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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어셈블리'의 작가 정현민, 사람, 정치, 그리고 희망을 말하다
드라마 '어셈블리'의 작가 정현민, 사람, 정치, 그리고 희망을 말하다
  • 권지혜
  • 승인 2015.11.27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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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드라마다
 

지난 여름 우리는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아주 특별한 캐릭터를 볼 수 있었다. 진상필. 용접공 출신 해고노동자. 국회에 입성해서는 정치백단의 국회의원들과 맞서 전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소신을 펼치던 용감한 정치 초년병. 그가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울부짖으며 외쳤던 목소리는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진한 여운으로 시청자들에게 남아 있다.
모처럼 사람냄새 물씬 나는 휴먼정치드라마. 어셈블리. 비슷비슷한 드라마가 범람하는 시대에 어떤 드라마와도 확실히 다른 향기와 색깔을 보여준 어셈블리의 정현민작가를 만나 드라마와 삶을 오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맑고 선선한 가을초입의 오후 홍대 카페에서 만난 그는 감기몸살이 왔다며 잠긴 목소리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창 글 쓸 때는 아플 새도 없다가 집필 끝나고 나니 긴장이 풀렸나 봐요. 몸살기가 오네요.”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와 체력이 고갈되는 작업을 끝내고 작가는 신열을 앓는 듯했다. 
어떤 중견 드라마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드라마작가는 형극과도 같은 길이라고 했던가.

쓰고 싶었고 써야만 했던 드라마 <어셈블리>

어셈블리는 용접공 출신의 해고노동자 진상필이 국회에 들어가 소위 정치공학에만 능숙한 의원들과 부딪치고 맞서는 과정을 보여주며 무엇이 진정한 정치인지를 생각해보게 한 명품드라마.
기존의 정치드라마에서 보여준 암투와 배신 등의 장치보다는 정치현장의 리얼한 에피소드와 희로애락을 보여줘 사람냄새 나는 휴먼드라마로 그려 냈다는 점에서 새로운 한국형 정치드라마의 모습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정치물은 넓은 시청자 층을 끌어들일 만한 대중적 장르가 아닌 것이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스토리를 쓰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한국이 드라마 강국이라고 하는데 이젠 그 명성에 걸맞게 장르가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정치물에 대한 수요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런 드라마를 누군가 써야 하는데 그 분야에서 일해 보았고 잘 알고 있는 내가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한번 국회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써야지 했는데 그 기회가 빨리 온 거죠.”
알려진 대로 정현민작가는 국회의원 보좌관을 십년이나 한 특이한 이력의 작가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국회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더 쓰고 싶었던, 아니 써야만 했던 소재였다. 드라마에선 국회가 실제 하는 일들이 디테일하게 그려졌고 전문적인 용어들도 많이 등장했다. 
시청자들은 어셈블리를 통해 예산안심사부터 법안심사까지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을  뉴스보다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고, 그들을 보필하는 보좌관들의 세계도 알 수 있었다. 
“시청자들 중엔 우리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어셈블리를 보고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돼 국회의원의 홈페이지를 방문했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작가로서 작은 보람을 느낍니다.”

이상과 실존에서 그려낸 캐릭터, 진상필  

진상필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우리 현실에서 가능할까? 판타지일 뿐이 아닐까?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판타지 요소가 있지요. 멜로드라마에 등장하는 멋진 왕자님도 사실 판타지 아닌가요. 다만 로맨스와 달리 정치드라마에선 사람들이 리얼리티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상필 같은 국회의원이 세상에 어딨냐며 있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했다. 물론 작가도 동의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진상필이 완전히 판타지만은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용접공을 비롯,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들이 있어요. 그리고 제가 보좌관 생활을 하며 접한 의원들의 3분의 1 이상은 정말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상습침수 구역으로 달려가 밤새도록 살피는 의원도 있었고, 4년 내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의원들도 있었어요. 오히려 너무 맹목적으로 지역 현안을 챙겨 제가 10회 때는 ‘시의원, 구의원 아니다.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는 대사를 썼을 정도예요.”
하지만 그렇게 열의를 가지고 일하던 의원들이 변하는 모습도 많이 봤다고. 이유는 다음에 또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소신보다는 계파니 줄서기니 등의 왜곡된 정치 구조가 생기더라는 것.
“우리가 국회의원을 뽑는 건 본선이구요. 그 이전에 당내공천이라는 예선이 있어요. 거기에서 탈락되면 본선에 나갈 수조차 없기 때문에 당론에 따르고 줄을 서고 하는 것이죠.”
십년이나 보좌관 생활을 한 경력답게 국회의 실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작가의 보좌관 시절이 궁금했다. 실제로 극 중 진상필을 보필했던 최인경처럼 정말 동지 같은 의원들이 있었을까? 
“나를 신뢰하고, 서로 생각을 같이 하는 좋은 의원을 만나 보필한다는 것은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저도 다섯 명의 의원을 모셔봤는데 그 중 그런 의원들도 있었지요.”
보좌관 일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적인데에 반해 드라마 쓰기는 홀로 외로운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작업. 힘들진 않았을까.
“작가로 데뷔하고 나서 한동안은 다시 보좌관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었어요. 정도전을 쓰기 전 아침드라마를 썼는데 8개월이나 작업실에 갇혀 꼬박 모니터만 보고 있자니 정말 외롭고 힘들더라구요. 하지만 정도전 이후 많은 사랑도 받고 굵직한 상도 받으며 이젠 이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구나 생각하게 됐지요.”

가슴을 꿰뚫었던 명대사, 명연설

전작 정도전에서처럼 이번 어셈블리에서도 작가의 명대사가 돋보였다.
“대한민국 법이 호떡만도 못합니까? 법을 개떡같이 만드니까 판사들이 호떡같이 뒤집는 겁니다.”
“정치도 용접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도 붙이고,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도 붙이고, 승자와 패자도 붙이고 붙여서 서로 하나가 되는 나라를 만드는 게 바로 정치였으면 좋겠습니다.” 
“지옥 같은 세상을 신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구원하려고 만든 게 정치입니다 ”       
정치 일선의 희로애락을 몸소 체험한 작가이기에 이런 명대사들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마지막 회에 진상필이 혼신을 다해 외쳤던 연설이다.
“저는요 국민들에게 믿게끔 해주고 싶어요. 국가가 날 절대 버리지 않는다고, 내가 쓰러지더라도 날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움을 준다고. 그래서 나는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지금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저요 이 딴청계의 대빵 진상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다했을 때는 국가가 의무고 국민이 권리입니다.”
어떤 정치인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던 이 연설은 깊은 감동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사실 그것이 이 드라마를 통해서 제가 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좌파와 우파로 대립하고 있지만 좌든 우든 이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기에 확신을 가지고 썼습니다.”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움켜잡을 수 있는 명대사의 비결은 뭘까? 
“의도하고 쓰진 않아요. 명대사를 잘 쓴다기보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캐릭터를 잘 그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 거예요. 캐릭터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사가 뭘까 생각하면 직관처럼 떠오르죠. 그리고 좋은 배우들의 명연기가 그것을 살려주면 명대사가 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대사도 연기자가 연기를 못하면 구린 말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래서 좋은 연기를 펼쳐준 정재영씨, 송윤아씨를 비롯 연기자 분들에게 감사하지요”
좋은 대본은 명연기와 명연출을 만났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고 하며 겸손해하는 작가를 보며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듯 명품연기와 좋은 대본, 명연출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다소 저조했던 것이 아쉽지 않았을까.
“물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명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더 봐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요. 하지만 시청률보다는 쉽지 않은 이야기를 정말 잘 뽑아내야겠다는 내 자신과의 싸움이 더 부담이었어요. 다행히 드라마를 끝내고 내 스스로에게 잘 해냈구나하는 뿌듯함이 들더군요. ”
사실 시청률을 작심하고 썼더라면 불륜, 재벌2세, 삼각관계, 치정 등의 소위 흥행 요소를 하나쯤은 집어넣을 수도 있었을 터. 하지만 작가는 쉽게 갈 수 있는 그런 흥행카드를 써먹지 않고 정말 사람냄새 나는 드라마로 뚝심 있게 써내려갔다. 그래서 더욱 어셈블리가 가치 있는 드라마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집필을 하는 동안 정말 좋은 드라마 쓰고 있으니 시청률 신경쓰지 말고 꿋꿋이 쓰라는 선배 작가들의 격려 전화가 많았다고. 
시청자 게시판에는 오히려 시청자들이 왜 이런 드라마가 시청률이 나오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하는 글들이 많았다.   
어셈블리는 자극적인 소재로 화제가 되었다가 끝나면 금세 잊혀지는 드라마가 아닌 끝나도 여운이 오래 남는 근래 보기 드문 명품드라마였다.

마흔 즈음에 새로운 꿈을 꾸다

많은 작가들이 작가 지망생 시절을 오래 겪으면서 작가가 되는 것과는 달리 정현민작가는 우연히 드라마작가의 길을 걷게 된 케이스.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던 시절 한 드라마 작가가 취재를 왔다가 언어의 감각이 남다른 정작가의 가능성을 엿보고 드라마작가 수업을 받길 권했던 것. 그래서 그는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국회 바로 앞에 있는 작가교육원에 등록하게 됐고, 수업을 받은 지 일년 만에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가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그때 작가 인턴 월급이 120만원인데 매달 대출 이자가 140만원이 나갔거든요. 그래서 제가 알바라도 하면서 해볼 마음이었어요. 그때 하지 않으면 제 인생에 후회할 것 같더라구요.“
남들보다 다소 늦게 작가가 되었지만 그는 정치극과 사극은 물론 정서가 전혀 다른 아침 드라마까자 두루 섭렵하며 보기 드문 멀티플레이 작가로서 입지를 굳혀 왔다.
이런 저력은 쓰고 거친 인생의 다양한 맛을 경험해온 작가의 내공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정작가는 젊은 시절 형편이 어려워 공단에 취직해 일하다 주경야독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와서도 빈민층과 노동자를 위한 데모에 참가하며 뜨거운 학창시절을 보냈고, 졸업 후에는 십수 가지의 직업을 거치며 절절한 삶을 체험했다. 이렇듯 만만치 않은 내공에서 나오는 드라마이기에 그의 드라마에선 살냄새가 나고 피냄새가 난다. 
한국 드라마 계에 ‘정현민’이라는 이름 석자를 확실히 각인시킨 그가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아직 정한 건 없어요. 하지만 이젠 써야 할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대하 사극은 참 보람 있는 일이어서 좋구요. 50대 중후반쯤 되면 독립영화도 만들어 방송에서 다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마음껏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허락된다면 인문학적인 라디오프로그램의 진행자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결국엔 ‘저 사람은 참 좋은 드라마를 썼다’,‘저 사람으로 인해 한국드라마가 풍성해졌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작가였으면 합니다.”
그것이 드라마든 영화든 라디오프로그램이든 정현민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왠지 헛헛한 우리들의 마음을 채워줄 온기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의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지 않을까?

취재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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