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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꿈꾸다 - ‘내가 다시 정치판에 뛰어든 이유’ 야권 통합의 주역,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변화를 꿈꾸다 - ‘내가 다시 정치판에 뛰어든 이유’ 야권 통합의 주역,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2.03.2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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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은 유난히 정치적인 배우였다. 배우가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단순히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 정치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서포터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가 그러했다. 구 민주당의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해 연단에 올랐던 그는 신념에 찬 목소리와 눈빛으로 좌중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당시를 떠올려 보면 그 자신이 정치인이 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이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처음 약속한 대로 입각 제의조차 사양한 채 다시 배우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동안 정말 신나게 연기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그는 영화판에서도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혹자는 그를 두고 ‘문제적 영화의 문제적 캐릭터’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서 조차 그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지난 2010년 8월부터 ‘유쾌한 100만 민란’이란 이름의 야권 통합운동을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듬해의 일이다. 당시로서는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생기는 계획이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마음으로는 응원했지만 실제 이뤄지리라고 믿는 이들은 드물었다. 그러나 그는 방향을 잃었던 범야권의 크고 작은 세력을 추스르며 행보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지금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서 본격적인 정치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정치, 할 수밖에 없다
그는 오는 4·11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의 후보로 출마한다. 지난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에서는 한명숙 대표에 이어 2위를 하며 선전했다. ‘경선의 흥행을 위해 불쏘시개가 되겠다’는 심정으로 나섰다지만 정치인으로서 신인인 그로서는 대단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그에게 ‘정치판에 뛰어든 이유’를 물었다. 이제까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었을 터였다.
“사실 2002년 당시는 제 본업인 배우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하고 시작한 것이고 그래서 돌아갔죠. 그러나 현 정권이 시작되면서 대한민국이 총체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어요. 박원순 시장이나 문재인 이사장이나 저나 다 비슷할 겁니다. 자발적인 총동원체제라고 할 수도 있죠. 박원순 시장도 NGO 활동을 하시면서 학처럼 사실 수도 있는 분이었잖아요. 문재인 이사장도 여행을 좋아하고 난 키우며 시골에서 편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는 분인데, 위기감이랄까. 더 이상 놔둘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나온 거죠.”
정치인이 정치를 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권력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경우는 조금 다른 목표가 있다. 바로 정당과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겠다는 것. 그 시작을 위해서는 아직까지 정치판에 뿌리깊이 잔존해 있는 모순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바로 전국정당”이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더해졌다.
“2차 대전 이후 식민지 상황에서 독립된 나라 중에 이렇게 빨리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어요. 그런데 왜 지난 20년간 번번이 선진국의 문턱에서 미끄러지느냐는 거죠. 그것은 정치가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 잘못의 핵심은 남북의 분단과 동서의 지역대결입니다. 물론 지난 10년의 민주정부 역시 약체정부였기에 잘못과 실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철저한 반성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고 전국정당으로서 지역 구도를 극복하면서 남북관계를 교류 협력으로 이끈다면 모순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지난 2002년 대선 이후 열린우리당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 추구했던 이념과 겹쳐진다는 인상이 짙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른 접근’이라고 강조하며 ‘온·오프라인 결합정당, 시민 참여 전국정당’으로의 개념을 설명했다.
“1971년부터 김대중이라는 탁월한 정치인을 지지하며 만들어진 민주당의 구조가 있어요. 또 2000년 이후에 인터넷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민들도 있었죠. 이 두 세력이 합쳐진 것이 열린우리당이었고요. 하지만 문화가 달랐죠. 억지로 화학적 결합을 유도하려다가 깨진 셈이에요. 그 후에 SNS가 나왔습니다. 예컨대 기존 정당이 당원으로 벽을 치고 성안에 살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광장에 나가 네 군데 기둥을 세우고 지붕만 씌운 채 시민들이 무시로 드나드는 정당이라는 거죠. 그 계획이 구체화된 것이 이번 민주당 대표경선에서 70%의 시민참여고요. 이번 총선에서는 국회의원 후보를 100% 시민이 뽑게 하겠다는 것이죠. 정치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직접 민주주의를 가미한 겁니다.”
그는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생겨난 것을 인구가 많은 상황에서 소통의 기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화, 라디오, TV, 인터넷에 이어 급기야 SNS까지 등장한 마당에 소통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는 이를 통해 집단의 지성이 발휘될 것이라 강조했다.
“바로 SNS 혁명이죠. 북아프리카 독재국가가 무너지고 중동이 흔들리고 이미 민주화가 돼 있던 서구는 분노한 사람들의 시위가 시작됐어요. 이러한 인류사적 흐름을 민주통합당이 제일 먼저 받아들인 거죠.”
결국 그에게 배우가 아닌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종용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이었다. 그러나 배우라는 직업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기에 안타까움도 있다. 그 역시도 그러한 생각은 마찬가지다.
“제가 배우생활을 끝까지 할 수 있었다면 더 행복했겠죠. 어쩔 수 없이 역사의 흐름 속에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나이가 더 들면 다시 연기자로 복귀할 겁니다. 정치인과 연기자는 정년이 없잖아요. 그런데 정치는 나이 70세가 가까워지면 가능한 대체되는 것이 나아요. 젊은 세대가 훨씬 나으니까. 대신 연기자는 건강이 유지된다면 대체 불가능한 소재죠. 그러니 대체를 원하는 정치에 오래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에요. 저도 70세가 가까워지면 빨리 대체 불가능한 연기자로 돌아갈 겁니다(웃음).”

오래전 시작 된 꿈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면, 당 내 알력 다툼에 흔들리고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목이 쉬도록 지지를 촉구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그가 꿈꾸었던 이상과 지금에 이르러 다시금 제시하는 생각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지금 확연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스스로 정치인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연이어 입각 제의를 받았지만 그는 자신이 한 약속대로 다시 배우로 돌아갔다. 만약 그때 그가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다면 어떠했을까.
“만약에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 입각을 하거나 출마했다면 전 정파적 입장을 가지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지금의 통합운동이 이뤄지지 못했을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해도 국민의 눈에는 정파를 키우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요.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49재에서 통합 운동을 하자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안 나서더군요. 1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아, 정파 때문에 못하는구나’라고 뒤늦게 깨달았죠. 그러면서 ‘난 정파가 없으니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었고요. 만약에 제가 입각을 했더라면 지금 이 운동을 못했겠죠.”
정치인으로 나선 지금 그는 자신을 ‘시민정파’라고 정의했다. 직접 민주주의를 하자는 시민의 대표…. 총선에 도전한 이유도 ‘온-오프(ON-OFF) 결합정당’을 구상하고 제안한 것이 그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야권 통합 이후의 숙제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기득권 타파와 재벌위주의 경제 개혁, 서민을 위한 복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하나같이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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