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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1월호 -새해 인터뷰/제42회 세계 인권선언일 맞아 무궁화훈장 받은 한국 여성계의 대모
[옛날 Queen 다시보기] 1991년 1월호 -새해 인터뷰/제42회 세계 인권선언일 맞아 무궁화훈장 받은 한국 여성계의 대모
  • 양우영 기자
  • 승인 2019.10.05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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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호

이태영 박사

"성차별의 긴 잠에서 깨어난 우리들 함께 사는 지혜가 필요해요"

해방 후 4남매의 어머니로 법학공부를 시작,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법조인이 된 이. 한평생 법을 통한 가정평화 운동에 헌신해오며 우리 여성들의 인권운동에 앞장서온 이. 한국 여성을 차별의 역사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평생의 뜻 하나만으로 올곧게 살아온 이. 한국 가정법률상담소장인 이태영 박사를 만나 그의 삶과 일 그리고 새해 소망을 들어보았다.

1991년 1월호 -새해 인터뷰/제42회 세계 인권선언일 맞아 무궁화훈장 받은 한국 여성계의 대모1
1991년 1월호 -새해 인터뷰/제42회 세계 인권선언일 맞아 무궁화훈장 받은 한국 여성계의 대모1
1991년 1월호 -새해 인터뷰/제42회 세계 인권선언일 맞아 무궁화훈장 받은 한국 여성계의 대모2
1991년 1월호 -새해 인터뷰/제42회 세계 인권선언일 맞아 무궁화훈장 받은 한국 여성계의 대모2

 

'한결같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오랜 격동과 변혁의 시대를 살아나온 사람이라면 더욱 더. 역사의 격랑은 언제나 '변절'이란 제물을 요구하며 삶의 고단함은 인간의 '올곧음'에 대한 의지를 묵살하기 일쑤인 까닭이다. 

이런 이유들로 더욱 돋보이는 이가 바로 한국 최초의 여성 법조인인 이태영 박사다. 35년째, 한국여성들의 고통과 억압, 한의 대변자였던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이끌고 있는 한국 여성계의 대모(代母). 고희의 나이를 훨씬 넘긴 현재까지도 하나의 뜻만을 지켜, 단 하나의 삶만을 살아온 이다. 

인권옹호상(56년 · 법무부), 장한 어머니상(69년 · 새싹회), 막사이사이상(75년 · 필리핀), 여성을 돕는 여성에게 주는 상(80년 · 국제소롭티미스트), 국제법률봉사상(90년 · 국제변호사회), 여성 전문인상 평생업적부문(90년 · 아시안 퍼시픽 네트워크)등등 세계 각국으로부터 헤아릴 수조차 없이 수차례 받아온 그의 수상 경력은 그가 지금껏 애써온 것들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준다. 

여기에 덧붙여 지난해 12월 10일, '제42회 세계인권 기념의 날'을 맞아 이태영 박사는 또 하나의 의미깊은 수상 경력을 보태게 되었다. 그동안 사회복리와 인권운동에 앞장서온 공로를 우리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무궁화훈장을 받게 되었던 것.

이 훈장이 의미있는 까닭은 그것이 훈장이어서가 아니다. 한 개인이 정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대물림의 증표여서도 아니다. 그것은 이박사가 평생을 바쳐온 '법률부조사업'을 통한 여성운동이 당당하게 인권운동임을 인정받는 인식의 대전환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운동이 곧 인권운동임을 인정받는 계기 마련

"앞으로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이 큰 자부심을 갖고 운동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후배들이 인권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선뜻 응했던 것이죠"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야당의원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판 · 검사가 될 수 없었던 시대로부터 이제는 야당의원의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게 되었다는 남다른 감회가 있을 듯도 싶다. 이박사는 이런 심경을 통틀어 '실로 금석지감을 느낀다'는 표현법을 쓰고 있었다.(중략)

 

 

Queen DB

[Queen 사진_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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