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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단독 취재 임진강 가족 참사의 기막힌 비극들 생생 증언
본지 단독 취재 임진강 가족 참사의 기막힌 비극들 생생 증언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9.09.2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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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아버지 이어 물 참사로 사망한 부자, 3대가 모두 불운의 사고로 숨진 드라마 같은 비극, 아들까지 둔 10년 사실혼 아내는 현장에 얼굴도 못 내밀고…”

“용택아, 너는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아이였고… 아빠랑 캠핑 간다고 즐거워했지, 지금도 아빠랑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겠구나.”
임진강 사고 희생자 영결식은 아버지와 함께 숨진 고 이용택 군의 담임교사의 추도사로 눈물바다가 됐다. 아들 고 이경주 씨와 손자 용택 군을 한꺼번에 잃은 이씨의 어머니는 영결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을 찾으며 울부짖다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하고 실신하기도 했다. 또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에 아들을 태워 목숨을 건지게 한 고 서강일 씨. 아들 우택군은 자신을 살리고 하늘나라로 떠난 아빠의 영정 앞에서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줘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뒤늦게 치러진 합동 영결식에 모인 모든 유가족들과 친지들은 가족을 잃음 슬픔에 눈물을 연신 닦아냈다. 이들의 깊은 슬픔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 같은데… 유가족들의 찢어지는 가슴
영결식이 끝난 후 기자는 몇몇 유가족들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되어버린 이들과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슬픔은 수화기를 타고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떤 유가족은 통화 중 끓어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해 전화기에 대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토요일(9월 5일) 9시 쯤 남편한테 전화가 왔어요. 이제 텐트를 치고 밥 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 지난해  힘들게 집을 장만하고 그렇게 좋아하던 남편이었는데…” 
고 백창현 씨의 아내 이경화 씨는 아직도 귓가에 남편의 음성이 생생하다고 했다. 항상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을 든든하게 보살펴 왔던 남편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 동생을 잃은 고 김대근 씨의 누나 김 씨도 이씨와 같은 심정이다.
“연천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고 막내 여동생과 아버지와 함께 현장에 갔어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어요. 현장 업무가 아무리 바빠도 저녁 6시면 아버지한테 꼭 전화를 하던 효자였어요. 외아들로 여자형제들이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까지 챙기던 착한 동생이었는데… 동생한테 항상 가슴속에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떠나니 황망하기만 합니다.”
고 김대근 씨는 10년 간 사실혼 관계로 지낸 아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사이에는 아들까지 두고 있었지만, 장례식 장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번 사고로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어 안타까움을 더해 준 김선미 씨는 전화통화 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김 씨는 사고 전날 밤 아들 용택 군과 통화를 했다. “밤에는 쌀쌀할 텐데 우리 아들 잘 있지?”하고 어머니가 걱정하자, 의젓한 목소리로 “걱정하지 마, 엄마. 내일 아빠랑 같이 집에 갈게. 엄마, 잘자”하고 끊었다. 1분 남짓한 짧은 통화가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가 됐다. 고 이경주 씨의 시신은 사고 지점에서 가장 멀리서 발견됐다. 이 씨의 한 친척은 “아마 아들을 살리러 갔다가, 급류에 휩싸여 떠내려 간 것 같다”며 안타까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고 이경주 씨의 어머니는 오래 전 오토바이 사고로 남편을 잃은 후, 이번 사고로 아들과 손자를 동시에 잃는 또 한번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스티로폼 아이스박스로 아들을 살려내고 목숨을 잃은 고 서강일 씨의 동생 서강진 씨는 “어렵게 생활하는 형님께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해 항상 죄송했다”며 “편하게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다”고 하늘로 떠난 형님의 넋을 위로했다.  

경보 울렸으면 막을 수 있었던 ‘인재’
이번 사건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연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9월 6일 오전 1시께 북한 황강댐에서 방류된 물이 연천군 중면 황신리 필승교에 도착해 이후 군남면 진상리 임진교 하류 3km 사고지점까지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당일 상황을 가정해 사고현장 등에서 ‘실황조사’를 한 결과 경보가 발령됐으면 희생자들이 충분히 대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혔다. 사고 당일 필승교 수위가 경보 발령 기준인 3m를 넘어선 것은 오전 3시(3.08m)로 경보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됐다면 임진교 하류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 중이던 5명은 충분히 대피가 가능했을 것이란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더구나 경보가 발령되면 임진교 등 4곳 경보국에서 울리는 대피 사이렌은 낮에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소리이기 때문에 경보만 제대로 발령됐다면 인명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사고의 1차적 원인은 북한의 사전 통보 없는 댐 방류지만 정상적으로 경보가 발령됐다면 충분히 대피가 가능했던 만큼 경보시스템을 운영하는 수자원공사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져야 할 수자원공사 측은 계속해서 책임을 다른 곳에 전가하려는 모습을 보여 유가족들의 가슴을 더욱 멍들게 했다. 피해자들의 장례식은 사고난지 7일 만에야 치러질 수 있었다. 보상금 합의가 늦게 이뤄진 탓이다.

수자원공사, “피해자들에게도 과실있다”
유가족들은 “책임지지 못하겠다며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려는 수자원공사 태도에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또 한 유가족대표는 “언론에는 1인당 5억원이 지급된다고 발표됐지만, 실질적으로 받게 될 금액은 발표된 액수보다 훨씬 작을 수 있다”며 “정확한 금액은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 유가족대표를 통해 협상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진 이유와 아직도 정해지지 않은 보상금액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됐다. 다음은 모 유가족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퀸_ 협상에서 쟁점이 됐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유가족대표_ 특별위로금에 대한 부분이었다. 기준보상금은 협상 대상이 아니었다.

퀸_ 협상은 누구와 했나?
유가족대표_ 애초에 유가족들은 책임이 가장 큰 수자원공사하고만 협상을 하려했다. 그러나 수자원공사 측이 그렇게 못하겠다고 해서 수자원공사와 연천군 그리고 유가족 이렇게 셋이 협상을 하게 됐다.

퀸_ 처음 유가족들이 제시했던 금액은 어느 정도였나?
유가족대표_ 지난 화황산 참사 때 유가족들이 받은 2억7천만원 정도를 요구하려다가 장례식을 빨리 치러야한다는 생각에 2억5천만원을 요구했다.

퀸_ 수자원공사는 얼마를 제시하던가?
유가족대표_ 특별위로금은 생각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했다. 장례비만 지급한다고 했다. 밤을 세면서 협상을 했지만, 수자원공사는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그렇게 첫날 협상을 결렬됐고, 다음 날 수자원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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