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5:20 (토)
 실시간뉴스
이영조 선생님의 카메라에 담긴 추억
이영조 선생님의 카메라에 담긴 추억
  • 김도형
  • 승인 2014.06.19 0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

지난 주말은 집에서 빈둥거리면 손해 볼 것 같은 좋은 날씨라서 카메라를 메 고 월드컵공원으로 운동 겸해서 나가보았습니다.

공원에는 화창한 봄날을 즐 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벚꽃과 목련, 진달래와 개나리꽃들이 많은 사람들 로부터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습니다. 저도 봄꽃 촬영대회에 참가한 사람처 럼 사진을 찍는데 함께 촬영하던 아마추어 사진가 들의 사진장비를 보고는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각기 고가의 최고급 카메라와 렌즈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편하게 쓰려고 10여 년 전에 산 제 카메라와 비교가 되어 약간 주눅(?)이 들었는데 왜 그 순간 은사님이셨던 이영조 선생님이 생각났을 까요. 이영조 선생님은 30여 년간 신문기자로 활동하시다 은퇴하신 후 제 모 교에서 보도사진 강의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 생생한 취재 후일담을 곁들인 강 의를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이 들려주신 수 많은 이야기 중의 한 가지가 그때 떠올랐던 것입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신문사 시절 분신처럼 몸에 지니며 사용하시 던 낡고 손때 묻은 니코마트 카메라를 소지하시고 아마추어 사 진 애호가들의 모임에 강연을 가셨답니다. 강연을 마치고 자유 질의 시간에 프랑스의 사진가 까르띠에 브레송이 평생 애용했다 해서 잘 알려진 비싼 독일제 L카메라를 목에 건 사람이 조금 으 스대듯이 선생님의 카메라를 보고는 아직도 그런 구식 카메라를 쓰시냐고 물었답니다. 내심으로는 은근한 자기의 카메라 자랑이 었겠지요.

그 물음에 선생님은 니코마트를 어루만지며 한마디하셨답니다. “저는 20여 년 이 카메라로 사진 찍으며 내 자식 4남매를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 켰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이것이 이 세상 어떤 물건보다 소중하고 내가 죽더라도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사진이라곤 몇 커트 찍지 않 고 혹여 상처라도 날까 봐 노심초사하는 그 사람의 카메라와 치열한 삶의 도 구였던 선생님의 카메라는 그 가치가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위쪽의 사진은 이 글의 주인공을 찍은 것입니다. 이제는 작고하신 선생님의 아들이 학교 후배여서 혹시나 하고 전화해보았는데 역시 물려받은 카메라를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온전히 보관하고 있어서 진정 선생님을 뵌 것처럼 반가워하며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고가의 카메라는 그만큼 성능이 우수한 것이 사실이지만 선생님이 늘 강조하셨듯 좋은 사진은 좋은 카메라보다 파인더 뒤의 눈, 즉 피사체의 아름다움을 캐내려 부단히 노력하 는 사람의 심미안적 시각에 달려 있다는 말씀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에 출근하면 다른 업무에 바빠서 근 한 달여를 지하 스튜디오의 구석진 서랍에 방치했던 취재용 카메라를 꺼내 바람을 좀 쏘여야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