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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40주년, 시대의 횃불로 살아온 지난날 가을 끝자락에서 만난 소설가 조정래와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하다
등단 40주년, 시대의 횃불로 살아온 지난날 가을 끝자락에서 만난 소설가 조정래와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하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0.11.1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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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 신작을 발표하면 연이어지는 스케줄 탓인지 노작가의 표정에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아마도 작가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집필 시간 이상으로 소모를 요하는 지난 며칠이었을 것이다. 올여름 작가는 생애 처음 인터넷 연재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신작 ‘허수아비춤’을 통해 독자들과 조우했다. 작가의 치열한 시대정신마냥 뜨거웠던 시간이 지나고 난 지금, ‘허수아비춤’은 화려함으로 가득한 가을의 끝자락을 장식하듯 한 권의 책으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인터넷 연재 당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던 ‘허수아비춤’은 작가의 등단 4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며, 작가가 지난 인생에서 지금까지 보아 왔던 우리나라 경제 권력의 비도덕성을 신랄한 필체로 고발한 작품이기도 하다. ‘조정래’라는 이름을 걸고 써 내려간 작품들이 대개 그러하듯, 이번에도 역시 우회하거나 애매모호한 표현 없이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무장한 화법으로 그 고뇌의 여름을 지나 또 한 번 대작을 발표했다. 이제 두어 달 남은 올해의 끝자락에서 그의 시선은 이미 더 높은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또다시 어둠 속에 불을 밝히다
“뜻밖에도 이번 소설에 대해 어떤 압력이나 방해가 없었냐는 질문이 오는데, 그것은 그만큼 경제 권력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지배력이 막강하다는 반증 아니겠어요. 쓸 때는 내가 그것을 쓰는 줄 아무도 몰랐으니 당연히 없었고, 지금 책이 나왔지만 어떠한 데에서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어요. 한편으로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세련되고 성숙돼 있다는 것이죠.”
이제까지 그의 이름을 알린 작품치고 민감하지 않았던 주제가 없었기에 당연하듯 떠오르는 외압과 관련된 질문에 조정래 작가는 유쾌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내이자 함께 문학을 해온 동료인 김초혜 시인은 매번 작품 수위 조절을 걱정한다. 이번 작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발표한 작가의 신작인 탓에 독자들의 반응은 전작에 비해 더 높았으면 높았지 덜하지 않다. 그동안 무수한 작품을 발표해 온 조정래 작가이지만 언제나 독자들의 반응은 유달리 의미 있는 보람으로 다가온다.
“예민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은 했지만 인터넷 연재에서 그와 같은 호응이 오리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죠. 책 역시 나온 지 일주일 만에 6만 부가 나갔다고 하니, 나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경제 권력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작가는 자기 작품이 많은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 큰 기쁨인데, (많은 독자들이 읽었다는 것에) 작가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등단 40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여러모로 감회가 깊다. 그의 활동시기와 궤를 같이한 지난 40년 동안 우리 경제사에 대해 근본적이고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것이 ‘허수아비춤’이다.
“자본주의사회는, 물론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이 사는 사회는 밝고 어두운 양면이 존재합니다. 증류수와 같은 사회는 없습니다. 증류수에서는 물고기도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은 국민소득 2만 달러일 때 이미 모든 기업이 투명경영을 했잖습니까. 또 투명경영에 따른 세금을 정직하게 냈고요. 그 토대에서 복지사회가 이뤄졌다는 거죠. 우리가 지금 2만 달러 시대가 됐다고 자랑은 하는데… 기업들은 어떻습니까. 아직 천민자본주의를 그대로 간직한 상태예요.
‘세금 내라는 대로 다 내면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탈세를 공공연하게 인정하죠. 대중적인 자각이 없다면 가망이 없습니다.”


반어적 풍자로 더욱 날카로워진 현실 비판
“‘허수아비춤’이라는 제목은 우선 국민 전부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겁니다. 기업들이 그릇된 경제 권력을 휘두르게 된 것은 법의 비호만이 아닌 국민의 ‘경제가 잘돼야 잘살 수 있다’는 막연한 맹신이 있기 때문이죠. 그것이 환상이자 몽상이고 망상이라는 지적을 한 겁니다. 자발적인 복종을 해온 것에 대한 책임, 우리는 전부 허수아비춤을 춰온 것입니다, 그것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죠. 다음으로는 머리 좋고 많이 배운 자들이 재벌 기업을 에워싸고 경제 범죄를 조장ㆍ강화해 나가고 있는 행위, 그것을 허수아비춤이 되도록 만들어야만 이 사회가 올바르게 된다는 두 가지 의미를 상징하는 겁니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거대해진 경제 권력이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권력조직을 비롯해 언론조차 금력(金力)으로 매수하는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반사회적이고 비인간적인 범죄를 자행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그것을 관대하게 묵인하고 방임한 우리 사회 국민 전체의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작품에서 작가가 언급한 “재벌 기업을 에워싼 머리 좋고 많이 배운 자들”은 스스로를 골든패밀리(로열패밀리인 재벌 총수와 그 직계를 보좌하는 자신들의 계층을 의미)라고 정의한다. 작가는 ‘허수아비춤’을 통해 그런 그들의 술수를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국민들이 이렇게 계속 바보, 멍청이 노릇을 하는 한…. 엉터리 영어인 골든패밀리라는 단어까지 만들어 내면서 자기들의 성이 난공불락(難攻不落)이라고, 앞으로 점점 강화될 것이라고 말하죠. 그 대목은 반어적인 표현을 쓴 겁니다.”
작가는 또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자존심이 상해야 한다”며 “이성적인 분노와 논리적인 증오를 통해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품은 물론 현실 사회에서 작가는 그러한 결의가 모아진 곳을 시민단체로 지목하며 조목조목 논거를 제시한다.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사는 고작 50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망하는 선진국의 경제자본주의 역사는 200년이에요. 민주주의의 역사와 함께해 온 것입니다. 그들이 200년에 걸쳐 이룬 것을 우리는 단 50년 만에 이룬 것이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활동은 이제부터 시작이어도 빠른 거죠. 선진국의 시민단체는 지속적으로 국가와 경제 권력을 감시ㆍ감독해 오면서 오늘날 엄청난 규모로 형성된 겁니다. 이미 우리의 시민단체도 지금 말썽이 일고 있는 거대 기업들을 모조리 고발한 사례가 있어요. 아마 그러한 사례가 없다면 국민들은 아직까지도 기업들의 잘못을 모르고 있겠죠. 강력한 시민단체가 결성된다면 반드시 경제 권력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들은 술 한잔, 여자들은 커피 한잔 아껴서 시민단체에 협력해야 합니다. 십시일반이라고 그것만큼 큰 사회 기여는 없습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읽고 기업인들이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어떤 집단보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결단력이 빠른 집단이니까 반성의 기회로 삼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시대의 모순 대변하는 작가의 고뇌
경제 권력을 향해 직설적인 비판을 제기한 ‘허수아비춤’을 읽으며 과거 부패한 정치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천착해 온 작가의 냉철한 시각은 주제를 달리했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오랜 시간 한결같이 올곧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조정래 작가는 평소 그가 즐겨 쓰는 문구를 언급하며 작가의 소임을 강조했다. 
“작가는 인간과 그 생을 탐구하는 인물입니다. 세계문화사가들이 정의하기를, ‘작가는 인류의 스승이고 그 시대의 산소’라고 했어요. 단 인류의 스승이라는 말은 모든 작가에게 해당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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