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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분쟁과 유류분 제도
상속분쟁과 유류분 제도
  • 전현정
  • 승인 2022.02.1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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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법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겨야 한다지만, 재산이 많든 적든 고인의 유족 사이에 상속재산을 둘러싼 분쟁으로 고인의 이름을 뒤덮는 경우도 많다. 과거에는 배우자나 여성의 몫이 적은 것이 문제였지만, 최근 상속분쟁의 중심에는 ‘유류분(遺留分)’이 있다. 이 말은 알기 쉽게 풀이하기가 어렵다. 사망한 사람의 의사와 상관없이 상속인이 받을 수 있도록 보장된 최소한의 상속분을 가리키는데, 한참 들어도 그 뜻이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사람이 사망할 때 가지고 있던 재산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전된다. 하나는 유언에 따라 재산이 이전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률에 정해진 상속분에 따라 상속을 하는 것이다. 위 두 경우 모두 유류분이 문제된다. 유언을 했든지 그렇지 않든지 일정한 범위의 재산은 법정상속인에게 남겨두어야 한다. 그 한도를 넘는 유증이나 증여가 있을 때에는 상속인이 다른 상속인 등을 상대로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직계비속과 배우자의 유류분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이고, 직계존속과 형제자매의 유류분은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이다.

자신의 재산을 유언으로 누군가에게 주겠다고 해도 그 재산 중 일부는 법정상속인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이 유류분이다. 이처럼 유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유류분 제도를 인정하는 근거 중 하나는 사망 후에 상속재산으로 유족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유족이 배우자나 미성년의 자녀라면 유류분을 인정할 필요성이 크다. 그러나 현행법에 따르면 사망한 사람의 부모나 형제자매도 일정한 경우 유류분을 주장할 수 있다. 가족공동체로서 친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였으므로 일정한 비율의 상속재산을 법정상속인에게 보장해주어야 할까?

가족에 관한 관념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개인이 중시되면서 가족 간의 유대관계는 크게 약화되고 있다. 자신이 번 돈을 사후에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유언의 자유를 보장하고 유류분 제도에 대해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청이 많아지고 있다.

3년 전부터 가을이면 한국여성변호사회 생명가족윤리위원회에서 ‘고령사회의 법정책’이라는 대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해 왔다. 올해는 지난 11월 4일 ‘유류분 제도의 개선방안’에 관하여 화상회의 형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100명 가까운 인원이 참여하여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한 발표자는 사이가 좋든 그렇지 않든 유류분 권리자가 가지는 가족적 연대 그 자체에 유류분의 정당화 근거가 있다고 하였다. 이와 달리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보유한 재산을 처분할 자유는 재산을 획득하고 보유하는 권리만큼 오래된 권리이며, 누군가에게는 부당하게 느껴지는 유언도 할 수 있는 권리가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심포지엄 직후인 11월 9일에는 법무부가 유류분 권리자에서 형제자매를 빼자는 민법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가족법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라이너 프랑크 교수가 15년 전에 성전환에 관한 발표를 하면서 “많은 가족법적인 문제에서 지난 20년 내지 30년 동안 나의 견해를 스스로 변경해 왔다.”라고 하였다. 그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이 잊히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독일의 가족법 교수로서 자신의 견해를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견해를 바꾸어야 했다는 노학자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상속 분쟁이 줄어들 수 있도록 유류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할 수 있다. 이 제도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도 있고 법률을 개정하여 폐지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번 도입된 제도를 없애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사회의 변화나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반영하면서도 웬만한 분쟁은 줄일 수 있는 합리적인 개선안이 나올 수 있을까? 어느 정도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당한 유류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류분이 차지하는 비중을 최소한도로 줄이는 것이다. 그래야만 유언에 의한 재산처분을 활성화하는 토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 사망 후의 재산분배 문제에 국가가 지나치게 많이 개입하는 것은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을 제약한다. 국가가 개인보다 상속재산을 더 잘 분배할 수도 없고, 미성년자 보호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가 개입할 뚜렷한 근거도 없다. 자기 재산을 처분할 자유가 사망 후에도 보장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진일보한 것이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인간의 삶이 그 후손에게 아름답게 기억되고자 한다면 그가 남긴 유산에 분쟁을 잉태하고 있지 않아야 한다. 유류분으로 말미암아 상속재산을 어떻게 분배해야 분쟁이 없는지 알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한 상태를 줄일 수 있도록 유류분 제도를 쉽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글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고문변호사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대한변협 양성평등센터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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