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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순·이두이의 ‘허브나라 이야기’
이호순·이두이의 ‘허브나라 이야기’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11.27 0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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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일군 대한민국 최초 생태정원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은 이효석 작가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이에 못지않게 봉평을 설명해주는 또 하나의 장소가 있다. 한 해 약 50만명이 다녀가는 봉평 허브나라다. 허브를 테마로 농업과 유통, 관광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허브나라는 귀농한 이호순·이두이 부부가 피땀 흘려 가꾼 생태농원에 기인한다. 이곳은 죽, 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농업이 땅을 치유하고 숨 쉬게 하는 것처럼, 부부는 허브를 통해 인생을 사는 재미와 의미는 물론, 도심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상처를 치유하는 장소가 되기를 희망했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 안경협찬 이안옵틱 | 의상협찬 에트로

Part 1

‘개원 22주년’ 허브나라가 걸어온 길

 
이호순·이두이 부부는 내년이면 허브나라를 운영한 지 22년째를 맞는다. 오랜 기간 도시생활을 하다 첩첩산중의 강원도 봉평에 정착해 허브나라를 일구기까지 많은 난관들이 두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부부는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저앉지 않고, 고비 때마다 더욱 열심히 허브나라를 완성하는데 매진했다. 그 결과 허브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을 뿐만 아니라. 환경부가 선정한 체험형 생태 관광지 20곳 안에 당당히 허브나라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재만 내년에 허브나라가 개원 22주년을 맞는데, 허브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지요.
이호순 시골에 귀농해서 농사를 짓고 살려고 했어요. 일반적으로 농사라고 하면 먹을거리 위주로만 생각하는데 먹을거리도 중요하지만, 농사의 다른 역할, 그러니까 보고 즐기면서 그 속에서 사람들이 쉼을 찾고 즐길 수 있는 그런 농사를 짓자는 생각을 하고 이곳으로 온 겁니다. 사람들에게 사업으로 보여준다는 개념보다는 농업의 범위를 넓히는 농사를 짓자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이재만 그러한 외국의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관 농업을 말하는 건가요
이호순 네. 소위 경관 농업이나 힐링 농업을 말합니다. 과거에 실제로 일본 북해도에서 본 적이 있어요. 여러 가지 농작물이나 꽃들, 산림을 이용해서 대지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꽃들이 7월, 8월이면 한 번에 피어나서 대지를 수놓는 것이죠. 대지가 그림판이나 도화지가 되고 식물들로 그림이 그려지는 겁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아름답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농업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결국 농업은 사람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이재만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경관 농업이 흔하지 않을 시기인데,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된 겁니까?
이두이 그렇습니다. 그런 종류의 농업은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어요. 농사라고 하면 안전한 먹을거리만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던 시기였으니까요. 이곳 역시 1차 산업인 농업의 역할도 하지만, 거기에 유통이나 서비스를 더해 다른 역할들을 찾아낸 것이죠.
이재만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허브나라를 세운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호순 바로 환경입니다. 저희가 입지를 선정할 당시 서울에서 약 3시간 정도 되는 거리에, 인가가 드물고, 조용한 곳을 찾았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들어와서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지역이 있는지를 봤어요. 물과 산, 나무가 있는 지역을 찾아다니다가 이곳을 찾게 된 겁니다.
이재만 이곳을 보니까 허브나라 농원에 대한 전체적인 밑그림이 단번에 떠오르던가요?
이두이 강원도 각 지역이 원래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잖아요.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아름다운 계곡에 반해서 점점 안으로 들어오다 보니, 산자락에 빙 둘러싸여 있는, 공터가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됐어요. 앞으로 ‘우리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곳이구나’라고 쉽게 생각이 연결이 되어서, 일사천리로 허브나라가 만들어질 수 있었죠.
이호순 당시에는 진짜 오지였습니다. 민가도 10채가 안 됐고, 길도 아주 좁았으니까요. 과감히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에 왔을 때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어요. 사람들이 우리 부부를 보고 ‘정신이 나갔다’고 했을 정도였죠. 처음에는 뜻이 맞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되어서 부부 둘이서 하게 됐습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부러워해요.
이재만 두 분의 허브나라 경영철학은 무엇인지요.
이호순 저는 원래 대기업에서 회사 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그러다 귀농을 했고, 처음에는 농사를 짓고 허브를 기르는 재미에 빠졌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는 건 없었죠. 이곳에서 쭉 생활하다 보니 허브가 사람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를 찾게 되더라고요. 자연 일부로서의 허브를 떠올려 보니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데, 결국은 공동체라는 생각도 갖게 되었죠. 우리 조상이 가지고 있던 자연관은 모든 자연은 원이라는 것이잖아요. 윤회하고 순환하는 자연의 한 일부분으로서의 인간을 말하는 것이죠. 허브를 통해 자연을 알고 자연을 통해 사회 공동체에서의 허브나라 역할과 농촌의 역할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허브나라의 운영 철학입니다.
이두이 여행을 참 좋아하는데, 세계 여행을 다니면서 ‘멋진 농원이 우리나라에는 왜 없을까’ 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불편해하다가 농업을 전공하고 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한 전문가로서 ‘자연의 걸작품을 남기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허브나라를 시작하게 됐죠. 초창기에는 허브나라를 가꾸기 위해 하루에 20시간씩 일을 한 적도 있어요. 지금도 더 나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투자를 하고 있죠. 지금까지 성공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손님들이 오셔서 만족을 하기 때문이에요. 조금씩 변화를 주니까, 매번 와도 다른 모습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시죠. 저는 허브나라 내부를 아름다운 공간으로 꾸미는 것에만 전력투구를 하는데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재만 그런데 귀농이라는 것이 지역민 입장에서는 외지인이 들어온 것이라 정착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이호순 흔히 말하는 텃세가 가장 힘들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텃세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도시에서 50년을 살다가 시골에 왔는데, 도시민과 시골 사람들의 삶의 철학과 기준이 달랐다는 것을 몰랐죠. 이곳을 운영한 지 3년 정도 됐을 때 11가지 사항을 위반해 고소를 당했어요. 사람들에게 몸에 좋은 허브차를 팔고, 방문객들을 재워주고 몇 가지 음식을 제공했을 뿐인데, 공중위생법, 식품가공법을 위반하고 무허가 숙박업, 무허가 요식업을 한 업주가 되어 버린 것이죠. 물론 저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합법적으로 이곳을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니까요. 그렇게 절차를 거쳐 하나씩 신고를 하고 농산물, 도·소매업, 기념품, 식당 등이 어우러진 허브나라가 형성될 수 있었던 거죠.

Part 2

매년 50만명이 찾는 자연·문화 체험의 장

허브나라에 오면, 각종 허브의 향과 꽃의 아름다움에 취한다. 아름다운 음악 속에 한 잔의 따뜻한 차를 들고 꽃길을 걷다 보면 어느 덧 자연 속에 동화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감 만족’ 명소로 각광을 받는 허브나라는 이야기가 있는 정원 구성은 물론, 다양한 박물관과 공연장이 있어 자연과 문화를 이해하는 장이 되고 있다.

이재만 이곳에서 관람객들에게 선보이는 허브의 종류는 어느 정도 됩니까
이두이 현재 약 150종류 정도 됩니다. 실제로 농사를 지어서 제품으로 만들거나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 것도 약 20종류 되는데, 현재 약 5천 평 정도 재배를 하고 있어요. 수확한 것 중에 식용 가능한 허브를 가지고 차·빵·식초 등 음식을 만들고, 미용 재료나 신경안정 효과를 주는 허브를 활용한 제품도 만들고 있죠.
이호순 현재 허브차·잼·비누·허브 식초·향초 등의 제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우리가 직접 만들지 못하는 화장품의 경우, OEM(주문자제작 생산방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재만 허브나라에는 꽃과 허브만 있는 게 아니죠. 다양한 박물관과 공연장이 있어 문화적인 체험도 할 수 있는 것은 허브나라만의 특징인데,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이호순 허브나라에 있는 박물관은 법적으로 인정받은 박물관은 아니어서, 작게는 갤러리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허브 박물관, 터키 박물관, 만화 박물관이 있고, 허브·식물·자연에 대해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죠. 그 외에 문화시설로 별빛무대 야외 원형극장도 있어요. 이는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쉬면서 무엇인가를 채워갈 수 있는 휴양·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 농업의 큰 역할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재만 현재 직원 숫자가 꽤 많지요? 또 자제 분들이 함께 허브나라를 일구어 가고 계신데, 각자 어떤 역할과 책임을 맡고 있는지 설명해주세요.
이두이 슬하에 아들 하나와 두 딸이 있어요. 아들은 3년 전에 들어와서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는 있는데 하는 일이 있어서 허브나라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미대를 나온 딸이 졸업하자마자 우리와 함께 일을 하고 있죠. 미술을 전공해서 농원을 꾸미고 각종 문화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이재만 그런데 몇 년 전에도 수해가 있었고 자연 속에서 살다보면 가끔 자연 재해 등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 그런 경험 있으신지요
이두이 사람이 준비를 철저히 해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에 맡기고 살아야 하죠. 2002년과 2006년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곳 사람들도 거의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이호순 수해로 몇 억원 이상 손해를 봤어요. 그런데 수해가 없었다면 이곳이 한 번 더 커질 수 없었을 겁니다. 2006년에 물난리 났을 때 싹 떠내려가서 완전히 자갈밭이 되어버렸죠. 그 당시 저도 놀랐던 것은 허브나라의 개장 시기를 묻는 주변 사람들이었어요. 그 때 ‘이제 허브나라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죠. 그만큼 허브나라에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내 마음대로 문 닫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저희 부부를 포함해 직원들 60명씩 밤을 새워서 일 주일 만에 복구를 해야 했던 결정적인 이유였죠.
이재만 한 해 입장객이 50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관람객을 꼽아본다면 누가 있을까요
이두이 시골에서 자연과 하는 삶과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이 열렸다는 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보람이죠. 어떤 특정한 사람보다 매년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좋아요.
이호순 아마 저는 법정스님이 아닐까 싶어요. 1997년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1년에 한 번씩 이곳을 찾은 분이시죠. 나무 하나 베지 않고 집을 지은 것을 보시고는 “여기 살 자격이 있네”라고 칭찬을 해주셔서 정말 기분이 너무 좋았던 기억에 납니다.

Part 3

경관농업의 미래를 말하다

 
허브나라는 미래 농업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생산과 유통, 관광 및 서비스가 결합된 6차 산업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브나라를 운영하는 이호순·이두이 부부는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농업의 역할에 충실할 때, 비로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6차 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업인이 아닌 농업인의 마음으로 경관농업을 대한다면, 6차 산업으로 주목받는 미래 농업의 전망이 밝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만 생산과 유통, 서비스가 결합된 ‘6차 산업’이 미래 농업의 형태로 부각되고 있는데, 경관 농업의 잠재적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시는지요.
이호순 농업이 문화, 관광, 교류 등 6차 산업으로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단순 히 먹을거리를 생산해서 팔면 부가가치가 크지 않아요. 그런데 배추 한 포기를 가지고 김치를 만들어 팔면 가치가 올라갑니다. 하지만 제약이 너무 많아요. 물론 기업 형태로 운영하면 허가를 받아서 가공식품을 파는 것이 맞지만, 부업으로 하는 경우에는 일명 ‘식파라치’ 등을 통한 단속보다는 오히려 권장해서 지역 특산품의 판매를 적극 장려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집에서 만든 ‘홈메이드’ 식품을 인정해주는 제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재만 내년 22주년을 맞아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이두이 제대로 된 축제를 보여주고 싶어서 그동안 따로 축제를 열지 않았어요. 내년에는 축제를 통해 볼거리와 체험 프로그램을 늘려 허브나라의 새로운 전환점을 찾을 계획입니다. 계절마다 자연 풍경이나 수확하는 농산물, 거기서 즐기고 체험하는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행사 기획을 잘한다면 방문객들의 만족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호순 축제라고 하면 관광객을 끌어 모아 수익을 올리겠다는 생각이 많은데, 저희는 조금 다릅니다. 물론 수익이 창출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관광객에게 최대한 성의껏 감사를 표하고, 그 관광객들이 축제를 통해 감동을 받아서 축제가 없어도 찾아오는 단골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당장 돈벌이가 아니라 허브나라라는 브랜드를 알리겠다는 것이죠. 이곳의 축제는 결국 생활 축제의 성격이 짙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과 방식을 보여주고 관람객들과 함께 즐기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재만 허브나라가 아무래도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곳인 만큼, 지역 발전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어떤 사업들을 펼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호순 우선 자선음악회를 열고 있어요. 우연히 이곳을 방문한 다문화가족을 통해 농촌 지역 다문화 가정의 문제를 알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농촌의 미래인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으로 행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장학금 전달하고 아이들을 위한 정원 조성, 그리고 국악을 가르치는 후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재만 이호순 대표는 우리의 전통 생활민속을 보존하고 발굴하는 일에도 앞장서는 것으로도 알고 있는데요. 실제로 이와 관련된 전국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고 하던데요.
이호순 실제로 제가 전통 생활민속을 보존하고 발굴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시골의 전통 생활민속을 중요한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 일을 시작하게 됐죠. 얼마 전에는 강원도 대표로 전국민속예술축전에 나가서 금상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봉평의 민속 문화 중 메밀 도리깨질 소리라는 게 있는데, 그것을 재현해서 전국 20개 도시 가운데 2등에 해당하는 금상을 받았죠.
이재만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허브나라인데,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두이 앞서 말씀드린 4계절 축제 계획이 잘 진행되어서 허브나라가 제2의 도약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호순 이전에는 관람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체험 프로그램을 더욱 강조하고 싶습니다. 쉬면서 무엇인가를 얻어가는 캠프 프로그램을 확대해 휴양과 문화를 즐기는 방향으로 허브나라를 운영해나가고 싶습니다.

이재만 변호사 (법무법인 청파 대표)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KBS2 사랑과전쟁2 부부클리닉 위원장, 대한체육회 법률고문, 경찰청 법률고문, 주병진·송일국·주지훈·권영찬 등 스타 사건 담당 변호사, KBS2 여성공감 ‘이재만 변호사의 드라마법정’, SBS ‘라디오로펌’등 다수 방송 프로그램 출연, 이재만 변호사는 친절하고 명쾌하며 알기 쉬운 법률 해설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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