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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토박이들의 오래된 여름
서촌 토박이들의 오래된 여름
  • 유화미 기자
  • 승인 2017.07.26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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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산책

최근 들어 부쩍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진 서촌. 그러나 처음 찾는 이들은 모르는, 진짜 서촌의 모습은 따로 있다. 오랫동안 서촌을 지켜 온 서촌의 터줏대감들. 그들의 여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사진 Queen 유화미 기자

정성껏 모시겠읍니다, 형제이발관

관광 명소로 떠오르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가게가 생기고, 또 사라지고 있는 서촌이지만 꼭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곳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서촌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형제이발관이다. 형제이발관은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모습으로 서촌의 한편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형제이발관의 모습을 보지 못할 전망이다. 얼마 전부터 며칠이 지나도록 가게 문을 열지 않아 의아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공사 인부들이 부지런히 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정성껏 모시겠읍니다’라는 간판만이 덩그러니 남아 버렸다. 많은 것들이 변해 버렸고 그 변화에 익숙한 우리들이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이별은 언제나 슬픈 법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신교동 60계단

지금이야 놀이터도 생기고, 공원도 곳곳에 조성되어 있지만 우리가 어렸을 적만 해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이 그리 풍부하지 않았다. 서촌도 마찬가지였을 터. 신교동 60계단은 그 시절 서촌의 어린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친구와 나란히 앉아 공기놀이를 하기도 하고, 가위바위보를 하며 끝까지 오르기도 하다 해질녘쯤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부름에 안녕을 고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는 곳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르면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가도 숨 쉬는 것마저 까먹게 만드는 풍광이 발 아래로 펼쳐진다. 서촌은 물론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서촌의 토박이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야경 명소라고 하니 꼭 한번 찾아볼 것을 추천한다. 단, 관광지가 아닌 주택가이니 조용히 왔다 가야 한다. 그래야 이 그림같은 풍경을 오래도록 두고 볼 수 있을 것 아닌가.

교복을 입은 한가인이 즐겨 찾던 만나분식 

서촌의 맛집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받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은 ‘만나분식’이다. 한가인의 배화여고 시절 단골이었다고 이미 유명세를 탄 곳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과는 달리 이곳 떡볶이는 단연 으뜸이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고생과 여대생들의 고픈 배를 책임져 온 곳이다. 이제는 엄마와 딸이 함께 찾아와 추억을 맛보고 가는 곳이 되었단다. 접시가 넘치도록 가득 담아 주시는 할머니의 인심과 이곳만의 시그니처 메뉴인 깻잎 떡볶이는 40여 년의 시간을 지켜 온 무기다.
 

[Queen 유화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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