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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스트레스 극복하는 법
명절 스트레스 극복하는 법
  • 이복실
  • 승인 2022.01.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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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칼럼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 다가오고 있다. 바로 다음 달이다. 벌써 3년째 지속되는 코비드19로 인해 명절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는 제사와 명절 스트레스가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 제사와 명절이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사회 초년생으로 직장생활은 고달팠고, 아이들은 어려 할 일이 태산이었다. 당시만 해도 정시퇴근은 먼 나라의 일이었다. 오히려 야근을 미덕으로 여겼다. 승진심사 시기가 되면 과장들은 야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어필하기 바빴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후진적이었다. 

그런 직장문화에서 오늘이 제사라서 일찍 퇴근하겠다는 말은 입도 벙끗하기 어려웠다. 마음속으로만 ‘과장님, 오늘 저 시댁 제사라서 일찍 가야 해요.’ 말할까 말까 망설였다. 여성들이 육아와 가사를 이유로 일찍 퇴근하거나 조퇴를 하면 순식간에 직장 일에 소홀한 직원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을 반복해서 겪다 보니 제사나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죄인의 심정으로 가슴이 오그라들고 스트레스가 쌓였다. 

어린 마음에 종교적인 신념으로 제사를 안 지내는 친구네 시댁도 부러웠고,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모아서 지낸다는 남도의 풍습도 부러웠다. 그런데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추석이나 설에 당직에 배정되면 다들 부러워했으니 워킹맘으로 사는 것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힘들었다. 제사와 명절의 미풍양속 전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겠지만, 조상님을 모시는 것이 왜 며느리만의 의무인지 모르겠다. 

음식점에서 전이 나오면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몇 년 전 일이다. 지인들과 식사를 하였는데 꾸미 음식으로 호박전과 동그랑땡 같은 전이 나왔다. 갑자기 어떤 분이 “나는 전이 싫어요. 우리나라 음식에 전이 없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평을 하였다.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아내는 전을 만들기 위하여 몇 시간이나 일해야 하고, 이로 인해서 부부 갈등을 겪는다는 이야기였다. 스트레스를 받는 아내를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들의 심정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아마 중년 대다수의 한국 남성들이 비슷한 상황에 있으리라. 부엌에 가서 일해본 적이 없으니 요리나 가사를 도와줄 엄두가 안 날 것이다. 실제 통계청 조사에서도 맞벌이 여성은 남편보다 5배 이상, 비 맞벌이 여성은 남편보다 거의 10배 정도 가사 시간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대다수 부부가 명절 때마다 겪어야 하는 현실이다. 

명절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평소 일상생활에서부터 남녀가 함께 가사 분담을 해야 한다. 남편과 가족이 함께 하지 않으면 여성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다. 우리 가정의 경우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남편이 가사를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일하면서도 남편은 “마누라가 바쁘니 도와주는 거야.”라고 툴툴거렸다. 난 ‘왜 나만의 일이냐? 도와주는 게 아니라 우리 가정 공동의 일이다.’라고 항변하다 보니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계속 진행되고 있는 논쟁의 주제이다. 미국의 성공한 여성 기업인인 셰릴 샌드버그는 여성이 바깥일에서 성공하려면 배우자를 진정한 동반자로 만들라고 본인의 책 《린인(Lean in)》에서 조언하고 있다. 아무리 어린이집에 맡기고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고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도와준다고 해도 남편이 보내주는 지지와 도움은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최근 주변의 젊은 남성들 사이에 가사와 육아를 돕는 가정적인 남편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 세대에서는 전이 먹기 싫다고 하는 남편, 다림질할 때 누가 볼까 봐 문을 닫고 다림질하는 남편, 명절이 다가오면 스트레스로 가슴 두근두근하는 아내의 모습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이번 설을 계기로 아내의 명절 스트레스가 사라지도록 가족 구성원 모두 명절 노동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 더불어, 팬데믹으로 인해 고단해지고 지친 삶을 서로 위로하며 따뜻한 명절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가정 내의 작은 변화들이 모여져 우리 사회의 전체 변화를 이끄는 지렛대가 될 것이다. 


글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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