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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만남-“전쟁 현장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절망 속에서 희망을 전하는 ‘분쟁지역전문’ 김영미 PD
특별한 만남-“전쟁 현장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절망 속에서 희망을 전하는 ‘분쟁지역전문’ 김영미 PD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2.05.1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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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정치, 경제, 안보의 문제를 걷어내고 나면 사람이 보여요.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 폭탄이 떨어질 걱정 없이 학교에 가고 싶은 아이들 말이에요”

 

저널리스트들 사이에 김영미 PD는 ‘작은 거인’으로 통한다. 탈레반 본거지나 소말리아 해적 소굴과 같은 위험 지역에 가방 하나, 카메라 한 대만 가지고 들어가 소위 말하는 ‘특종’을 잡아오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동티모르 푸른 천사>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부르카를 벗은 여인들>, <일촉즉발, 이라크를 가다>,
<조국은 우리를 왜 내버려 두는가?> 등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던 20여 편의 다큐멘터리가 모두 그이의 손에서 나왔다. 그이가 만든 다큐멘터리의 배경은 모두 ‘전쟁터’였지만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난다. 그이의 다큐멘터리는 그곳 사람들의 아픈 모습, 하지만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조그마한 행복을 담기 때문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정치, 경제, 안보 등의 추상적인 문제를 걷어내고 나면 사람이 보이거든요.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가 있고, 또 학교에 가고 싶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거든요. 이처럼 ‘사람’을 전하고 싶은 것이 바로 제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최근에 발간한 <사람이, 아프다>라는 책 역시 사람들에게 국제적으로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관심을 주고 싶어서 쓰게 됐다. 그이의 분쟁지역 취재기록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이 책은 아픔, 절망 속에서 그들이 꿈꾸고 있는 순수한 희망과 행복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대한민국에서만 살지만 사실은 전 세계가 ‘지구’라는 공동체에서 사는 거잖아요. 우리 뿐 아니라 이웃의 어려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대예요. 특히 젊은 친구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다른 나라와 손을 잡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니까, 이러한 국제적인 어려움을 잘 알고 또 함께 대처해가야 한다는 거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에요. ‘사람’의 마음을 갖고, 그들의 문제를 함께 들여다보길 바라는 마음이죠.”

목적은 ‘전쟁취재’가 아닌 ‘사람’
그이는 수많은 분쟁지역 중에서도 이라크를 ‘제2의 고향’이라고 할 만큼 이라크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이라크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법,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2년 전쟁 직전 이라크를 찾은 후, 2005년 전쟁 폐허가 된 이라크를 다시 찾았을 때, 피폐된 거리에서 만난 이라크 사람들은 부모를 잃은 고아 같은 느낌이었어요. 처음에는 일을 하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간 셈이지만, 그들에게 가까이 갈수록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 사람들이 놓치지 않고 있는 소망이 보이더라고요. 폭격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고, 시장에 갈 수 없는 부모들은 그저 안전하게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가족들이 먹을 반찬거리를 사올 수 있기만을 바라죠. 우리에게는 작지만, 그들에게는 큰 소망이에요. 그들을 통해 힘든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죠.”
이라크에 대한 그이의 진심어린 애정으로 그이는 한국인 최초로 자이툰 부대를 촬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사실 전쟁터의 군부대를 취재한다는 것은 아무리 같은 민족이라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이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약 6개월 동안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가족 그리고 친구가 되었다.
“어려운 상황을 함께 보내면 누구라도 친구가 될 거예요(웃음). 지금도 자이툰 부대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다 생각날 정도로 그들은 저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이죠.”
김 피디의 친화력은 자이툰 부대에서만 빛을 발한 것은 아니다. 그이는 가는 곳마다 누구와도 친구처럼, 가족처럼 소통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한 예로 부르카(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천)를 절대로 벗지 않는다는 아프간 여성들이 부르카 벗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이의 대답은 간단하지만 명확했다. 바로 눈높이를 낮추는 것.
“제가 아프간의 평범한 여자들한테 한국을 단번에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거잖아요. 제가 바라보는 모든 것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생각하는 연습을 한 거죠. 나를 버리고 철저하게 아프간 여자의 생각과 마음을 담는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저 역시 그들과 같은 아이를 낳은 엄마잖아요. 국적과 나이를 막론하고,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공통분모가 있거든요. 일종의 모성애 같은 거요. 같은 엄마, 그리고 같은 사람으로 다가가니 그들도 마음을 열더라고요.”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눈높이를 맞춰도 외국인인 그이를 향한 배타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물론 아쉽더라도 과감하게 포기하자는 것이 김 피디의 원칙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부하는데, 제가 제 욕심만 가지고 계속해서 다가가는 것은 그들을 괴롭히는 게 되잖아요. 그렇게 되면 제가 애초에 그곳에 취재를 간 목적과 달라져요. 저는 그들을 괴롭히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희망을 전하러 가는 사람이니까요.”

희망을 전하는 일은 나의 숙명
그간 숱하게 분쟁지역을 취재하며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기도 여러 번이다. 납치도 당해봤고, 폭탄사고로 공중을 붕 떠 날아가 보기도 했단다. 조심스레 그때의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 끔찍한 기억을 곱씹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아직도 트라우마가 극복되지 않은, 아픈 부분이 있는 듯했다.
“영화를 보면 사고도 멋있게 나잖아요(웃음). 그런데 실제 상황은 영화만큼 스펙타클하진 않아요. 상상 이상으로 비극적이죠. 말 그대로 눈 한 번 깜빡이면 총알이 날아와 사람을 죽이고, 차가 폭파해요. 같은 차를 타고 있는데, 총알이 차를 뚫어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뒷자리에 두 사람이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고요.”
영화에 비유하며 애써 담담하게 답변하는 그이였지만, 사실 지금까지도 그이는 취재 후 상처 받은 마음을 항상 정신과에서 심리치료를 받을 정도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악몽을 꿀 때가 많아요. 취재 전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해가도 현장에 가보면 또 다른 게 많이 나오거든요. 다행히 이제 한 10년이 넘어가다보니까 조금씩 감이 와요. 운전을 오래 하면 감이 생기는 것처럼요. 그래도 감만 믿는 건 아니고요(웃음). 무엇보다 준비를 철저히 하죠. 저는 취재를 하기 전에 무조건 최소한 4가지의 계획을 세워놔요. A가 안되면 B로 세웠던 계획을 실행하고, 안되면 C, D 이런 식으로요. 최악의 경우까지 대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이렇게 간간히 어려운 상황을 넘기고 또 넘기면서까지 그이는 분쟁지역 취재를 멈추지 않는다. 남다른 사명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터. 그이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바로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라고 말했다.
“한 번은 이라크에서 취재하던 때였는데, 밤이 되고, 정전까지 되면 숙소에서 가끔 정말 외롭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혼자서 몽상을 많이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이렇게 전기가 없는 깜깜한 와중에도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이곳 사람들은 또 힘겨운 하루를 시작하겠지, 내가 이렇게 지쳐버리면 안되지’. 생각해보면 결국 제가 태어난 이유가 그거더라고요. 큰 야망도 없고, 큰돈을 벌고 싶지도 않고,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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