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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특파원 길에 오르는 KBS <뉴스9> 박영환 전 앵커 출국 직전 본지 단독 인터뷰
L.A 특파원 길에 오르는 KBS <뉴스9> 박영환 전 앵커 출국 직전 본지 단독 인터뷰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7.1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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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가 L.A 특파원으로 발령받아 곧 미국으로 떠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2년간 <뉴스9>의 앵커로 매일 저녁 뉴스를 전해주었던 그의 새로운 시작을 격려하고 싶은 마음에 안부 인사를 건넸다. 때마침 그는 단기영어코스 연수 차 샌프란시스코에 가 있던 터. 잠깐 한국으로 돌아와 일주일 정도 머물다 L.A로 떠날 예정이라 했다. 앞으로 그를 보려면 미국행 티켓을 끊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한국에서의 약속을 잡을 수밖에.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돌아온 다음 날 점심, 아직 시차적응 중이라고 말하는 그와 함께 축하와 아쉬움의 티타임을 가졌다. 늦둥이 아들 덕윤이와 함께 나타난 그. 아들과 함께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지난날 앵커로서 보여주던 조금은 날 선 인상은 온데간데없다. 세상을 보다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아빠의 소박하면서 인간적인 모습이 유달리 크게 느껴지는 듯했다.

기자로 10년, 앵커로 8년… 그리고 돌아온 기자의 일상
“요즘 밤 9시에는 TV로 편안하게 뉴스를 시청하고 있어요. 이제 뉴스 전달자가 아니라 수용자의 입장이 되고 나니 한결 편안해진 부분이 생겼죠. 몇몇 분들은 방송에서 얼굴이 안 보이니 푹 쉬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2010년 12월 31일 <뉴스9>를 마지막으로 앵커 자리에서 물러난 박영환. 곧이어 발령 난 곳은 보도국 국제팀 아침뉴스 조출 데스크였다. 각 나라별 해외 특파원들을 관리하고 그날의 외신뉴스를 확인해 추가로 취재해야 할 내용을 지시하는 일을 두 달 동안 했던 것. 오전 6시에 시작하는 <뉴스광장>에서 특파원들이 리포트해야 할 내용을 미리 확인하기 위해 늘 새벽 3시까지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남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일을 시작해 점심 무렵이면 끝나기 때문에 개인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결 자유로워졌다.
“뉴스를 관두고 6개월 사이에 몸무게가 2kg 정도 늘었어요. 앵커로 일할 때는 절제해야 하는 게 많았거든요. 대개 사람들과 약속을 잡으면 가볍게 술을 주고받기 마련인데 음주가 체력뿐 아니라 순간 판단력, 집중력에 영향을 주는 걸 느끼니까 지난 2년간은 절주하면서 살았어요. 방송 시간 때문에 약속도 잘 잡을 수 없고요. 아무래도 방송 화면으로 나가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늘 신경 써야 하는 부담이 적지 않았죠(웃음).”
공영방송에서 메인뉴스 앵커로 몸담은 지난 2년을 포함해 그는 8여 년의 시간을 앵커석에서 뉴스를 전달하며 살아왔다. 매번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며 긴장할 수밖에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기에 앵커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는 그만큼 해방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을 지켜온 자리이기에 허전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 <뉴스9>의 파트너로 함꼐한 조수빈 아나운서의 연락은 소소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면서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조수빈 아나운서와는 <뉴스9>에서 만나기 전부터 선·후배로 자주 조언을 해주던 사이였어요. <뉴스9>를 하는 동안 조수빈 아나운서가 결혼 발표를 했는데, 그때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줬던 기억이 나요. 이제 서로 다른 자리에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문자나 전화를 주고받으면서 지내고 있어요. 늘 든든하고 믿음이 가는 친구 같은 후배라서 고맙죠.”

L.A 특파원, 떨림보다 기대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이유
그는 지난 3월, L.A 특파원으로 내정되어 그간 여러 가지 준비를 해왔다. 해외 특파원은 방송국에서도 여러 기자들이 꼭 하고 싶은 일로 꼽는 자리 중 하나다. 특파원 발령은 외국어 능력을 비롯해, 취재 및 제작능력 등을 꼼꼼히 따지는 공개 경쟁을 통해 이뤄진다. 그 역시 경쟁을 거쳐 2011년 7월 1일자로 3년간 특파원 업무를 수행하게 된 것.
“L.A 특파원은 취재 지역이 넓은 편이에요. 미국 서부를 비롯해 캐나다 그린란드, 멕시코 일부 지역이 모두 취재대상인 셈이에요. 여기에는 트위터, 구글, 페이스 북을 창업한 회사들이 모여 있는 실리콘 벨리도 포함되어 있죠. 그곳에서 페이스북 창업자인 주크 버그를 인터뷰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멕시코에서는 어떻게 관광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는지를 심층적으로 취재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지금까지 한국에서 간접적으로 접했던 글로벌뉴스를 보다 생생하게 경험하고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특파원이 됐다는 소식에 몇몇 지인들은 L.A에 특별한 사건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괌 KAL기 추락사건을 비롯해 고베 대지진, 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굵직한 사건 보도에는 늘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괌 KAL기 추락사건은 가족과 괌으로 휴가를 떠났던 차에 일어났기에 가장 먼저 현장 스케치를 하고 생존자 인터뷰까지 할 수 있었다고. 나중에는 KBS 로고가 박힌 영상을 외국 방송사에서 요청해올 정도였다. 이제는 더 이상 가슴 아픈 사건, 사고는 생기지 말아야 하겠지만 이런 그의 전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가 앞으로 보여줄 취재들을 일찌감치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 시간 앞에 기자로서의 설렘을 느끼는 박영환. 일뿐만 아니라 가족과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싶은 바람도 크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인 딸 지수와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덕윤이, 그리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의 길을 응원해줬던 아내에게 그동안 못 다한 부분들을 채워주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했다.
“미국에 있는 동안 가족에게 잃어버린 아빠, 남편을 찾아주고 싶어요. 그래서 현지에서 살 집을 구할 때 낡았더라도 뒷마당이 꼭 있는 집을 알아보러 다녔어요. 미국으로 가면서 아이들 교육 문제를 두고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했죠. 늦둥이 아들은 초등학생이라 쉽게 적응할 수 있겠지만, 큰 딸은 대입을 준비하는 시기라 미국에서 공부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늘어난 셈이니까요. 이것 때문에 아이가 좀 당혹스러워했죠. 하지만 상황에 따라 방향이 바뀌고 거기서 생기는 어려움을 넘어서는 과정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새로운 환경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아이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눈치더라고요.”
그가 미국생활을 시작하면서 제대로 누리고 싶은 일 중 하나는 바로 사진 찍는 것과 책을 쓰는 것이다. 특히 사진은 기자와 앵커 생활로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찍었는데, 이제는 조금 더 여유 있게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지인들이 L.A 가는 기념으로 카메라를 선물로 줬어요. 방송기자로 일하면서 늘 동영상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미국에서 스틸사진을 찍으며 가능하면 전공으로도 배우면 좋을 것 같아요. 사진의 주제는 굳이 제한하지 않으려고 해요.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상이나 제가 좋아하는 꽃이나 무엇이든 구애받지 않고 찍고 싶어요.”
L.A 특파원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그와 절친한 사이인 주철환 전 OBS 사장은 그에게 미국에 있는 동안 책 쓰기를 권했다.
“철환이 형이 제 나이쯤 되면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해야 한다면서 책도 쓰고 기회가 되면 강의도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이나 노하우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면서요. 그것만으로도 좋은 도전과 자극의 기회가 되겠죠.”

시대를 아우르며 진리를 찾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다
L.A로 떠날 준비를 하며 그가 요즘 즐겨보는 것은 <주역>이다. 학부생 시절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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