠시 뒤로하고 ‘재밌게’ 도전을 제안하는 이 세련된 태도가 <무한도전>에 중독되는 첫 번째 이유일 거다. 넋 놓고 웃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찔끔 흐르고 자막에 새겨 넣은 은유는 화면이 끝난 후에도 줄곧 회자된다. ‘웃음과 감동’ 또는 ‘웃음 끝에 감동’ 같은 공식을 쓰지 않고도 각양각색의 ‘후폭풍’을 이끌어 내는 노련함이 그 두 번째다. 
<무한도전>에 열광하는 이들은 꽤나 마니아틱하다. ‘국민예능’이라는 준수한 명찰을 달고도 그렇다. 연초마다 프로그램 멤버들의 도전과 행적을 담은 ‘무도달력’으로 새 마음을 다지는 이들이 넘쳐나고 공개방송이 한 번 잡히면 마니아들은 군단을 이뤄 몰려간다. 가히 종교적인 이런 광경이 <무한도전>의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지금의 <무한도전>은 좀 다른 것 같다. 캐릭터와 설정이 주는 재미보다 시사를 재미있게 보게 하는 재미가 더 커지면서 판이 달라졌다. 어린이집 교사 체험 편은 늘 하던 ‘도전’이기도 했지만 얼마 전 벌어졌던 사태에 대한 재고를 이끈다. 넘쳐나는 ‘육아 예능’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포맷이다. 토요일에 기대되는 것은 <무한도전>의 관점과 대처, 그리고 메시지가 아닐까. 

TV 피플 사로잡는 연출가들

차승원과 유해진의 ‘끼니’ 챙기는 모습을 보는 재미, <삼시세끼>의 나영석 PD는 꾸준히 소박한 일탈을 풀어내 왔다. <1박 2일>로 큰 인기를 얻고서 케이블 매체로 이적한 그는 해외여행 프로젝트 <꽃보다 ㅇㅇ> 시리즈로 승승장구했다. 뒤이어 ‘자급자족 어부라이프’라는 부제를 단 독특한 시리즈 <삼시세끼>까지. 스타를 기용해 프로그램을 꾸리기는 했지만, 나영석 PD의 연타에는 연출가의 ‘발견’이 그 배경이다. 이승기, 이서진에게 ‘짐꾼’이라는 역할을 부여하고 여행을 TV로 즐기는 것을 가능하게 한 그는 역시 즐기듯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으로 라임을 맞췄다. 다큐멘터리와 버라이어티의 훌륭한 조합은 여행사까지 득을 보는 수준이었다. ‘꽃보다’에 대한 궁금증은 출력이 좀 다르다. 연출가와 그의 계획이 언급되면서 프로그램의 색깔이 더 또렷해지는 거다. 나영석 PD가 다음엔 무얼 꾸밀지, 누구를 캐스팅해서 어디로 보낼지를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이서진이 그를 두고 ‘연예인 병’ 걸렸다고 농을 할 만큼 나영석 PD는 화면에 거침없이 얼굴을 비추고, 자주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프로그램은 더욱 실험적으로 느껴지며 그 안으로 한 번 들어가 보고 싶게끔 한다. 부러 친해지자고 꼬시지 않는데, 휑한 밭을 앞에 둔 난감한 표정의 연예인을 찍어 놓은 것을 보자니 ‘저게 뭐 하는 건가’ 하고 한 번 슬쩍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거다. 
먹는 방송이 온 군데를 휩쓰는 모양새를 보고 그가 내놓은 것은 허허벌판에서부터 시작하는 ‘끼니’ 이야기. 고생의 아이콘이 된 이서진을 다시 또 허허벌판에 내놓고는 몇 번이나 그와 티격태격하며 본인도 출연했다. 차승원과 유해진을 ‘부부’라 놀리는 자막, 차승원이 요리의 신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는 강도 높은 삼 시 세 끼니 미션이 백미인 <삼시세끼-어촌편>은 나영석 PD의 무심한 듯 기발한 연출을 다시금 높이 사게 한다. 
‘응답하라’ 시리즈 역시 그렇다. <응답하라 1997>이 성공을 거두고 1994가 이어진다고 알려지자 애매한 연도 차이부터 관계도까지 전작과 비슷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시큰둥한 반응도 일각에선 있었다. 결과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경우 작가와 연출가 사단에 대한 칭송이 빗발칠 만큼 연출 집단의 훌륭한 감각과 결속이 돋보인 케이스이다. 지난 세대를 추억하는 장면들은 늘 있어 왔고, 기껏해야 흉내를 내는 세트 정도였다. 그러나 응답을 바라는 간절함은 집착에 가까운 고증과 재현을 낳았고, 과연 그 시절을 통째로 갖다 놓은 듯 굉장했다. 곧 <응답하라 1988>이 찾아온다고 한다. 6년을 거슬러 올라가 새 이야기를 써 낼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주인공도 관건이겠지만 매체와 시청자는 모두 응답하라 사단이 어떤 이야기를 다룰 것인지, 어떤 부분을 변주할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보는 맛’은 이제 단순히 누가 나오느냐에 전적으로 기대어 있지 않다. 프로그램의 핵인 연출가가 어떤 수를 쓸 것인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등에 관한 세세한 소통을 원하면서 충성도는 더 높아진다. TV 보는 일을 아직도 한심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나? 그건 이미 오락의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인데다 연출의 맥락과 기량을 가늠해 보고 필모그래피를 더듬어 가며 감상하는 하나의 작업이 됐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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