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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화가 남혜경 - 풍경으로 들여다본 인간 내면의 심원
재미화가 남혜경 - 풍경으로 들여다본 인간 내면의 심원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4.10.21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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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화가인 남혜경 화가가 최근 서울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惠雨(혜우)’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기독교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지닌 화가의 수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서울에 온 남혜경 화가와 그의 작품들을 만났다.

취재 백준상 기자 | 사진 김도형 기자

미국 동부에 거주하는 재미화가인 남혜경 화가가 최근 서울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타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남혜경 화가는 계명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그동안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전시 활동을 펼치며 여러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중견 화가이다. 특히 독실한 크리스찬으로서 기독교미술에 관심을 갖고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며 백석대학교 대학원에서 기독교미술학 석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기독교미술에 관심과 조예가 깊다.

▲ 만남 - Be
이번 초대전은 주제 ‘혜우(惠雨)’만 보더라도 신앙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화가는 지난 2011년경부터 그려온 빗방울 시리즈 유화 수십 편을 모아 전시하였다. 대부분 유리창 밖 비오는 거리나 뒤뜰 등 자연 풍경을 담은 것이 대부분인데 따로 힌트가 주어지지 않으면 여느 풍경화처럼 보이고 실제로 훌륭한 풍경화이기도 하다.
그림 속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은 때론 김창렬 화백의 물방울 시리즈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비에 젖은 유리창으로 인해 어룽져 보이는 녹색의 나뭇잎은 모네의 ‘수련’을 떠올리게도 한다. 우리에게 너무 일상적인 풍경이긴 하지만 자꾸 보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가슴 깊이 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유리창에 닿은 빗물은 빛을 굴절시켜 세상을 달리 보이게 하고 우리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 것이다.
실상 비 오는 날 집 안이나 차 안에 앉아서 비 오는 유리창 밖 세상을 관조하는 것만큼 푸근함과 안온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대지에 촉촉한 수분을 제공하여 태양만큼 소중한 존재인 비는 나무와 풀들을 자라게 하는 생명력의 원천이다. 다소 세찬 빗줄기가 몰아친다 할지라도 그 것은 언젠가는 그칠 것이고 실내에 있는 사람은 안도감에 더욱 아늑함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비가 내리는 것은 종교적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식물이 자라날 수 없다면 인류의 삶도 지속되지 못한다. 메마른 지난 봄 우리는 얼마나 애타게 비를 고대했던가. 그런 맥락에서 대지를 적시는 비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그것이 대자연이든 신이든 우리는 그에 고마움을 느끼며 인간의 왜소함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남혜경 화가는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스냅사진처럼 포착한 순간들을 통해 원시에서 현대를 관통하여 인간 내면에 면면히 흐르는 경외(敬畏)의 순간을 소환하고 있다. 그것은 애니미즘부터 유일신에 이르는 종교적 제의와도 맞닿아 있다(기우제(祈雨祭)가 없어진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관에 따르면 기독교는 자연 그 자체에 신성(神性)이 깃들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감각적인 자연의 묘사는 곧 신성의 묘사인 셈이다.

▲ 사랑이 내리다
▲ 젖어든 사랑 - Be
▲ 너에게로 To You - Be
화가의 빗방울 시리즈는 섬세한 붓 터치로 빗방울을 표현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무와 하늘을 표현하여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시하고 있다. 게다가 근래에는 칼리그래피(Calligraphy)를 도입하여 그림에 역동적이고 암시적인 표현력을 더하고 있다.
화가는 빗방울 시리즈에서 습기 맺힌 유리창에 ‘LOVE’ ‘그리움’ 등의 문자를 직접 써넣는 외에도 ‘I am Who I am’(나는 스스로 있는 자) 나 ‘God is Love’처럼 시크릿 코드 식으로 문자를 삽입해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찾아보는 즐거움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제게는 그림으로 선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교회나 십자가 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서는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저만의 적절한 표현방식을 찾고자 합니다.”
남혜경 화가는 본인이 굳이 종교에 심취하여 있음을 감추지 않는다. 화가는 기독교를 모태신앙으로 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 후 종교에 귀의하는 크리스찬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접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인격적으로도 더욱 성숙해진 인간이 되고자 노력하는 화가인 것이다.
크리스찬인 화가에 따르면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창조주가 주는 선물로 생명이자 사랑이며 은혜인 것이다. 야자수 너머 보이는 무지개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간들을 홍수로써 쓸어버리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하다.

▲ 흠뻑 So Wet
하지만 그림은 그리는 자의 것이기보다는 보는 자의 것이다. 감상하는 사람이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화가의 그림은 오로지 종교의 테두리에만 갇혀 있지도 않다. 인간이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신(神)에 귀의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한 그것은 또 다른 풍속화에 다름 아닐 것이다.
종교화가로서 남혜경 화가는 근래 들어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유리창 너머 비의 세계를 단순히 관조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만남 - Be’와 짝을 이룰만한 ‘너에게로 To You - Be’는 구세주에게 선뜻 다가가는 화가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굳이 기독교적 해석을 붙이자면 ‘만남 - Be’의 빨간색은 예수의 고혈이고 흰색은 죄 씻어줌을 뜻하며 보라색은 예수가 죽을 때 입은 옷 색깔로 예수의 상징이다. ‘너에게로 To You - Be’의 인물은 현대판 예수가 되며 노란색은 영광- 더불어 세월호 사건의 추모- 를 뜻한다.
화가의 빗방울 시리즈의 작품 경향은 처음 바닥에 떨어지는 빗물을 포착하는 것에서 시작해 유리창에 맺힌 이면 세계에 대한 관조를 거쳐 비 오는 세상에 뛰어드는 단계로 옮아가고 있다. 그것이 궁극에 어떤 도달점에 이를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기독교미술은 한때 세계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기독교화가로 일컬을 수 있으며, 가까이 노르웨이 화가인 조르주 루오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종교화의 위상과 위엄은 크게 쇠락해 어느 화가도 기독교화가임을 내세우지 않는다.
지금이 초기 기독교 시대와는 또 다른 박해의 시대이기 때문일까? 기독교계에 쏟아지는 무언의 질책과 비난의 시선은 오래 전부터 적지 않았다. 이러한 고난의 시대에 기독교화가들은 어떤 자세와 행보를 취해야 할까?
크리스찬의 삶을 실천하며 풍경화도 훌륭한 종교화가 될 수 있음을 몸소 제시한 화가 남혜경. 소리 높여 외치지 않지만 내면의 울려 퍼짐이 길게 이어지는 화가의 그림에서 조심스레 종교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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