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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 짚는 한의사’ 허영진
‘목발 짚는 한의사’ 허영진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4.1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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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따뜻한 사람

10여 년간 장애 어린이를 위해 진료봉사 이어온
‘목발 짚는 한의사’ 허영진

자신이나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아무 대가도 없이 봉사하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의사 허영진 씨는 다르다. 무려 10여 년간이나 장애 어린이를 위한 진료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역시 목발을 짚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스스로의 장애를 극복하고 당당히 세상의 편견에 맞서 장애 어린이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취재_ 황정호 기자 사진_ 김도형 기자

푸르메 한방 장애 어린이 재활센터에서 만난 한의사 허영진 씨는 정신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매주 월요일부터 4일간, 낮 12시까지가 그에게 주어진 장애 어린이 치료를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또 다른 진료봉사가 이어진다. 어찌 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지만, 그에게는 이미 일상이 돼버린 듯했다.
그가 진료를 하고 있는 진료실에는 의자가 없다. 앉을 틈도 없이 진료를 해야 겨우 약속된 아이들의 치료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온 아이들의 천사 같은 눈망울과 귀여운 모습은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의 눈빛에서는 적지 않은 근심이 서려 있다. 아이들 대부분이 다운증후군을 비롯해 뇌성마비와 같은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
목발을 짚고 있는 한의사 아저씨가 익숙한 듯,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아이들에게 그 역시 밝은 웃음으로 응수한다. 치료가 끝난 후에는 부모에게 주의사항과 치료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그. 그런 정성 어린 치료로 인해 진료실 문을 나서는 부모들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헌신적으로 키워준 부모, 형편상 치료를 포기하는 가정이 안타까워
그의 장애는 생후 9개월 경기를 앓고 나서 후유증으로 얻은 것이었다. 그나마도 처음에는 걷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앉을 수도 없을 정도로 중증이었다. 목조차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그의 부모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 저는 문어와 같았다고 합니다(웃음). 앉혀놓으면 흐느적거리는 문어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으니까요. 잘 태어나서 문제없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경기를 앓고 그렇게 됐으니 집안은 난리가 났죠. 그러나 부모님은 끊임없이 치료방법을 찾았고 결국은 오랜 한방치료를 통해 앉고 서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기에 시작된 장애에 대해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담담함만 있을 뿐, 혹여 장애로 인해 드리워졌을 어떠한 그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부모님께서 심어주신 긍정적인 사고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제가 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적어도 세상에 나온 장애인들은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서 이미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사고 속에는 지나간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는 것도 포함이 돼요. 그런 방식은 제가 장애 어린이들을 진료하는 데 아주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고요.”
그의 부모는 단 한 번도 장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늘 그에게 ‘인사를 잘할 것’과 ‘강인해질 것’을 주문했다. 그 두 가지는 그가 세상을 대하면서 숙제와 같이 이해하고 접목시켰던 교훈이 됐다. 돌이켜보면 그런 부모의 말은 일반인과 다름없이 커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가르침이었다. 한의사가 된 이후에야 치료를 받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의 모습을 통해서, 겉으로는 의연하지만 한편으로 노심초사했을 부모의 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고.
“장애는 사실 자신의 문제보다는 부모님의 문제예요. 저의 부모님 역시 장애를 가진 저를 한의사로 키우기까지 노고가 있었겠죠. 솔직히 저는 장애인이지만, 장애 어린이를 둔 부모는 아니기 때문에 이해한다고는 해도 그 심정을 전부 다 알지는 못합니다. 장애 어린이의 치료가 중요한 것은 그 가정이 밝아져야 한다는 또 다른 목적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 어린이가 있는 가정은 이중 삼중의 어려움에 처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에게 치료가 주는 의미는 그것이 완치냐 아니냐를 따지기 이전에 희망으로 작용하죠.”
10여 년 전 처음 장애 어린이를 위한 진료봉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아이들과 희망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부모들은 그가 이 일을 그만둘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 더구나 조기에 치료에 들어갈수록 치료 효과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상 아이의 장애를 지켜봐야만 하는 부모들을 볼 때면 자신이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여 년간 쭉 진료를 해오면서 치료가 가능한데도 경제적인 여력이 안 돼 치료를 포기하고 떠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어요. 담담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아직도 괴롭죠. 아이의 장애는 태어난 지 36개월 이전일수록, 소위 말하는 완치의 개념에 더 접근할 수 있어요. 흔히 뇌성마비라고 하는 뇌병변 아이들도 영·유아기에는 장애 편차가 적어요. 지적 장애는 5세 미만 아이까지도 치료가 가능하고요. 다운증후군도 조기에 치료하면 일반적인 문장 표현과 정상적인 아이에 가까운 신체발달을 이룰 수 있어요. 장애 어린이들의 진료라는 것은 사실 공공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료가 될 수 있는 범위라면 경제적인 약자들에게도 치료 기회가 주어져야 해요. 여유가 없어 치료를 하지 못한다면 아이는 장애와는 또 다른 좌절을 겪게 됩니다.”

 

마라톤 완주로 거듭난 인생,


장애 어린이를 위한 조기 의료 시스템 만들고 싶어
한의과 대학을 졸업했을 당시, 사실 그의 꿈은 사법고시를 통해 판사가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바람이기도 했지만, 사회참여의식이 남달랐던 그에게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기에는 한의사보다 법조인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결심한 5년이라는 시한이 끝난 뒤에도 법조인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로 좌절됐다.
“나이는 서른이고, 아버지는 환갑을 맞이하신 때였죠. 한의과를 졸업하고 소위 명문 법대를 다시 들어가 사법시험까지 준비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고등실업자가 된 셈이었어요. 그대로 한의학계로 돌아오기에는 도망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좌절감에 젖은 스스로를 극복하는 계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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