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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의 경고 "'스태그플레이션' 고통 몇 년 동안 지속"
세계은행의 경고 "'스태그플레이션' 고통 몇 년 동안 지속"
  • 김정현 기자
  • 승인 2022.06.20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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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글로벌 경기 침체를 일으킨 지 2년이 조금 지난 지금, 세계 경제는 다시 위험에 빠졌다. 이번에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동시에 더딘 성장에 직면했다. 세계적인 '리세션'(recession, 경기후퇴)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대규모 공급 증가가 시작되지 않는 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의 고통은 몇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 7일(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를 향해 이렇듯 무시무시한 경고를 날리며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1월)의 4.1%에서 2.9%로 대폭 낮췄다. 데이빗 말패스(David Malpass) 세계은행 총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봉쇄, 공급망 붕괴,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가 성장을 훼손하고 있으며 많은 국가들은 리세션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간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두고 최악의 시나리오로 여기며 고개를 갸웃했던 국내 경제전문가들도 이제는 이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 속 미국이 전 세계에 풀어댄 막대한 달러를 토대로 한바탕 벌어졌던 유동성 파티가 완전히 막을 내리고 이제는 '불황의 늪'이 시커먼 입을 벌린 채 눈앞에 서성이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20일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상품무역지수는 99.0으로 기준치인 100을 하회했다. 상품무역지수가 100 미만이면 향후 3~4개월간 상품교역이 중기적인 추세에 비해 감소할 것임을 의미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인 2020년 3분기 기준치 이상으로 치솟았던 상품무역지수는 지난해 3분기부터 다시 100 이하를 하회하고 있다.

대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선 심상찮은 악재다. 한은은 "이러한 세계교역 둔화흐름은 향후 우리나라의 수출 증가세를 점차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한은은 지난 5월 내놓은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상품수출이 3.3%, 내년 2.1%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국 성장세가 약화하고 중국 봉쇄조치의 영향으로 상품수출이 둔화될 것으로 봤다.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군사적 긴장과 제재가 연말 이후 점차 완화되고 원자재 수급불안이 내년부터는 완만하게 개선된다는 가정하에 올해 경제성장률(GDP) 전망치로 2.7%를, 내년 2.4%를 제시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올해 2.8%, 내년 2.3%를 전망했다.

모두 우리나라 잠재성장률로 거론되는 연 2%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통상 실제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낮아지면 경기 침체로 여겨지지만, 주요 경제기관들이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만 보면 아직은 경기 침체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상황이 악화일로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장기화 조짐을 나타내고 있으며 최근엔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 완화로 석유 수요가 늘면서 국제유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월평균 브렌트유 가격은 올해 1월 배럴당 85.57달러 → 2월 94.10달러 → 3월 112.46달러 → 4월 105.92달러 → 5월 111.96달러 → 6월 120.34달러로 상승 추이를 나타냈다.

미국의 더욱 빨라진 긴축 행보 역시 우리 경제를 불황의 우려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한은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앞서 지난해 8월부터 기준금리를 발 빠르게 올려왔으나 가히 '파격적'인 속도로 따라붙는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를 당해내진 못했다. 지난 1월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미국보다 1.00~1.25%포인트(p) 높았으나 불과 5개월만에 금리차가 사라졌다.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1.75%로 미국 기준금리(1.50~1.75%) 상단과 같은 수준이다.

오는 7월13일 열리는 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0.25%p 오르더라도 2.00%에 머무른다. 연준이 7월26~27일(현지 시각) FOMC 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을 한 번만 더 단행하면 2.25~2.50%다. 이 경우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기준금리가 0.25~0.50%p나 뒤처진다. 시장에선 이미 7월 한·미 금리 역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기준금리 역전으로 환율이 더 오르면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국내 물가를 더 강하게 밀어 올릴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한은은 지난 9일 내놓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로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의 '3고(高)'의 고통이 바짝 다가온 셈이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특히나 우리나라는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면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 여력이 축소되면서 경기에 부담을 줄 것"이라며 "해외에선 펀더멘털이 취약한 국가를 중심으로 금융 불안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부정적 파급 효과가 우리나라 경제 전반으로 퍼져나가면서 경기 둔화 속도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물가는 치솟는데 경기는 하강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경고음은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복합의 위기에 경제와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했으며,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같은 날 "경제 전쟁의 대장정이 시작됐다"면서 발언 수위를 높였다.

추 부총리는 아울러 "최근의 경제 어려움은 해외발 요인과 누적된 근본적 문제들이 중첩된데 기인한다"며 "이런 상황이 1~2개월 내 끝나기 어렵고 상당 기간 고물가 속 경기둔화 양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내년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하회하며 경기 침체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현재까지는 수출이 잘 버텨줬지만 향후 물가 충격이 강해지면 올 하반기 들어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폭이 상당히 커질 수 있다"며 "올해 우리나라가 미국을 좇아 기준금리를 연말 2.75%까지 가파르게 올릴 경우 내년에는 경기 침체 상황으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Queen 김정현 기자]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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