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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천호선 부부-나란히 백남준을 기리다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천호선 부부-나란히 백남준을 기리다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10.08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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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두 사람이 백남준을 기억하는 책을 발표했다. 미술평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과 문화예술 행정가인 천호선 전 쌈지길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미술계에서 소문난 잉꼬부부로 결혼 44주년을 맞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백남준의 예술 세계와 인생관을 정리했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류병문

 
문화예술계에서 행정가로 일한 남편 천호선 씨와 평론가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한 아내 김홍희 관장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특별한 인연이 있다. 첨단 예술을 통한 강렬한 퍼포먼스로 한국 미술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故백남준 작가다. 김 관장은 백남준을 통해 첨단 예술을 전공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미술계에서 평론가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천호선 씨는 백남준의 활동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주고, 우리나라 미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그러니까 두 사람에게 백남준은 새로운 미술 세계로 인도한 안내자이자, 한국 미술 발전을 함께 고민한 동반자였던 셈이다.

각자 다른 관점에서 본 백남준

두 사람은 백남준이라는 인물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을 담아 책을 구성했다. 김 관장은 미술 평론가로서 작가론 중심으로 백남준을 이야기했고, 천 씨는 문화 행정과 정책의 실무자로 일했던 시절 백남준과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그의 작가 인생을 써내려갔다.
"결혼 44주년을 맞아 '4땡' 기념 이벤트를 했어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각자 책을 내보자고 했죠. 제가 백남준 선생을 공부한 전공자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작가들에 대한 작가론과 평론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작가론을 중심으로 책을 썼어요. 큐레이터로 10년간 활동하면서 작가에 대한 오마주 개념으로 백남준을 비롯한 30명 작가들의 이야기를 했죠."(김홍희)
"문화예술 행정가로 35년간 활동하면서 그 기간 동안 백남준 선생을 만난 게 제일 중요했어요. 1979년에 뉴욕문화원 문정관으로 갔는데 1981년 백 선생을 처음 만나서 돌아가기 전까지 계속 관계를 이어왔죠. 특히 백 선생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데 서울에서 방영할 방법이 없겠냐고 제안해 왔는데, 해외공보관 생활을 함께했던 당시 KBS 이원홍 사장에게 부탁을 해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방영하도록 도움을 준 적도 있어요. 이처럼 백 선생이 중심이 되어서 도움을 준 일과 받은 일, 그리고 그와 얽힌 이야기들을 정리한 책이죠. 저에게는 정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들 부부가 백남준을 만난 것은 천 씨가 뉴욕 한국문화원 초대 문정관으로 발령이 났을 때다. 1981년 10월 중순 미국 전위예술의 산실인 '키친' 창립 10주년 행사에 참석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백남준을 처음 만났다. 특히 김 관장은 공연이 끝난 후 레코드판을 깨고 바이올린을 부수는 백남준의 파격적인 퍼포먼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두 사람과 백남준의 인연은 30년 넘게 지속됐다.
"1979년 뉴욕에 한국문화원을 창설하는데 남편이 초대 문정관으로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죠. 그러다 '키친'이라는 전위예술센터에서 백 선생을 보게 됐고 정말 말로만 듣던 신화적인 퍼포먼스를 처음으로 보게 됐어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파편이 된 조각을 하나 주어서 사인을 부탁한 게 백 선생과의 첫 대면이었죠. 그 이후로 백 선생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서, 미술사를 전공하다 비디오 아트를 공부하게 됐습니다."
두 사람에게 백남준이 특별한 것은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백남준이 두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으로써 이들 부부의 인생을 변화시켰다는 데 있다. 더불어 백남준은 이들 부부에게 미술 분야를 바라보는 넓고 깊은 안목을 가져다준 인물이기도 하다.
"저희 집안 분위기 자체가 미술과 예술을 좋아해요. 누나는 피아노를 전공했고, 여동생은 미술을 전공했을 정도로요. 그래서 나름대로 미술품 수집도 하고 미술에도 관심이 많아서 미술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었죠. 그런데 백 선생을 만나면서 깊이와 더불어 아방가르드 예술을 알게 됐어요. 백 선생을 통해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된 것도 특별한데, 아방가르드를 알게 됨으로써 앞서간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때 알게 된 아방가르드 예술 덕분에 예술의전당 오픈 기념 공연으로 아방가르드 아티스트 10명 정도를 초대한 기억도 납니다."(천호선)
"저는 백 선생을 통해 첨단 예술을 전공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백 선생으로부터 구체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1992년 회고전을 할 때 무명인데도 불구하고 발제자로 초대되어 평론가로서 등단할 수 있었죠. 1993년에는 플렉서스 페스티벌을 서울에서 유치하는 일을 맡게 되었고, 1995년 광주 비엔날레를 할 때 정보예술전의 감독을 맡은 백 선생이 저에게 큐레이터를 하도록 도움을 주셨어요. 제가 미술계에 입문해서 한국에 뿌리를 내릴 수 있기까지 백 선생이 많은 지원을 해주신 거죠."

작가가 아닌 인간 백남준에 대한 기억

김홍희·천호선 부부는 '인간 백남준'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이들 부부가 공통적으로 기억하는 백남준은 끊임없이 예술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백남준은 독일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던 시절, 두 사람과 자녀까지 초청해 독일 미술관 기행의 가이드를 자처하기도 했다. 천 씨는 백남준을 '신세를 지면 어떤 형태로든지 갚은 의리 있는 사람'으로 기억했고, 김 관장은 백남준의 말 중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백 선생은 신세를 한 번 지면 어떤 형태로든지 꼭 갚는 사람이에요. 한 번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마치고 나서 독일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던 백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가족을 독일로 초청한 것이죠. 백 선생은 독일 미술관에 저희 가족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작품을 소개하고 관련 지식들을 가르쳐줬어요. 어떻게 보면 최초의 미술관 기행이었던 셈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백 선생 같은 사람과 미술관을 함께 다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천호선)
"백 선생은 1963년에 플럭서스 그룹을 창단했는데, 그 당시 처음 했던 넥타이와 머리를 붓 삼아 그린 '젠 포 헤드'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에 함께 보러간 적도 있어요. 함께 있다 보면 오랫동안 머리에 남는 중요한 말씀을 많이 하셨던 기업이 납니다."(김홍희)
천 씨는 지금 생각해 봐도 문화예술국장으로 일하던 시절, 백남준의 시대를 앞선 선견지명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국내에서 유명인이 된 백남준은 한국을 떠난 지 34년 만인 1984년에 귀국한 바 있다. 백남준은 한국에 오자마자 문화예술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다는 것을 깨닫고, 천 씨에게 "국민들의 디자인 감각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백 선생은 당시 전반적으로 문화예술 수준이 낮은 한국에서 어떻게 하면 문화예술 수준을 높일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줬던 장본인이에요. 문화예술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들의 의식 수준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들의 수준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죠. 제가 문화예술국장이 되니까 백 선생이 가장 먼저 '국민들의 디자인 감각을 끌어올리라'고 이야기해 주더군요.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행정가로서 백 선생의 활동을 많이 돕는 것이 제 역할이었죠."

예술은 부부의 공통된 대화 주제

▲ 올해 초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의 연임이 결정됐다. 김 관장은 연임이 결정되기 전부터 4년 후의 계획까지 구상하고 있던 터였다. 김 관장은 "미술관이 다들 변화하고 발전했다는 평가를 해줘서 굉장히 고무적인 상황"이라며 "앞으로 시립미술관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동시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글로컬(glocal)한 미술관'으로 정립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홍희·천호선 부부는 중매로 처음 만나 3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천 씨는 그 당시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은 여성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아내가 문화예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호감이 더욱 커졌다고 회상했다.
"제가 문화예술을 좋아해서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내가 예술과 관련된 주제를 말하면 말이 잘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무척 마음에 들어서 가을에 결혼하기로 약속을 했다가 여름에 앞당겨 결혼했죠."
엄밀하게 따지면 활동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 부부는 큰 범주에서 보면 문화예술과 연관된 동업자다. 자신이 경험하고 공부한 작가관과 미술세계관 등을 놓고 평소에도 서로의 의견을 묻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상한 취미일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예술을 감상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한 일상 중 하나다.
"석사와 박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외국의 다양한 아트를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미술 평론가이자 큐레이터로서의 기반을 단단히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실무적인 업무도 많이 하지만, 궁극적으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평론하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남편과 매일 주고받을 이야기 주제들이 많은 편이죠. 예술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묻고 의견을 나누면서 부부가 함께 발전하기도 해요. 44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런 식의 부부가 된 거죠."(김홍희)
최근에는 부부가 함께 즐기는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 5년 전부터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던 남편에 이어, 3년 전부터 아내가 동참하게 되면서 부부의 공통분모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두 사람에게는 마라톤 기록보다 경치를 감상하며 함께 뛴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는 듯했다.
"최근에 저희가 함께하고 있는 활동 중 하나가 마라톤이에요. 얼마 전에는 힘들었지만 혹서기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했죠. 제가 예전부터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는데, 얼마 전에 아이들이 디지털 카메라를 선물해줘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풍경을 찍는 재미에 쏙 빠졌어요. 그래서 꿈이 하나 생겼는데, 결혼 50주년이 되면 기념 파티로 사진전을 여는 겁니다."(천호선)
"남편이 카메라를 들고 마라톤을 하다 보니 뛰는 것보다 사람과 풍경을 찍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마라톤 기록에는 연연하지 않죠. 무엇보다 부부가 함께 공통의 취미를 갖는 것은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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