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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헌 문인사예(文人四藝) 차회④ 안분지족의 행복
청명헌 문인사예(文人四藝) 차회④ 안분지족의 행복
  • 김홍미 기자
  • 승인 2022.05.24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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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복을 누리길 바라는 원행스님의 뜻이 담겨 있는 자리.향을 피우고 꽃과 그림을감상하며 귀한 시간을 가졌다.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복을 누리길 바라는 원행스님의 뜻이 담겨 있는 자리. 향을 피우고 꽃과 그림을감상하며 귀한 시간을 가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봄의 흔적을 찾게 되는 시기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청명헌에서의 문인사예 차회에도 향기로운 봄내음이 가득하다. 송나라 황실이나 귀족들이 즐겼다는 문인사예. 잠시 고단한 일상을 내려놓고 편안함을 느끼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중국 송나라 때 문인들이 갖추어야 하는 네 가지 교양으로 차(점다, 點茶), 향(분향, 焚香), 그림(괘화, 掛畵), 꽃(삽화, 揷花)를 말하는 문인사예. 향을 피우고 꽃과 그림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는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고기물을 감상하며 미술에 대한 미감과 안목을 키우는 시간으로 네 번째를 맞이했다. 이번 모임은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사는 삶의 행복을 말하는 명심보감의 글귀와 함께 시작되었다.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인정받는 창암 이삼만 선생

오늘의 차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차실 한편에 걸린 족자다. 조선 후기 전라도 출신 명필로 이름을 떨친 창암 이삼만이 쓴 글씨로 명심보감의 안분 편이 적혀 있다. 창암 선생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그 유명한 추사 김정희 선생이다. 창암 선생은 집안이 가난하여 독학으로 글씨를 익혔는데,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추사 김정희 선생은 그의 서체가 촌스럽다며 무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결국 창암 선생의 서체를 인정하고, 세상의 평가를 바꿔 놓은 것 역시 추사라고 한다.

당대 최고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추사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추사체가 탄생하게 된 것은 그의 제주도 유배가 결정적 계기가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인생의 쓴 맛과 고난을 겪으며 그의 서체에 삶의 무게가 담기게 된 것. 제주도 유배생활을 통해 글씨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안목을 가지게 된 추사가 창암의 서체를 무시했던 과거의 오만함을 깨닫고 창암의 묘에 비문을 지어 예를 표했고, 이후 창암 선생의 서체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창암 이삼만 선생의 서체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개성과 속도감을 담고 있다. 창암 선생의 서체는 어떤 큰 스승의 영향이나 가르침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온전히 글씨에 매달려 얻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족자의 글귀는 명심보감의 안분 편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면 몸에 욕됨이 없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면 마음이 스스로 한가하다는 안분지족의 행복을 담고 있다.
 

1 노인이 들고 있는 지팡이에 두루마리 같은 것이 묶여 있는데, 거기에 사람들의 수명이 적혀 있다고 한다. 2 독특한 모양의 청동 작(爵). 주(周)나라 때 만든 술잔을 화병으로 사용했다. 3 원행 스님이 직접 꺾어온 산작약. 산작약은 뿌리가 넓적하게 누룽지처럼 생겨 잔뿌리가 많은데 그 뿌리는 약재로 주로 쓰인다. 4 일본에서 구입한 나전 향탁. 명나라 때 제작된 작품이다.
1 명심보감의 안분 편이 쓰인 족자는 찻자리에 함께 하기에 잘 어울린다. 2 사흘 전에 꺾어 원나라 균요 화병에 꽂아둔 산수유. 3 베트남산 극품 침향이 담긴 송나라 청자 향로.

 

좋은 차와 같이 좋은 향은 온전한 휴식이 된다

향은 차와 마찬가지로 옛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 있던 문화이다. 때로는 심신을 치료하는 약으로, 때로는 문인들의 벗으로, 때로는 조상과 신명에게 올리는 공양물로 사용되었다. 향을 피우는 것은 단순히 코를 즐겁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향으로 나쁜 냄새를 제거하여 공간을 정화한다는 의미와 함께 향이 자신을 태워 향기를 뿜어내듯 나와 남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과 행동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날 원행스님이 선보인 향로는 고려청자처럼 보이지만 송나라 청자 향로.

세 발 달린 독특한 모양의 향로는 향정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침향은 일본 교토의 송영당에서 구입한 향으로, 송영당은 일본 황실에 향을 대는 일본의 대표 향 가게다. 1705년 교토에 창업하여 현재 12대를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오늘 준비된 가루차는 사발 형태로 된 찻잔에 마신다.
오늘 준비된 가루차는 사발 형태로 된 찻잔에 마신다.

 

 

머리가 맑고 몸이 개운해지는 차의 시간

차는 사색의 문화를 만든다. 차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살피게 하는 힘이 있다. 차를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이 또렷해진다. 대화의 깊이와 폭이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고 넓어진다. 차 자리에서 나누는 모든 대화가 내 것이 된다. 그것을 마음에 새기다 보면 깊은 사색에 빠질 때도 있다.

인생을, 세상을,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든 다. 차를 오랫동안 마셔 온 사람들은 차를 진하게 마시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개운해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고 피곤한 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오늘은 80년대 초에 만든 보이차로 첫 찻자리를 시작한다. 찻잔은 명나라 후기의 청화백자 찻잔이고 청나라 때 종이를 켜켜이 붙여 만든 잔 받침을 사용했다. 건칠 잔 받침은 종이로 뼈대를 만들고 옻칠로 마무리하는 건칠 기법으로 만든 것으로 가볍고 독특한 질감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4 가루차를 만들 때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바짝 말린 찻잎을 맷돌에 갈아 체에 쳐서 가루차를 만들었다. 5 보이차를 마신 찻잔과 건칠 잔 받침. 건칠 잔 받침은 가볍고 독특한질감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찻잎을 갈다, 가루차 

글씨를 감상하며 차를 마시는 두 번째 찻자리에는 가루차가 준비되었다. 가루차는 찻잎을 가루 내어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거품을 내어 마신다. 본래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오늘날 중국과 한국에서는 사라지고 일본에만 남아 있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가루차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가루차를 만들 때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바짝 말린 찻잎을 맷돌에 갈아 체에 쳐서 가루차를 만들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찻잎을 갈아야 가루차의 청량하고 싱그러운 맛이 유지된다. 그래서 일본의 유명한 찻집에서는 아직도 맷돌을 이용해 가루차를 만든다고 한다.

가루차를 마신 다완은 사발 크기로 특별한 기물이다. 청정호 다완은 조선 시대 작품으로 단단하고 푸른빛이 돌아 일본에서는 아오이도라고 부른다. 그 밖에도 울산 법기리 이라보 다완(조선 시대), 귀얄 분청 다완(조선 시대), 백자 해무리굽 다완(고려 시대)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6 봄의 대표, 벚꽃을 형상화한 차과자. 두 종류의 분홍빛 벚꽃과 투명한 물방울을 표현했다. 7 부드럽게 체에 내린 흰 콩 앙금을 은은한 흰 빛이 배어나는 분홍 반죽으로 감싸 벚꽃을 표현했다. 8 18세기 오키나와에서 만든 옻칠 다식함인 금채. 옻에 여러 가지 안료를 섞어 문양을 그리고 자개와 주석을 붙여 만들었다. 아주 희귀한 기물이다.
6 봄의 대표, 벚꽃을 형상화한 차과자. 두 종류의 분홍빛 벚꽃과 투명한 물방울을 표현했다. 7 부드럽게 체에 내린 흰 콩 앙금을 은은한 흰 빛이 배어나는 분홍 반죽으로 감싸 벚꽃을 표현했다. 8 18세기 오키나와에서 만든 옻칠 다식함인 금채. 옻에 여러 가지 안료를 섞어 문양을 그리고 자개와 주석을 붙여 만들었다. 아주 희귀한 기물이다.

 

봄의 전령사, 벚꽃을 닮은 차과자

차를 마실 때 먹는 일본의 화과자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도 차를 마실 때 함께 먹는 차과자가 있다. 특히 차과자는 삼국통일 후 불교문화가 융성하면서 함께 발달했던 차 문화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차는 우리 몸에 이롭지만 빈속에 차를 많이 마시거나 몸이 찬 이들은 속이 냉해지는데, 이를 보하기 위해 차과자가 있었다. 그래서 차과자를 차약(茶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번 문인사예 차회에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차과자 사계에서 다식을 준비했다. 그 날 마시는 차와 잘 어울리는 차과자를 준비하는 것은 사계 노정아 대표의 몫이다.

오늘 차회에서는 두 종류의 분홍빛 벚꽃과 투명한 물방울을 표현해 말차에 곁들여 먹을 히가시干菓子를 준비했다.

관동지방을 대표하는 차 석과자인 네리키리練りきり(흰 콩 앙금에 찹쌀 반죽을 넣어 끈기를 더한 고급 상생과자)로 만든 화과자. 부드럽게 체에 내린 흰 콩 앙금을 은은한 흰 빛이 배어나는 분홍 네리키리 반죽으로 감싸 봄의 전령 벚꽃을 표현했다. 또한 밀가루 반죽에 흰 콩 앙금이 들어가는 고급 상생 과자인 야쿠만주 饅頭 위에 소금에 절여 특유의 향이 살아있는 절임 벚꽃을 얹었다. 앙금은 곱게 내린 흰 콩 앙금을 분홍빛으로 물들여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설탕과 한천으로 만드는 일명 얼음과자 코하쿠토는 말차에 곁들여 먹는 마른과자인 히가시干菓子의 한 종류이다.

네 번째 만남이니 이제 찻자리가 제법 익숙할 법한데도 만날 때마다 새롭고 놀랍게 다가온다. 점다, 분향, 괘화, 삽화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이 준비되어 있는 자리. 잘 보관하여 숙성된 각종 차와 흔히 보기 어려운 제대로 된 골동 기물을 감상하며 좋은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아름다웠다. 오늘의 글귀를 다시 한 번 새겨본다.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면 몸에 욕됨이 없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면 마음이 스스로 한가하다’. 이러한 안분지족의 행복을 느끼며 한 달을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 자리를 마무리한다.


취재 김홍미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 도움말 청명헌 | 참고 자료 다반사 (원행스님, 하루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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