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20 (금)
 실시간뉴스
문인사예 (文人四藝) 차회···‘차·향·그림·꽃’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
문인사예 (文人四藝) 차회···‘차·향·그림·꽃’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
  • 김홍미 기자
  • 승인 2022.01.19 0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 탐구
오랫동안 향을 피우고 차 마심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온 원행스님의 차회는 몸과 마음의 안정과 집중을 키우는 자리가 되었다.
오랫동안 향을 피우고 차 마심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온 원행스님의 차회는 몸과 마음의 안정과 집중을 키우는 자리가 되었다. .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일본에서는 해가 바뀌면 좋은 날을 잡아 화로에 숯불을 피워 차회를 가진다고 한다. 가장 좋은 날, 가장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며 가장 좋은 다기를 꺼내 준비하며 모든 사람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한다. 2022년 임인년을 맞이하며 퀸에서도 독자들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원행스님과 함께 하는 문인사예 차회를 준비했다. 삼청동의 한적한 길목에 위치한 청명헌에서 나눈 차와 향, 꽃과 그림의 문인사예 차회 첫 번째 이야기를 만난다.

중국 송나라 때 문인들이 갖추어야 하는 네 가지 교양으로 차(점다, 點茶), 향(분향, 焚香), 그림(괘화, 掛畵), 꽃(삽화, 揷花)를 말한다. 문인사예로 칭하는 ‘향을 피우고 꽃과 그림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는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고(古)기물을 감상하며 미술에 대한 미감과 안목을 키우는 찻자리를 말한다.

차를 마시는 문화는 대중화되었지만 차의 예술적인 면은 도외시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송대 문인들의 예술적이고 인격수양적인 차회(茶會)를 재현해보자는 취지로 우리차문화 알리미의 역할을 하는 차 전문 월간지 차인(茶人)의 편집국장인 김영희 청명헌 대표가 기획하고 원행스님이 지도하는 문인사예 차회가 준비되었다.

김영희 청명헌 대표는 오래전 원행스님과 차(茶)로 인연을 맺었다.

“10여 년 전 통도사 극락암 경봉스님 100주기 기념 차회에서 차회를 주도하시던 스님을 뵙고 그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어요. 생활은 소박하신데 최고의 기물을 소유하고 계시더라구요. 스님의 다반사가 기반인 문인사예를 좀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번 차회를 기획하게 되었답니다.”

원행 스님은 향과 향로 이야기를 다룬 [향기로 장엄한 세계], 차인들과 한 달에 한 번씩 1년간 차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를 엮은 [다반사]란 책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이날 문인사예 차회는 먼저 차실의 기물 이야기로 시작해서 차를 마신 뒤 자리를 이동해 향을 피우고 꽃과 그림을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눈 뒤 식사를 하고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손님들끼리 다담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다시 차를 마시며 다관과 찻잔 등 골동 기물을 사용하고 만져보며 기물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part1. 자다법으로 끓인 오룡노차

 

1 찻잎을 담은 대나무 차칙은 큰 대나무를 쪼개서 조각한 것으로 본래 문인들이 서재에서 글을 쓸 때 팔을 받치던 비각이다. 2 무려 반백 년을 살아온 차가 뿜어내는 맛과 향은그 깊이가 남다르다. 3 명나라 말 중국에서 만들어 유럽으로 수출한 크라크 도자기로 유럽 왕실과 상류층에서 부와 품위를 상징했다.
1 찻잎을 담은 대나무 차칙은 큰 대나무를 쪼개서 조각한 것으로 본래 문인들이 서재에서 글을 쓸 때 팔을 받치던 비각이다. 2 무려 반백 년을 살아온 차가 뿜어내는 맛과 향은그 깊이가 남다르다. 3 명나라 말 중국에서 만들어 유럽으로 수출한 크라크 도자기로 유럽 왕실과 상류층에서 부와 품위를 상징했다.

 

중국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차가 존재한다. 크게는 불 발효차, 반 발효차, 발효차, 후 발효차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날 문인사예 찻자리에 선보인 차는 반 발효차인 오룡차를 50년 이상 항아리 속에서 발효시킨 오룡노차였다. 무려 반백년을 살아온 차가 뿜어내는 맛과 향은 그 깊이가 남다르다.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고, 목을 넘어가며 코를 자극하는 달큰한 향기는 오룡노차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차는 세월과 함께 맛도 변한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차는 때로는 더 순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더 텁텁해지기도 하면서 서서히 변해 간다. 이런 것이 노차의 매력이다. 좋은 차를 제대로 즐기려면 좋은 차는 기본이고 좋은 다기를 쓰면 더 좋다.

좋은 다기는 차가 가지고 있는 맛과 향을 훼손시키지 않고 잘 우려내고, 잘 우러난 찻물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다기를 말한다.

원행스님은 차 자리는 청담(淸談)이 오고가는 자리여야 한다고 말했다. 명리를 떠난 맑고 고상한 이야기인 청담은 우리의 평범한 삶을 이야기한다. 각자의 삶을 통해 얻은 바를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것이 바로 청담이다. 그런 청담들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많은 배움이 숨어 있다. 학문이 높고, 재산이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교훈이 되는 것은 아니다.
 

part2. 온전한 휴식을 전하는 그윽한 향
 

향(香)은 차와 마찬가지로 옛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 있던 문화이다. 때로는 심신을 치료하는 약으로, 때로는 문인들의 벗으로, 때로는 조상과 신명에게 올리는 공양물로 사용되었다.

향을 피우는 것은 단순히 코를 즐겁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향으로 나쁜 냄새를 제거하여 공간을 정화한다는 의미와 함께 향이 자신을 태워 향기를 뿜어내듯 나와 남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과 행동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향도는 기본적으로 당나라 때 완성되었는데 송대에 들어와 점점 더 일상생활에 녹아들어갔다. 격화분향은 먼저 향탄에 불을 붙이고 향탄을 재 속에 넣는 분향방식인데 향품에 직접 불을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서 향이 그윽하면서도 오래 가고 한참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다. 옛 문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향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좋은 차와 향은 온전한 휴식을 전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날 원행스님이 선보인 향로는 원나라 시대의 기물인 홍록채 운용문 향로로 붉은색과 초록 안료를 사용했다고 해서 홍록채라고 한다. 용이 굉장히 정교하게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제후나 고관대작들이 쓰던 향로임을 알 수 있다. 아주 드물고 귀한 것으로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향로다. 그 옆에 있는 작은 향합은 여의주를 상징한 것으로 용이 그려진 향로와 함께 사용했다.


part3. 길상과 장수를 상징하는 삽화, 남천

 

삽화, 분향, 괘화를 한 자리에서 경험할수 있도록 만든 공간. 그림 아래 책장은조선시대 남자들의 사랑방에 놓이던 가구로 소나무로 만들고 전면에 벚나무를덧붙여 문양을 드러나게 하였다.
삽화, 분향, 괘화를 한 자리에서 경험할수 있도록 만든 공간. 그림 아래 책장은조선시대 남자들의 사랑방에 놓이던 가구로 소나무로 만들고 전면에 벚나무를덧붙여 문양을 드러나게 하였다.


 

삽화는 쉽게 말해 꽃꽂이인데 당나라 때부터 성행하다 송나라 때 문인들의 애호 속에 삽화예술이 큰 사랑을 받고 민간에도 널리 보급되었다. 문인들의 꽃꽂이는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내 나무를 건강하게 만드는 이치가 담겨 있다. 그래서 화병에 꽃을 꽂을 때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을 추구하며, 불필요한 가지와 꽃을 과감히 잘라내고 덜어내는 용기와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고.

이날의 삽화 남천(중국에서는 남천죽이라 부른다)은 장수와 길상을 상징하는 나무로 무슨 일을 하든지 좋은 일이 함께하고 장수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찻자리에 이 꽃이 꽂혀 있다면 이 자리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

꽃이 꽂혀 있는 화기는 남송 시대부터 명나라 초까지 사랑받던 용천요 청자 양이병이다. 도자기 표면에는 수많은 기포가 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기포가 터져 부분부분 산화가 일어난다. 땅속에서 출토된 도자기는 특히 산화가 심하게 일어난다. 이 청자는 출토품이 아니라 전세품으로 대대로 내려온 것이다. 그래서 청자를 유심히 보면 아래 부분만 산화되어 희끗희끗해진 것을 볼 수 있다.
 

part4. 그림에 담긴 뜻을 읽어내다, 괘화

 

4 모임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일이생기길 기원하고 장수를 상징하는 남천.5 홍록채 운룡문 삼족 향로와 향합, 저병이나란히 놓여 있다. 저병은 향을 다룰 때 사용하는 젓가락인 향저와 재를 다룰 때 사용하는 향시를 담아두는 작은 병을 말한다.
4 모임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일이생기길 기원하고 장수를 상징하는 남천.5 홍록채 운룡문 삼족 향로와 향합, 저병이나란히 놓여 있다. 저병은 향을 다룰 때 사용하는 젓가락인 향저와 재를 다룰 때 사용하는 향시를 담아두는 작은 병을 말한다.

 

문인에게 있어 회화는 단순히 아름다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학문과 교양과 철학을 담아내는 수많은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상징을 읽어내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그림을 본다고 하지 않고 ‘읽는다’고 표현했다.

이날 청명헌 차회에 걸린 그림은 투다도(鬪茶圖)이다. 투다도에는 송나라 때 성행했던 차와 관련된 다양한 모습들이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 있다. 삼삼오오 모여 차를 음미하고 차 맛을 품평하는 모습이 참으로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마치 그림 속에 들어가 그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중국 남송 시대에 인물화와 산수화로 이름을 떨쳤던 유송년의 그림을 청나라 때 남명 정치원이라는 사람이 배경만 바꿔서 방(倣)한 그림인데,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첫 단계가 모사였다. 처음에는 그림을 똑같이 따라 그리지만 계속 그리다보면 자신의 생각과 기법을 첨가해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 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본래 이 그림은 비단에 그려진 두루마리 족자 형태였다. 그림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비단이 꺾이면서 생긴 균열이 세월의 무게를 보여준다. 이 그림은 원행스님이 일본에서 구한 뒤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액자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눈과 몸과 마음이 호사하는 귀한 시간

 

6 문인사예 차회의 특별함 중 하나는 원행스님이 직접 요리한 음식을 멋진 골동 기물에담아 맛보는 것이다. 7 차과자 사계에서 준비한 두부 마스카포네 소스로 곁들인 샤인머스캣, 개성주악, 말차 마카롱, 겨울 수선화를 형상화한 네리키리 화과자.
6 청명헌 문인사예 차회의 특별함 중 하나는 원행스님이 직접 요리한 음식을 멋진 골동 기물에담아 맛보는 것이다. 7 차과자 사계에서 준비한 두부 마스카포네 소스로 곁들인 샤인머스캣, 개성주악, 말차 마카롱, 겨울 수선화를 형상화한 네리키리 화과자.

 

이날의 문인사예 차회는 원행스님이 직접 요리한 음식을 멋진 골동 기물에 담아 맛보고 다양한 기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차를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기물에 대한 설명과 차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시는 원행스님의 편안한 목소리와 더불어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듯한 차 한 잔과 향이 깃든 이 공간에 있는 이 시간이 더없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청명헌에서 준비한 첫번째 찻자리는 문인사예가 무엇인지를 알리는 총론과 같은 자리였다. 두 번째 찻자리부터는 사예를 이루고 있는 차, 꽃, 향, 서화에 대해 매회 하나씩 주제를 잡아 체험하고 느끼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차와 예술, 차와 일상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문인사예 찻자리 2번째 이야기는 2월호에 이어집니다
 

취재 김홍미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 도움말·장소 청명헌 | 참고 자료 다반사 (원행스님, 하루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