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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법조인 부부 & 아나운서 딸 '오명희 화가·김덕진 변호사 가족‘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예술가·법조인 부부 & 아나운서 딸 '오명희 화가·김덕진 변호사 가족‘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10.0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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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이어진 가을장마가 그 위력을 잃을 즈음 살짝 고개를 드러낸 햇살 속에 만난 오명희·김덕진 부부와 둘째 딸 민지 씨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최근 이들 가족에게 특별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딸 민지 씨가 높은 경쟁률을 뚫고 SBS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한 것. 예술가인 어머니의 감성과 법조인 아버지의 이성을 모두 본받은 딸이 부모에게 보내는 신뢰는 무한했고, 그러한 딸을 바라보는 부부의 표정 역시 한없는 흐뭇함이 배어 있었다.
특히 오명희 교수는 분명한 성격과 매력적인 미소가 돋보이는 딸에게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현재 수원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예술학부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과거와 현대의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사하는 화가로 살아가고 있는 그이. 딸은 어머니를 닮는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 듯 그이 역시 아나운서 버금가는 유연한 말솜씨와 독특한 음성을 지녀 듣는 이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자신의 영역에서 끝없는 열정을 드러내면서도 아내와 어머니로서 성공적으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그이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끝없이 진화하는 작품세계
오명희 교수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다양한 심상이 내재돼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한국화처럼 보이다가도 그 화려함 덕분에 장르를 분간하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은은한 빛 속에 절제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그이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규정짓기 어려운 가변성과 역동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느낌상으로는 한국화에 가깝지만 재료는 전부 서양화에서 사용하는 것들이에요. 아크릴과 유화 캔버스를 이용하죠. 사실 이제는 장르를 분류하는 것이 그리 큰 의미가 없어졌어요. 자개를 이용할 때도 있고… 때론 새와 꽃 등을 소재로 삼아 화조화 형식을 접목하기도 하고요.”
이전까지 오랫동안 그이가 몰두했던 작업은 바람에 날리는 스카프였다. 꽃밭이나 들판을 배경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스카프의 형상을 포착한 작품들은 그이만의 독특한 미감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로 인해 그이는 ‘스카프 화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한 작업은 최근 꽃과 새 중심의 소재로 변천을 거치며 진화하고 있다.
“강렬하기보다는 화려함 속에 은은함을 추구해요. 오랫동안 스카프 안에 들어 있던 꽃과 새, 나비의 무늬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거죠. 제 작업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오는 게 아닌 듯해요. 이런 식으로 서로 연관을 지으면서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조금씩 변화를 추구한 거죠.”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 그이는 그러한 감성을 바탕으로 파리, 도쿄, 샌프란시스코, 베이징 등을 오가며 24회에 이르는 개인전을 가졌다. 그리고 로마, 샌프란시스코, 벨기에, 니스, 서울의 KCAF, SIPA, SFAS 등 국내외 주요 아트페어에 20회 이상 참가할 만큼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이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생의 기쁨 이면에 작가로서 처절한 창작의 산고가 숨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심연의 밑바닥까지 긁어내는 감성의 소모와 체력의 고갈은 때론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주로 학교 방학을 이용해 전시를 하기 때문에 매번 방학 때마다 앓아요. 저뿐 아니라 모든 작가들이 그럴 거예요.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는지조차 잊게 되죠. 집에 와서도 작업은 계속 이어져요. 한참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밤까지 이어지고 집에 와도 머릿속으로는 온통 그 생각뿐이에요. 그럼 더 예민해지고 간혹 수면제에 의지해야 할 때도 있어요.”
그렇게 혼신의 힘을 쏟아 작업하는 만큼 오명희 교수의 작품은 “작가와 많이 닮았다”는 평을 듣는다. 작품에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은 사실 그이 역시도 추구하는 바다. 모자라면 모자라는 그대로, 그이는 자신의 그림이 ‘오명희 같다’ 혹은 ‘오명희 스럽다’는 평을 들을 때 가장 만족스럽다.
“나답게 그린다는 것은 결국 진실성도 있고 내가 늘 추구하는 취향과 감정이 잘 표현됐다는 것이니까요. 저는 보통 제 또래에 비해 화려한 것을 좋아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단아함도 추구하죠. 요즘 제 작업이 그래요. 화조화라는 것도 사실 아주 예스러운 소재잖아요. 또 그 배경 역시 제가 어렸을 때 봤음직한 골목길이나 적산가옥이 등장하죠. 현대를 살아가며 옛것에 대한 향수가 저를 많이 지배하거든요. 그러면서도 그런 소재를 가지고 현대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결국 나다운 표현인 듯해요.”

어머니를 롤모델 삼은 딸
오 교수의 둘째 딸 김민지 씨는 10월부터 SBS 아나운서로 일을 하게 됐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꿈을 이뤄낸 딸이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 아버지 김덕진 변호사는 “딸이 합격했다는 최종 발표 이후 일주일간 친구와 동료들에게 밥을 사느라고 바빴다”며 흐뭇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부모를 바라보는 민지 씨 가슴 한켠에는 고마움이 자리한다.
“어머니로부터 감성적인 면을 물려받은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께 어머니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거든요. 어머니의 손재주도 닮아서 그림을 전공하는 동안 다른 친구보다 수월하게 그릴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어머니의 센스도 많이 닮았죠. 반면 아버지로부터는 이성적인 면을 많이 물려받았어요. 사실 아버지처럼 성실하고 꼼꼼한 분이 없거든요. 두 분에게 물려받은 특성을 균형만 잘 맞춘다면 일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한 특성을 물려받은 것은 단지 민지 씨뿐만이 아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간 첫째 딸과 영국에서 학업 중인 막내아들 모두 그 수혜자(?)다. 김 변호사는 부모로 살아오는 모습 자체가 자녀들에게 물려준 재산이라고 한다. 자녀들이 어린 시절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냈던 그는 거의 매일 집에까지 기록을 가지고 와 일했고 아내 역시 자신의 일에 전념하던 시기였다.
“아이들은 언젠가부터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스스로 찾아서 동기부여를 하더군요. 저와 아내가 항상 바쁘고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보니까 자신들도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듯해요. 되돌아보면 저도 저지만 특히 아내가 바빴죠. 그림도 그리고 학교도 가야 하고 가정일까지…. 그래서 아내의 발걸음이 다른 사람보다 빠른 편이에요(웃음).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네요.”(김덕진 변호사)
“지금은 여성들에게 과도기적인 시기라고 생각해요. 사회 진출도 활발하지만 한편으로 집안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거죠. 그 균형을 잘 맞추는 사람은 어머니였어요. 완전하지 않아도 완벽한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죠. 저희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 운동회에 찾아온다거나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것은 일일이 못 챙겼어요. 그래도 저는 선생님에게 정말 예쁨 받으면서 성적도 좋았어요. 다른 것은 몰라도 당시 기억을 돌이켜보면 저만큼 어머니와 친했던 친구는 없는 것 같아요.”(김민지 씨)
오 교수가 딸을 키운 방식은 분명 남들과는 달랐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감성적인 교류와 많은 대화가 있었다는 것. 그러한 어머니를 보며 민지 씨는 “완벽한 엄마를 둔 아이들이 정작 롤 모델을 찾지 못해 고민할 때 나는 어머니가 하시는 대로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가까운 데 롤 모델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며 웃음지었다.

감성적인 변호사라 자부하는 남편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며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부부의 만남이 궁금했다. 과연 보수적인 이미지가 연상되는 법조인으로서 예술가인 아내와 어떻게 결혼까지 이르렀을까. 처음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지인들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당시 김 변호사의 눈에 아내는 작고 까만, 그러면서도 유난히 말을 잘하는 여대생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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