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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의 희망 에너지 <기적 중국어> 발표한 조혜련
가족이라는 이름의 희망 에너지 <기적 중국어> 발표한 조혜련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3.09.0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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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특별한 계획을 갖고 살지는 않기로 했어요. 제 삶이 이끄는 대로
또 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갈 거예요.
물론,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하는 것도 그중 하나겠죠?”


한때 이혼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몰래 가슴앓이를 해야 했을 조혜련. 하지만 특유의 긍정 에너지는 시련의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1년 만에 신HSK(중국어능력시험) 5급을 취득한 상태에서 이혼 후 국내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국 유학을 결정한 것이다. 대학 친구가 머물고 있던 중국 심천으로 향한 그녀는 6개월간의 유학을 특별하게 보내기로 작정했다. 그곳에서 현지인들과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 실전 중국어를 익혀 나가기 시작한 것. 유학 초기에는 그녀 역시 중국인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중국인들의 장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깊이 있는 통찰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중국에서의 시간은 ‘조혜련’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재충전의 기회가 된 듯했다.

 

‘니하오’만 알던 조혜련의 중국어 도전기
2010년 3월 중국에 체류 중이었던 혜숙 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에 있던 언니 조혜련의 전화였다. 조혜련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연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며 중국어 전문 강사로 활동 중인 동생에게 개인 교습을 부탁했다. 언니의 간청에 혜숙 씨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중국어 수업에 돌입했다. 언니가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익힐 때 누구보다 열정적인 것을 잘 알기에 혜숙 씨 역시 그간 축적한 강의 노하우를 총동원했다.
“2010년 4월부터 언니와 함께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언니가 바쁜 스케줄을 쪼개 가며 공부를 한다고 하니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를 총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렇게 언니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중국어를 가장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하나의 노트가 완성되었어요. 그게 바로 이번에 발표한 <기적의 중국어>인 셈이죠.”
조혜련은 이미 2006년부터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해 지금은 능통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 이후 일본어 정복 경험을 토대로 영어에 도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에 속한 영어는 일본어를 시작할 때와는 다른 이질감으로 큰 벽이 느껴지자 시선을 중국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는 미국에서 유학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큰 메리트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더라고요. 또 영어를 3개월 정도 하다가 미국에 간 적이 있는데, 미국 사람이 제 영어를 인정해 주지 않아 큰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죠. 그래서 일본어를 하면서 한자도 익혔고 아무래도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에 여러 모로 비전이 많아 보여서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살아있는 생활 중국어를 체험한 유학생활
혜숙 씨로부터 중국어를 배운 지 1년여 만에 조혜련은 기적처럼 신HSK 5급을 따는데 성공했다. ‘니하오’라는 인사말밖에 모르던 사람이 그 기간에 신HSK 5급을 딴 것은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나 다름없다. 혜숙 씨의 말에 의하면, 신HSK 5급은 ‘중국어로 된 신문, 잡지 및 중국어 영화 또는 TV 프로그램을 60~70% 정도 이해할 수 있으며, 쉬운 중국어로 비교적 완전한 연설을 진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언어가 어느 정도 수준에 달하자 조혜련은 중국 유학을 결심했다. 당시 이혼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든 한국 활동을 접고 외부 노출을 최대한 자제할 때였다.
“5급을 딴 이후에 이혼이라는 가정사로 한국에 당분간은 머물러 있기가 힘들어서 중국행을 택했어요. 어디로 갈 것인지 고민하다가 홍콩 옆에 있는 중국 심천에 대학 친구가 살고 있어서 그곳으로 무작정 떠났죠. 한국 사람이 단 사람도 없는 그 지역은 중국어를 배우기 최적의 장소였어요. 물론 중국 현지에서 중국어를 배운 적은 없어서 현지인들과 친해지기까지 굉장한 노력이 필요했고 학교를 다니기에는 중국 체류 기간이 길지는 않을 것 같아서 아이디어를 낸 게 자전거 동호회였죠.”
조혜련은 중국에서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해 자전거를 타는 다양한 중국인들을 만나고 대화할 수 있었다. 그러다 운 좋게도 초등학교 교사를 만나 이론이 접목된 생생한 중국어를 배워 나갔다. 1년 넘게 중국어를 배운 조혜련의 언어 습득 속도는 다른 사람들보다 빠를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를 타는 모임에서 현지 중국인들과 함께 운동이나 식사를 하게 되면서 책 속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살아있는 생활 중국어를 조금씩 터득해 나갈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동생을 통해 중국어에 대해 많이 배웠지만 실제 중국 사람을 만나면 말을 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유학 생활 이틀 정도 지났을 때 틀이 잡히기 시작했고, 그 전에 배운 내용들이 대입이 되면서 중국어 실력이 빠르게 늘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조혜련은 6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중국 문화를 빠르게 습득했다.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중국인의 모습을 통해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조혜련은 유학 기간 동안 중국어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까지도 반추해 보는 배움과 자성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솔직히 저도 중국을 가기 전에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어요. 하지만 ‘직접 그 나라에 들어가 보라’는 동생의 조언을 듣고 중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중국인들의 따뜻함을 발견하게 되었죠. 특히 진짜 친구가 되면 목숨을 바쳐 도와줄 수 있는 의리만큼은 우리나라 못지않았어요. 또 자기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죠. 고급 차를 모는 사람과 차 없이 뚜벅이족으로는 사는 사람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고, 고급 차를 가지고 좋은 집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점에 놀랐죠. 그들을 통해 제 모습을 돌아봤을 때 한국에 살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데 너무 익숙해지는 바람에 매번 ‘더 나아가야 돼’만을 외치며 스스로를 과도하게 채찍질한 건 아닌가, 라는 생각도 가질 수 있었어요.”
이처럼 조혜련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중국인들 속에 머물며 중국어 실력을 향상시켰다. 이에 대해 동생 혜숙 씨는 그런 언니의 장점들이 극대화되어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히 언어적 재능이 뛰어나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마인드로 중국어 배우기에 임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We Can Do’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많은 분들이 언니가 언어적인 소질이 있어서 중국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렇지 않아요. 언니처럼 중국어를 대하는 적극적인 마인드는 반드시 도움이 돼요. 특히 제가 책에서 언급한 ‘그래 학습법’만 있으면 전체 중국어가 ‘100’이라면 약 ‘50’ 정도를 마스터할 수 있죠.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국어를 배우면서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족으로부터 얻은 상처, 가족으로 치유
조혜련은 최근 어머니와 함께 한 예능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하고 있다. 조혜련의 어머니는 거침없는 독설로 웃음을 자아내며 프로그램 인기를 견인 중이다. 특히 이들 부녀의 방송 출연은 동생 혜숙 씨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 우울증에 시달렸던 어머니가 예능 출연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우울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맘마미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에는 우울증을 겪으셨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우울증이 완치되셨어요. 더욱이 언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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