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뉴스
영원한 청년 작가 박범신 ‘노년의 삶에 대한 철학’
영원한 청년 작가 박범신 ‘노년의 삶에 대한 철학’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6.03.10 0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작가 박범신. 그가 마흔두 번째 소설 <당신-꽃잎보다 붉던>으로 돌아왔다. 그가 이번에 파고든 주제는 사랑과 죽음, 삶이다. 영원한 청년 작가라 불리는 그가 사뭇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가는 무의식적으로나마 자신의 인생을 작품에 투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에게도 생물학적 나이를 무시할 수 없는 심적 변화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한가로운 평일 오후, 경치 좋은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취재 송혜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유난히 을씨년스러운 날에 만난 그는 매서운 추위에 다소 움츠릴 법도 한데 유쾌하기만 하다. 20여 년 전 돌연 절필을 선언하며 히말라야로 떠났던 그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에베레스트 산에 올랐을 만큼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요즘은 서울과 논산을 오가며 대학 강단에서 젊은 작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데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사랑의 영원성을 믿지 않는 남자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도, 가장 불행하게도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사랑이다. 행복과 불행 사이에는 늘 영원한 사랑에 대한 믿음과 불신이 마치 두 속성을 잇는 징검다리처럼 연결되어 있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두 부류가 존재한다. 사랑 끝에 사랑이 있다고 믿는 사람과 사랑의 영원성을 불신하는 사람. 박 작가의 경우 후자에 속한다.
“사랑의 불멸은 판타지 같은 것일지도 몰라요. 끝까지 지켜 나가기가 참 어렵지요. 연애해 본 사람들은 다 알잖아요. 오래가던 가요? 저는 연애를 정념의 단계라고 봐요. 마음속에서 뜨거운 열망이 일어나는 단계. 이게 연애죠. 생물학자들도 정념의 단계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3년밖에 가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 다음은 일상화의 과정이죠. 긴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순애보가 가능해지려면 죽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쓰린 소리도 마다치 않았다.
“순애보는 죽음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어요. 제가 젊어져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고 해도 부동심으로 지켜 나갈 자신 없습니다. 노년에 죽음을 준비하며 마침내 평화에 이르러서야 사랑의 영원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랑의 지속성을 믿는 여자와 사랑의 불멸은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남자가 만났을 때 두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그의 부인은 사랑의 지속을 믿지 않는 그의 곁에서 사랑의 영원성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하는데…. 이에 그는 정념이 사라졌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며 선을 긋는다. 사랑은 언제나 잠복해 있으며, 평생 잠복되어 있던 열망이 인생의 마지막에 가서야 터져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물론 거기에도 한 사람의 헌신이 자리해 있어야 하지요. 제 아내가 그랬어요. 영원한 사랑을 믿는 아내 앞에서 제가 한없이 비루하게 느껴졌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나이 일흔에 참 부끄럽지만 이번 작품을 나의 ‘당신’에게 받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오랫동안 함께 산 아내는 장롱과 같아서 옆에 있어도 있는지를 잘 몰라요. 그동안 아내와 살아왔던 연대를 되돌아보며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돌이켜 보니 늘 제 곁에 있던 아내가 참 고맙더라고요.”

죽음의 또 다른 단어, 고독

이제 막 일흔에 이른 그는 사랑만큼이나 고민해야 할 주제들이 부쩍 많아졌다. 특히 죽음은 그가 필연적으로 준비해야 할 삶의 일부분이 된 지 오래다.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 수명이 일흔일곱임을 고려하면 그의 죽음은 코앞에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가족들이 치매로 투병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본 그는 죽음이라는 게 얼마나 고독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
“장인어른이 재작년에 치매로 돌아가셨어요. 치매의 증상 중 하나는 심야에 일어나서 막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온 가족이 불편해서 도저히 잠잘 수가 없어요. 결국 장인어른은 마지막을 요양원에서 보내셨지요.”
이 시대 노인들이 다 그러하듯, 그의 장인도 평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자신을 한없이 억압하며 살아왔다. 굉장히 과묵했던 그의 장인이 어쩌면 치매에 걸려서야 세상과 가족을 향해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식들도 참 착하고 효자예요. 그러나 사랑의 대상에게조차 장인어른이 소리 지르는 것은 하나의 소음에 불과했던 거지요. 그게 참 가슴 아팠어요. 사실은 치매에 걸린 몇 달 동안 비로소 자신이 먹고살기 위해 못했던 말들을 다 하고 싶어 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아무도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은 상태에서 고인이 된 장인어른을 보니 죽음이라는 게 참 고독한 거구나 싶어요.”

행복한 죽음에 이르는 법

주위에서 일어난 고독한 죽음의 과정을 낱낱이 지켜본 그는 급기야 행복한 죽음에 이르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고독한 죽음을 행복한 죽음으로 건져 내는 이야기. 그는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소망을 작품 속에 그려 낸 것이다.
죽음에 대해 심리학자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여섯 단계의 심리적 변화를 설명한 용어들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병원에 갔더니 암에 걸려서 6개월밖에 못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자. 우리는 심리적으로 처음에 부정의 단계를 겪는다. 병원에서 무엇인가 잘못 본 것이라며 재검을 받는 것이다. 그래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면 다음은 분노의 단계에 접어든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참을 수 없는 화가 솟구쳐 나온다.
세 번째 단계는 협상. 죽음과 협상을 시도하며 ‘우리 딸 시집갈 때까지만, 우리 큰아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 살자’는 말을 반복한다. 심리적 협상의 단계가 끝나면 우울감이 찾아오고, 이 모든 단계를 잘 견디면 이윽고 수용, 죽음에 순종하고 편안하게 잠들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이 다섯 단계를 다 겪지 못하고 분노의 단계에서 죽을 수 있고, 우울의 단계에서 죽을 수 있지요. 심지어 부정의 단계에서 급사할 수도 있어요. 이게 불행한 죽음입니다. 행복한 죽음이란, 죽음을 이해하고 죽음을 친구처럼 받아들이면서 눈을 감는 거예요. 다섯 단계 중 마지막 수용의 단계를 꼭 거쳐야 하지요.”
늘 자신의 곁을 지키는 자의 헌신은 이 다섯 단계를 다 겪고 편안한 죽음에 이르도록 도와줄 수 있다.
“죽음조차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우리가 흔히 연애라고 부르는 정념의 힘이 아니라, 본질적인 사랑의 힘 말이에요.”

쓸쓸한 노년의 삶

마음속 거친 파도가 잔잔해지며 이뤄진 사랑과 죽음, 순애보, 헌신에 대한 그의 숱한 고뇌는 결국 삶, 그 중에서도 노년의 삶에 대한 철학으로 이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노년이 된다는 것은 젊음과 어떻게 다를까? 외적으로는 아름다움을 잃을 수 있겠고, 또 그에 반해 보다 성숙한 자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성숙이라는 낱말이 노인들을 위로해 주기 위한 수식어처럼 들린다고 한다.
“늙어서 좋은 거 하나도 없어요. 성숙이라는 말이 너무 노인의 삶을 미화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많은 것들을 상실하거나 포기함으로써 얻는 고요한 평화가 오지요. 죽음 앞에서 비로소 자신을 성찰하고, 마지막까지 어떠한 것에 의미를 두고 살아야 하느냐는 고민도 하게 되고요.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성숙일 수도 있겠네요. 쓸쓸한 성숙이라고 봐요.”

머리는 희고 가슴은 붉어지니 딜레마다

 

일흔이라는 나이로 이제 자신도 노년에 접어들었다고 말하는 박 작가. 그럼에도 그에게는 여전히 청년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최근 몇 년 만 해도 거의 일 년에 작품 하나씩은 꼭 세상에 내놓았으니 그도 그럴 터. 그 원동력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는 아직도 자신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직도 제가 안정화되지 않았다는 뜻 아니겠어요? 청춘은 더 불안정하잖아요. 내가 그리워하는 것과 지금 만져지는 것 사이에서 오는 부족함, 내적 충돌이 불안정함의 원천입니다. 청춘의 빛깔이 원래 그러하지요. 저 또한 나이만 먹었지 내면에서 발하는 청춘의 빛깔이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아직도 강렬한 그리움이 남아 있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내적 슬픔이 있지요.”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충동. 그는 이를 내적 분열이라고 불렀다. 마치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느낌, 내적인 추락과 상승의 반복은 그의 상상력의 원천이자 문학적 동력이 된다.
“머리는 희고 가슴은 붉어지니 딜레마다. 머리가 희어지는 것만큼, 생물학적인 나이만큼, 내부도 더 넓고 깊어지기만 하면 좋은데 저는 여전히 너무 붉은 것 같아요. 이 머리와 가슴의 편차, 이것을 저는 내적 분열이라고 하지요. 이러한 것들이 저를 자꾸 앞으로 밀어내요. 이 상태로 그냥 두면 우울증이 오거든요. 우울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제게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글은 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 같은 것이죠.”

인간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탐구

소설가는 자신이 사는 당대적 삶이나 역사, 자신이 지닌 본질적인 꿈과 이웃들의 모습에서 피드백을 얻어 구조화시키는 직업이라고 했던가. 40여 년 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면서 평생 글을 써 온 그 역시 굵직굵직한 여러 삶의 터닝 포인트를 겪으며 작품 성향도 달리했다.
물론 평생에 걸쳐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비판을 주로 해왔지만, 히말라야를 다녀온 후부터는 자연과 생명, 리얼리티를 추구한 바 있다. 중년에 접어든 후에는 남자들의 진솔한 속내를 밝히는 소설에 주력해 왔다. 이번 작품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데…. 앞으로는 그가 어떤 이야기로 독자들과 소통할지 궁금증이 앞선다. 
“제가 저 자신을 평가하기를 저는 미완성 작가라고 해요. 제가 앞으로 또 무엇에 반응할지 잘 모르겠어요. 결국 작가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적 환경 속에서 이야깃거리를 얻어 내잖아요. 아무래도 제가 점점 나이를 먹어가니까 <당신>처럼 인간의 본질, 영혼의 리얼리티에 대해 더 쓰지 않을까 싶어요.”
무엇보다 자신이 글을 씀으로써 행복을 얻고, 아울러 이웃과 타인의 삶에도 위로와 구원을 주는 소설을 쭉 쓰고 싶다는 박 작가. 그것이 새해 희망이라고 말하는 그가 향후 또 어떤 작품으로 돌아올지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