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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과 국제구호에도 전문 경영이 필요하다 행복한 세상 꿈꾸는 글로벌 나눔 경영자, 굿네이버스 이일하 회장
자선과 국제구호에도 전문 경영이 필요하다 행복한 세상 꿈꾸는 글로벌 나눔 경영자, 굿네이버스 이일하 회장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12.12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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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과 분노
염려와 근심
절망과 공포
세상이 혼탁하고 혼란스러울 때
착한 이웃의 유혹이 시작된다

이일하!
끝없는 가난과 숙명에 저항 한번 하지 않고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아주 작은 소리라도 놓칠세라
땅끝까지라도
쉬지 않고 달려가는 이!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고
꼭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

이일하는 말한다.
슬픔이 행복한 눈물로 바뀌고
소원이 행복한 웃음으로 변할 때
한줄기 빛으로
최고의 승리자로
또 다른 사랑으로
또 다른 희망으로 탄생되어 진다고

이일하
만나면 반가운 사람
만나면 좋은 사람
2011년 11월   이재만

 

 


자선의 새 패러다임 ‘글로벌 좋은 이웃’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국제구호개발 비정부민간기구(NGO)인 굿네이버스. 굿네이버스는 20년 전 한국인에 의해 한국에서 설립된 진정한 의미의 ‘우리 NGO’로 1991년 한국이웃사랑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해서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이했다. 현재 한국에 국제본부를 두고, 굶주림 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해외 28개국 151개 사업장 및 모금국과 북한 및 국내 44개 지부 84개 사업장에서 전문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한 해가 다르게 눈부신 발전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굿네이버스는 지난 1996년 UN으로부터 한국 국적의 국제구호개발NGO 중에서 유일하게 NGO 최상위 지위인 포괄적 협의지위까지 획득, 명실상부 세계적인 NGO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난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굿네이버스는 세계 곳곳의 재난, 구호 현장에 언제나 함께하고 있었고,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꺼이 희망의 열매가 되었다.

이재만 굿네이버스는 현재 한국 국적을 가진 국제구호개발 비정부민간기구(NGO) 중에서 최고 지위를 가지고 있는 단체이고,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NGO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도에는 굿네이버스가 세계 NGO 최초로 MDGs(새천년개발계획)상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이일하 1999년도에 UN이 새천년 개발목표라는 비전을 총회에서 선언을 했는데,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의 빈곤율과 유아사망률을 반으로 떨어뜨리고 초등교육을 보편화하겠다는 등 모두 여덟 개 항목이었어요. 2007년도는 목표 년도의 딱 중간 년도였습니다. UN이 일종의 중간 평가를 한 셈인데요, 굿네이버스가 국가의 초등교육 보편화를 위해서 다방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을 높이 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구호활동을 펼치기가 상당히 어려운 곳인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해 교과서 용지를 보급하는 등의 노력이 높은 점수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는 곳이었잖아요. 그런데 단기간에 남을 도울 수 있는 단계까지, 경제력은 물론 나눔에 대한 의식까지 급성장한 것에 대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재만 1991년 굿네이버스가 출범한 지 20여년 만에 세계 굴지의 NGO가 되기까지 그 성장과정이 궁금합니다. 그 시작은 과연 어땠을까요.
이일하 1991년도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봉사활동 단체라고 하면 ‘사회복지협의회’가 유일했어요. 그런데 사회복지협의회는 단순한 기능적인 측면이 많았기 때문에 국민 계몽이라던가 능동적인 시민참여를 유도할 아이디어는 부족한 곳이었죠. 그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처음 굿네이버스를 시작했을 때는 정말 어려웠어요. 전 직원이 여덟 명일 정도로 규모도 영세했고요. 당시에는 우리나라도 아직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어떻게 다른 나라까지 도와주느냐는 시선이 대부분이었어요. 처음
2년 동안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죠. 그러던 중에 1992년 즈음이던가 복지에 관심이 많으셨던 한 일반인이 방글라데시 농촌개발에 쓰라며 5천만원이라는 큰 금액을 기탁해주셨어요. 그때 깨달았죠. 기부의 목적과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국민들의 의식은 깨우면 일어날 수 있다는 걸요. 그 일을 계기로 더욱 본격적으로 캠페인을 벌이게 된 거고요. 그 이후, 국내가 아닌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인 동참이 이루어지기까지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요.
이재만 20년이라는 시간동안 여러 가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자선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을 하며 굿네이버스도 순탄치 않은 과정을 밟았을 것 같아요. 인상 깊게 소개해주실 역점 사업이나 성공한 사업이 있을까요.
이일하 굿네이버스는 단순하고 일회적인 자선사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지를 위한 법과 제도를 바꿔 영구적인 구호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아동의 권리를 위한 아동복지법 개정운동을 벌여 아동학대와 관련, 국가차원에서 개입이 이루어지고 민간복지단체의 치료와 보호가 병행될 수 있도록 했어요. 이밖에도 인터넷, 모바일 등 뉴미디어를 이용한 기부방법의 다양성확보를 위해서도 다각도로 노력을 이어와 젊은층의 기부문화 확산을 이끌기도 했고요. 이 사회에 맞는 콘텐츠와 아이디어로 자선문화를 한층 성숙하게 발전시켰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재만 굿네이버스가 인터넷을 통해서 시작한 100원 모금운동의 선구자라고 하던데요. 실제로 100원 모금 프로젝트는 가장 성공한 온라인 모금운동으로도 꼽힙니다. 어떤 모금운동이었는지요.
이일하 100원은 하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렇게 적은 금액으로도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실제로 100원만 있어도 아프리카 아이들 한 끼 식사가 해결됩니다. 굿네이버스는 그 프로젝트를 통해 돈 많은 사람들의 고액 기탁보다는 돈이 많건, 적건 간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프로젝트를 시행한 지 1년도 안되었을 때 참여하는 사람이 4만 명이 훌쩍 넘어갔으니까요.
이재만 세계적인 자선활동의 규모도 커지면서 세계 속에서 굿네이버스의 역할도 상당히 많았겠어요.
이일하 굿네이버스 활동 초창기만 해도 국제무대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은 정말 가난하고, 전쟁으로 부서진 나라의 개념이었어요. 1994년 르완다 내전현장에 갔을 때도 일본 아사히 신문 기자가 어떻게 일본도 못하는 해외원조 긴급구호를 한국에서 하고 있냐며 사진을 찍어 일본에 보도하기도 했죠(웃음). 잘사는 나라만 할 수 있는 것이 NGO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구호활동을 할 때 그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이점이 있어요. 그래서 다른 해외 NGO보다 시행착오도 적고 단기간에 정착을 하다 보니 성과는 더욱 높을 수밖에 없었죠. 최근 일어난 태국 홍수사태와 관련해서도 대규모 인원과 물자를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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