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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실패 후 재혼, 김현태 아나운서
한 번의 실패 후 재혼, 김현태 아나운서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9.2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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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베이징올림픽 한국 야구의 우승은 온 국민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일본과 다섯 차례의 접전 끝에 아쉽게 준우승했지만 그날의 감동은 아직도 여운처럼 남아 있다. 그 모든 순간을 중계한 이가 바로 김현태 아나운서다. 이제 아나운서 경력 17년 차, 스포츠가 좋아 아나운서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스포츠 사랑은 남다르다.
그러나 늘 밝은 모습으로 소식을 전해온 그에게도 얼룩진 삶의 잔상은 남아 있었다. 지난 2002년 전 아내와 성격 차이에 따른 불화로 결국 이혼을 선택했기 때문.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그 역시 이혼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개인적인 이유로 이혼을 선택함에 있어 그리 큰 흠은 아니라고 자부했지만, 주위의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그를 움츠러들게 했다. 그런 그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이 3년 전 처음 만난 지금의 아내다.

그 자체보다 과정이 더 힘들었던 이혼
지난 5월 그의 재혼 사실이 처음 알려졌다. 최근 한 방송을 통해 이혼과 재혼 이야기가 언급되면서 불편함을 느꼈을 법도 하지만, 의외로 그는 편안해 보였다. 이제 결혼 4개월에 접어드는 신혼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서 여유가 느껴진다.
“요즘 이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유교적인 문화는 아직 무시하지 못할 것 같아요. 특히 저같이 회사 생활을 하는 경우 계속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니까 불편함은 싱글일 당시가 더 컸죠. ‘저 사람은 아직 젊은데 왜 혼자 지낼까’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 시선들을 이제는 더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차라리 편안하네요.”
그렇다 해도 방송을 통해 대중과 수시로 접촉하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의 특성상 개인사가 알려지는 데 대한 부담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혼 후 1년 정도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협의이혼을 선택하고 법정으로 가서 형식적인 절차를 밟는 일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저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이혼을 경험한 사람들은 똑같다고 하더군요. 처음 한두 달가량은 실감도 되지 않았어요. 요즘은 숙려기간이란 것이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것도 없었거든요. 그야말로 도장을 찍으면 끝인 거죠. 그리고 둘 중 한 사람이 구청에 가서 3개월 안에 신고를 해야 하고요. 이혼 자체보다 그런 과정이 힘들었죠. 그래도 제일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이었어요. 품에 안고 있다가 떼어놓아야 했으니까요.”
당시는 ‘9시 스포츠 뉴스’를 진행하고 있던 때라 힘든 내색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방송을 한다는 이유로 굳이 이혼 사실을 숨겨야 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했다. 때론 이혼이 최선의 선택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부끄러워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저 역시도 이혼을 했을 당시에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쉽게 이야기를 못했어요. 매일매일 뉴스는 해야 하고, 누구한테 힘든 심정을 털어놓을까에 대한 고민도 있고요. 최근에는 사회적인 시선도 많이 좋아졌지만, 본인은 역시 힘들어요.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런 스스로의 선입견 때문에 이혼한 사람은 토크쇼에 나가도 가정적인 이야기를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이 좀 솔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나 그 역시도 이혼에 의해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부모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앞에서는 할 말이 없는 것이 사실. 지금은 모두 잘 지내고 있지만, 그런 미안함은 가슴 한편에 여전히 앙금처럼 남아 있다.
“아이들은 엄마랑 같이 살고 있어요. 한창 예민한 시기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됐지만, 지금은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요. 내일은 아이들을 데리고 휴가를 가기로 했어요. 그래도 아이들이나 부모님한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이혼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속 썩인 일이 없는 아들이었는데… 많이 안타까워하셨어요.”     
똑같은 아픔을 겪은 아내는 행복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사람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이었다. 아나운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던 그에게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지인이 아내를 소개해준 것. 아내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한 번의 아픔이 있었기에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부분이 컸고, 그래서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아내 역시 아이들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그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첫인상은 어떻게 보면 차가웠어요. 심하게 얘기하면 한 성격 할 것같이 보였죠(웃음).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서로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편하게 소주 한잔 기울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두 사람 모두 힘든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더 넓었죠. 저와는 네 살 차이고 무용을 전공했어요.”
그렇게 좋은 느낌으로 만난 아내이기에 자연스레 교제로 이어졌다. 하지만 한 번의 상처가 있었기에 재혼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결심을 굳힌 것은 이번만큼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검소하고 장점이 많은 사람이에요. 무엇보다도 저를 편안하게 해주는 배려심이 깊고요. 저만 잘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결혼을 하면서 아내하고 약속한 것이 있어요. 양쪽 부모님들이 모두 일흔이 넘으셨거든요. 마음 아프게 해드린 만큼 살아 계실 때 더 잘하자고 했죠.”
3년의 연애기간을 거쳤지만, 그래도 7년 동안 싱글로 지내다가 의지할 아내가 생겼다는 것은 그의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처음 이혼했을 당시의 막막함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아내와의 결혼을 통해 그는 이전과는 다른 안정감을 찾고 있다.
“이혼을 한 남자는 기러기 아빠랑 비슷해요. 주말이나 쉬는 날이 특히 힘들죠. 그런 날 함께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아요. 남자든 여자든 이혼했을 때 충격이 있어서 다시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새로운 만남을 피하곤 하는데, 일단은 사람을 만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홀로 지내다 보면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으니까요.”

아나운서가 된 스포츠 키드, 지금도 사회인 야구선수
그는 지난 1993년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방송국에 입사했다. 심리학과 출신으로 아나운서에 입문한 것도 눈에 띄지만, 그는 줄곧 스포츠 중계와 뉴스만을 고집했다. 어느덧 명실공히 전문 스포츠 아나운서의 길을 가고 있는 그는 “아나운서가 아니었어도 스포츠 관련 분야에서 일했을 것”이라며 지독한(?) ‘스포츠 사랑’을 털어놓았다.  
“연대 심리학과 출신 아나운서가 의외로 꽤 있어요. 백지연 씨나 김소원 씨가 동문이죠. 제 경우 아나운서가 되고자 한 것은 스포츠를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러니까 스포츠 키드라고 할까요. 야구나 농구, 축구, 종목을 가리지 않고 스포츠 중계라면 무조건 보는 아이였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딱히 이유가 없는 것처럼 스포츠는 제게 그런 대상이었어요. 스포츠 캐스터는 대학을 졸업할 즈음 제일 하고 싶었던 직업이었죠.”
그가 그렇게 스포츠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또 있다.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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