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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800원대 ... 돈줄 죄는 세계, 돈 푸는 일본 
8년 만에 800원대 ... 돈줄 죄는 세계, 돈 푸는 일본 
  • 김정현 기자
  • 승인 2023.07.11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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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후 원·엔 환율 추이 (한은 제공, 일일)
2011년 이후 원·엔 환율 추이 (한은 제공, 일일)

원·엔 환율이 8년 만에 100엔당 800원대로 낮아지면서 엔저 현상이 하반기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인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만 해도 엔저는 국내 수출 기업을 고전하게 한 악재였기 때문이다.

1%대 중반 성장률 달성을 위해 '하반기 수출 반등'만 바라보는 한국으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다.

초(超) 엔저는 하반기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남길까.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엔화 약세가 재차 강화된 주 요인으로는 일본 중앙은행(BOJ)의 초완화적 통화정책이  꼽힌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등 주요국은 물가 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일제히 금리 인상에 나섰다. 하지만 일본은 거꾸로 마이너스 금리와 함께 10년물 국채금리를 0.25% 이하로 고정하는 수익률곡선관리(YCC) 정책을 고수했다.

상황은 올해도 바뀌지 않았다. 지난 4월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가 취임한 이후에도 일본은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0% 정도로 유도하는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지난달 결정했다.

반면 미국은 사상 유례없이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 뒤에도 하반기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는 등 매파(통화 긴축 선호) 기조를 이어갔다. 여기에 BOJ의 초완화적 통화정책이 지속된다는 기대가 맞물리면서 엔저는 더욱 심해졌다.

일시적인 충격이 촉발해 금방 사라질 현상이 아니라 정부 당국이 의도한 정책에 따른 '구조적' 엔화 약세라는 얘기다.

당분간 계속될 엔저라면 우리 경제가 겪게 될 파급 효과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수출·내수 모두 좋지 못해 하반기 경기 회복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태다.

만일 경제가 당초 예상대로 '상저하고' 경로를 밟지 못해 '상저하저' 또는 '상저하중'에 그친다면 현재 전망되는 연 1%대 성장률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당장 엔저로 인해 여행수지 악화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값싼 엔화는 직관적으로도 우리 국민의 일본 여행을 늘리고 반대의 경우는 줄이게 된다.

실제로 지난 5월 우리나라의 여행수지는 8억2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하면서 한 달 전(-5억달러)에 비해 손실이 3억달러 이상 불어났다. 수지 악화의 많은 부분을 일본 여행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1~5월 일본을 향한 내국인 출국자 수는 대략 260만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거의 70배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동원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이달 7일 열린 5월 경상수지 발표회에서 "엔저로 인해 일본 여행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여행수지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엔저가 장기화하는 경우에는 수출 타격이 우려된다. 엔저로 인한 수출 반감 효과는 최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과거의 경험을 생각해 볼 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위험 요소다.

엔화가 저렴해지면 반대로 원화는 비싸진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비슷한 물품을 수출한다는 전제 아래 엔저는 한국의 가격 경쟁력이 밀리는 환경을 조성한다.

대표적으로 2010년대 초반이 한국에 아팠던 기억이다.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주도한 엔저 정책은 다른 나라보다 특히 한국에 피해를 입힌 것으로 분석됐다. 2012년 4.4%였던 수출 성장률이 엔저 본격화 이후인 2014년에는 2.3%로 주저앉았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 당국은 이번엔 얘기가 다르다고 보고 있다. 향후 엔화 약세가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더라도 그 수준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한일 양국의 수출 구조가 달라졌다는 지적이 있다.

두 나라 간 수출이 얼마나 유사한지를 측정하는 지표를 '수출 경합도'라고 한다. 한국무역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한일 간 수출 경합도는 2015년 0.487에서 2021년 0.458까지 낮아졌다. 특히 의료·선박·섬유의복을 제외한 가전·자동차·전기전자·화학공업 제품에서 하락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출 경합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한일 간 수출 구조가 달라지고 있거나 한국 제품의 경쟁력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며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일본 대비 한국의 수출 점유율도 안정적인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경합도가 하락했다는 것이지 양국이 경쟁국 관계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과 가장 경쟁하는 국가는 일본으로 확인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한일 간 제조업 수출 경합도는 2020년 기준 69.2로 미국(68.5), 독일(60.3), 중국(56.0)을 제치고 주요국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즉, 엔저 현상이 예상보다 길어질 경우 수출 감소는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한경연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엔화 가치가 1%포인트(p) 하락할 때마다 한국의 수출 물량은 0.2%p, 수출액은 0.61%p 감소한다고 추산했다.

그럼에도 당국이 예상 피해 범위를 좁히는 두 번째 이유는 '일본 내 물가'다.

이동원 부장은 "엔저가 수출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오래 지속해야 하는데 요즘 일본의 물가 상승률이 정책 목표를 상회하고 있어 하반기에는 절상 압력이 있을 것"이라며 "이에 따라 상품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저성장과 맞물린 저물가, 소위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오랜 기간 고통을 겪어온 나라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거꾸로 고물가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일이 늘고 있다.

지난 5월 일본의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2%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9월 3%대로 올라서고 올해 1월 4%대까지 치솟은 뒤에도 계속해서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중이다. 저물가의 나라 일본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BOJ가 곧 시장 개입 등에 나서 과도한 엔화 약세 기대감을 조절할 것이라는 예상을 속속 내놓는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 약세의 원인이 일본의 통화정책에 있지만 엔화에 대한 과도한 약세 기대감을 제어할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면서 "엔화의 추가 약세가 일본 경제에 단기적으론 긍정적일 수 있으나 자칫 엔·달러가 150엔을 상회할 경우 향후 경제와 금융시장에 부작용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연구원은 "지난해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이 145엔 수준을 웃돌면서 본격화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도 145엔 수준에서 외환시장 개입이 단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값싼 엔화의 근본 이유인 BOJ의 통화정책이 서서히 바뀌려면 앞으로 반년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BOJ는 초완화 정책을 당분간 유지하겠으며 연말연초 점진적 수정이 예상된다"며 "엔화 역시 점진적으로 강세를 보일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는 "하반기로 가면서 원·엔 환율은 900원 후반으로 상승이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Queen 김정현 기자 ] 사진 한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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