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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 우리 마음에 남기고 간 사랑의 발자취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 우리 마음에 남기고 간 사랑의 발자취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03.1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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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다”
- 김수환 추기경 어록 中

우리가 사랑하고, 또 우리를 사랑했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한 해가 지났다. 노환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세상에서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라는 말을 남긴 김수환 추기경은 절대 자신을 드러내거나 높이지 않는 소탈함으로 살아왔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하느님의 사랑을 떠올리게 했던 김 추기경. 평생의 삶 속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온전히 실천하였기에 지금도 많은 이들은 김수환 추기경을 기억하고 더 알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회의 높은 담을 헐어 사회 속에 사랑을 심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는 2월 3일부터 28일까지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 추모사진전’을 열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소신학교 입학 시절부터 한국 가톨릭 최초의 추기경이 된 모습,(→될 때의 모습??)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 김 추기경의 인생여정이 담긴 사진들이 공개됐다. 종교 지도자이자 시대의 양심으로 살아온 김수환 추기경이 떠난 빈자리에 남겨진 사진들은 그의 삶이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한다.
‘너희와 너희 모두를 위하여’라는 사목 표어처럼 87년간의 인생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하느님의 종이자 실천하는 양심으로 길을 제시하고 화해와 사랑, 정직과 신뢰를 몸소 실천했다. 1966년 마산교구장을 거쳐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했을 때 김 추기경의 취임인사는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였다. 이후 교회 안으로는 직책을 막론하고 모두가 똑같은 하느님의 백성임을 강조했고, 교회 밖으로는 지금껏 세속의 일에 무관심한 채 교회에만 머물렀던 것을 반성하며 세상 한가운데로 나가 봉사하는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날 것을 제안하며 앞장섰다. 1969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추기경에 임명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47세로 전 세계 추기경 1백36명 중 최연소였다.
그러나 추기경이 된 영광도 잠시, 1970∼80년대 격동의 시대 속에서 세상과 교회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1970년대 가톨릭교회와 명동성당은 유신정권에 맞서 싸우는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으며,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에 이르러서는 권력과 맞서 싸우는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학생들을 연행하려던 경찰 병력의 투입을 끝까지 막아냈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지나가십시오. 그리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차례로 밟고 가십시오.”
6·10민주화운동의 결실로 우리 사회는 민주화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지만 전체적으로는 좌우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계층 간 골이 깊어져갔다. 김수환 추기경은 “서로의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으면 대화가 가능해지고 모든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희망을 걸게 된다”며 천주교의 평신도들과 함께 ‘내 탓이오’ 캠페인을 펼쳤다. 그동안 해온 정치적 발언 대신 김 추기경이 던진 ‘내 탓이오’는 당시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김수환 추기경은 평생에 걸쳐 다양한 이들을 만났다. 마이클 잭슨과 테레사 수녀를 비롯한 해외의 여러 인사들은 한국을 방문할 때면 김 추기경을 반드시 만나고 갔다. 국가의 중요사안이 있을 때 김 추기경은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는 역대 대통령들을 먼저 찾아가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으며 시대적 양심가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을 찾아오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에게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패배했을 때는 “이런 결과는 이 총재에게는 안타깝고 섭섭한 일이지만 한편 나라를 생각하면 극심한 동서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을 전했다. 당시 일에 대해 이회창 총재는 “다른 사람이라면 섭섭했겠지만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이어서 그런지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김 추기경의 강직함을 회고하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발걸음은 높은 곳에만 있지 않았다.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장애인뿐만 아니라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던 철거민, 윤락여성, 사형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그들을 위로하고 사랑과 희망을 전했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전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말은 아직도 우리 가슴을 울린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삶의 원천입니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기쁩니다.”

나눔으로 번져나가는 사랑의 씨앗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 후 각막을 기증한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생명 나눔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실천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김 추기경이 장기 기증을 서약한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해 신청한 장기 기증자는 지난 2009년 한 해만 3만1천7백5명으로, 1989년 설립 이후로 2008년까지 20년간의 신청을 합친 3만3천4백32명과 비슷한 규모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눠준 김 추기경의 정신이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국민들에게 큰 도전과 위로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김수환 추기경의 나눔 정신은 여러 모양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생전에 김 추기경이 그린(→직접 그린??) 자화상에서 이름을 따온 모금전문법인인 ‘바보의 나눔’은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나눔을 실천하는 데 바보가 되자’는 의미를 갖고 세워졌다. ‘바보의 나눔’은 김수환 추기경의 나눔 정신을 기리고 나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사회의식의 성장과 사랑의 공동체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개인 및 단체 등을 지원해나갈 예정이다.

용서하고 사랑하며 사세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1주기 추모미사가 있던 지난 2월 16일, 추운 날씨에도 명동대성당에는 3천여 명의 인파가 몰려 김 추기경이 남긴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되새겼다. 이날 추모미사는 정진석 추기경과 주교단,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봉헌됐다.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 교황청 대사와 강우일 한국천주교주교회 의장, 전국의 주교들을 비롯한 외교 사절과 정치인들도 참석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배우 안성기와 김지영, 황수경 아나운서도 참석해 김 추기경과의 지난날을 회고했다. 명동대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성당 앞마당에서 자리를 지키며 추모미사에 참례했다.
이날 미사에서는 김수환 추기경의 육성 영상도 상영됐다. 김 추기경은 영상에서 스스로를 ‘바보’라 지칭한 후에 “하느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사랑 자체이신 분인지를 말로는 하면서도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까 바보지”라고 말했다. 명동성당에 울려퍼진 김수환 추기경의 소탈한 음성은 자리에 모인 이들의 가슴을 향한 외침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마지막까지 강조한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실천과 거기서 비롯되는 평화였다. 선종 직전 찾아온 수녀들에게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사세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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