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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보다 아름다운 게임이 축구다 시인 최영미, 축구와 인생을 말하다
인생보다 아름다운 게임이 축구다 시인 최영미, 축구와 인생을 말하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11.1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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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면서도 솔직한 시법으로 자신의 상처와 열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가 쉰의 나이에 시가 아닌 산문집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 산문집은 미술이나 여행, 요리가 아닌 축구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최영미와 축구, 선뜻 연관관계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이의 축구앓이는 지독하고도 유명하다.
서른 잔치를 마치고 새로운 축제를 준비하는 최영미 시인을 만나보았다.
취재 김수석 기자 | 사진 김도형 기자 

 

2002년 6월, 전 국민은 하나가 되었고 월드컵 4강이라는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다. 그와 동시에 축구는 우리의 정신과 문화의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만큼 헌신적이진 못했을 것이다. 최영미 시인은 축구를 미치기 위해서 본다고 한다. 그리고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약이라고 표현한다.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최 시인이 이번에 출간한 산문집의 제목이다. 이 책에는 축구에 대한 그이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 시작된 축구에 대한 최 시인의 열정은 십여 년이라는 기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가 있다. 국내에서 발행된 축구 관련서들을 훑고 그것도 모자라 영국에서 발행되는 <월드 사커>를 구독하면서 축구 정보를 탐식한 것은 기본. 기회가 되면 게임의 규칙을 배우고, 자리가 만들어지면 축구를 화제로 삼고, 열 일 제쳐두고 경기를 관람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는 신문과 잡지 등에 축구에 관한 글을 본격적으로 발표하면서 축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철학을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당시 대한축구협회로부터 한일 월드컵 공식보고서 편집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2005년에 출간된 시집 <돼지들에게>에는 ‘축구장에서 생각한 육체와 영혼’을 주제로 9편의 시를 발표했고, 2011년 초에는 <중앙일보>에 ‘시인 최영미 유럽 축구 기행’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렇게 축구에 빠져 밤을 낮 삼아 보낸 지 십여 년. 축구 해설가 못지않은 전문지식과 통찰력을 갖춘 최 시인은 인생을 축구에 빗대어 설명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도대체 무엇이 최 시인을 이토록 축구에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
“제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축구가 단순히 육체적인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모든 전력에서 밀리는 팀이 자신보다 우월한 팀을 이기는 걸 자주 볼 수 있죠. 때론 육체보다 정신의 힘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 축구에요. 그리고 축구는 불안의 도피처이기도 하죠. 저에게 있어 청춘의 불안을 잠재운 게 문학이었다면, 중년의 불안을 잠재운 건 축구였어요.”
최 시인은 전업 작가로서 자신이 언제까지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불안해한다. 최근 10년간 그이는 책이 잘 안 팔려 생활이 어려웠다. 그리고 삶의 불안은 그 포장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마음속 깊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렇게 뭔가에 미치면서 살아가는 것인가 보다. 사랑이든, 일이든, 축구든.

사랑, 추억 그리고 축구
시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시인의 사랑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시인은 왠지 우리가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인생의 길을 걸어봤을 거 같다. 사랑의 상처에도 저주의 말이 아닌 시를 쏟아내는 게 시인 아니던가. 더욱이 최 시인은 머리가 아닌 삶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
“30대 중반에 20대 후반의 한 남자를 무척 사랑했어요. 그러다 헤어졌죠. 처음 1년은 거의 매일 울었고, 2년째는 무척 힘들었고, 3년째가 되어서야 겨우 조금씩 추억으로 간직되어가기 시작했어요. 그 시간을 제 곁에서 함께 해준 게 축구였어요. 어쩌면 축구가 저를 살린 것인지도 몰라요.”
무엇이든 전력을 다해 빠져드는 최 시인의 학창시절은 어땠을까. 최 시인은 학창시절에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는 분위기 메이커였지만, 동시에 수줍음이 많은 여학생이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때 미친 듯이 독서에 빠져들었고 그것이 현재의 최 시인을 만든 바탕이 되었다. 그러면서 최 시인은 대학시절의 추억담을 들려준다.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는 군부정권에 대한 반대 시위가 많을 때였어요. 대단한 운동을 한 건 아니지만, 저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언어의 힘을 빌려서 저항했었죠. 그러다 우연히 시위현장에 참여했다가 잡혀간 적이 있어요. 정말 엄청 맞았죠. 호송차 안에서도 어찌나 때리던지, 평생 그렇게 맞아본 건 그때가 유일 했어요. 그리고는 관악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는데, 재밌는 게 거기서도 남학생이 데이트 신청을 하더라고요. 데모하다 끌려와서는 교도관한테 맞은편 여학생들 좀 소개시켜달라고 하는데, 정말 기가 막혔지요. 비참함 속에서도 그런 여유와 열정을 가진다는 거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물론 그 남학생의 뜻대로 되기는 어려웠지만요.”
FC 바르셀로나의 열혈 팬인 최 시인은 유럽 축구 기행을 다니며 유명 선수 및 감독과 인터뷰를 했다. 최 시인은 자신이 만난 선수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훈련장에서 만난 박지성 선수는 과묵하고 신중한 성격이었어요. 자기관리가 철저하다는 느낌을 받았죠. 프로다운 면모에서 배울 점이 많았어요. 그리고 이청용 선수는 참 부드럽고 매력적인 사람이더군요. 사람을 대할 때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다가서려 노력하는 거 같았어요. 그리고 정대세 선수는 정말 매너가 좋았어요. 그리고 다른 축구선수와는 달리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교양이 풍부한 선수였어요.”
그러나 최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호나우지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싫어하는 그의 외모도 최 시인에게는 무척 매력적이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베컴을 잘생겼다고 하는데, 제 눈에는 베컴보다 호나우지뉴가 열 배는 멋있는 거 같아요. 마치 아마존 밀림에서 막 나온 듯한 외모에 축구장을 누빌 때의 유연성과 탄력. 공을 드리블할 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즉흥적인 발놀림. 그리고 항상 웃고 있는 듯한 표정. 그의 매력을 말로써 표현하기는 힘들어요.”
최 시인은 10년간 축구에 빠져 살았고, 분석능력도 전문가 뺨칠 정도의 수준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경기결과를 예상해서 배팅하는 스포츠 복권정도는 사보지 않았을까.
“솔직히 배팅실력이 제법 돼요(웃음). 주로 마음속으로만 걸지만요. 그러다 유럽 축구기행을 할 때 맨체스터에 도착하자마자 스포츠배팅가게에서 볼턴과 울버햄프턴의 경기에 돈을 건 적이 있었어요. 결과는 제 예상대로 1:0으로 볼턴의 승리로 끝났죠. 그게 지금까지 제가 해본 최초이자 마지막 도박이었어요. 그런데 당첨금이 너무 적은 액수라 안 찾고 잊어버렸지요. 책이 잘 안 팔리면 배팅으로 먹고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웃음).”
그렇다고 스포츠 중에 축구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최 시인은 야구에도 일가견이 있다. 두산 팬인 최 시인은 2009년에 두산과 롯데 경기에 앞서 시구를 한 적이 있다.

서른과 쉰의 차이
서른의 아이콘이던 그이도 세월을 잡아둘 수는 없었다. 강산이 두 번 바뀌어 그이도 쉰이란 나이가 되었다. 그이에 있어 서른과 쉰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서른에서 바라볼 때 쉰이란 아득한 나이였어요. 서른에는 내 생각에 빠져 모든 것의 중심에 내가 있었죠. 그리고 쉰이 되어서야 나에게서 벗어나 관계를 볼 줄 알게 되었어요. 축구에 빠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거예요. 축구는 관계를 봐야 하는 스포츠니까요. 선수 혼자 잘해서는 이길 수 없죠. 선수와 선수가, 선수와 감독이, 그리고 더 나아가 선수와 감독과 관중이 융화가 되어야 하죠. 제가 이청용 선수를 최고의 선수라 생각하는 것도 그렇기 때문이에요. 자신을 자제하고 헌신하는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선수가 이청용 선수죠.”
그렇다. 서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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