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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족, 간송 국보 25억에 낙찰 ... 소유권 51% 간송미술관에 기부
암호화폐족, 간송 국보 25억에 낙찰 ... 소유권 51% 간송미술관에 기부
  • 김정현 기자
  • 승인 2022.03.21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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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 내 전시 중인 국보 금동삼존불감. 2022.1.17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 내 전시 중인 국보 금동삼존불감. 2022.1.17

2021년 11월, 미국에 거점을 둔 경매기업 소더비옥션이 235년 전 인쇄된 '미국 헌법 초판'을 경매로 내놨다. 

경매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의 역사를 특정 개인이 소유해선 안 된다'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나왔는데 사는 곳도, 직업도 다른 1만7000여명의 사람들이 암호화폐를 모아 '헌법다오'라는 이름으로 경매에 참여했지만  경매 낙찰엔 실패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경매로 내놓은 국보 '금동삼존불감'이 '헤리티지다오'라는 탈중앙화 자율조직(다오)에 판매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조직은 무엇이고, 그래서 낙찰받은 국보는 어떻게 됐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다오'를 살펴보도록 한다.

지난 16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재정난으로 경매에 내놓은 국보 두 점 중 하나(금동삼존불감)가 헤리티지다오라는 단체에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낙찰가는 25억원으로, 구매자는 암호화폐로 국보를 구매했다고 전해졌데 놀라운 건 이들이 49%의 권리만 소유하고 나머지 51%를 간송미술관에 기부하며 "미술관에 영구 보존하며 전시 등에 활발히 활용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헤리티지다오를 외국계 법인, 암호화폐 투자자 모임 등으로 소개했으나 이들은 정확히 외국계 법인도, 투자자 모임도 아닌데 이 단체를 이해하기 위해선 다오라는 개념을 알아보도록 한다.

좀 더 쉬운 설명을 위해 앞서 소개된 '미국 헌법 초판' 경매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도록 한다.

'미국 헌법'은 미국 최고 법이자, 세계 최고(最古) 헌법 중 하나이다. 그런 헌법 초판 인쇄물(1787년 인쇄)이 경매로 나왔으니 전 세계 시선이 쏠렸고 실제 이 초판은 514억원에 낙찰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문서'에 이름을 올린다.

그런데 경매가 시작되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을 위한 헌법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이 온라인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특정 개인이나 법인을 대표로 세우는 대신 모두가 동등하게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이 과정에서 '사람' 대신 '코드'를 믿는 탈중앙화된 자율조직 '다오'(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DAO)의 개념을 도입하게 된다.

다오는 사전적으로 '특정 중앙집권 주체의 개입 없이 개인들이 자율적으로 모여 의사(제안, 투표 등)를 표시하고 다수결로 안건을 의결하는 조직'을 뜻한다. 온라인을 바탕으로 운영돼 국경도, 성별도, 나이에도 제한이 없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나 대체불가능한 토큰(NFT) 구매 등 공동의 목적을 위해 다오가 형성되고 있다.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일찍이 이더리움의 실 사용사례로 다오를 예측했다. 그는 지난 2015년 이더리움을 출시하는 과정에서 "향후 이더리움은 통화(금융)의 역할을 넘어 NFT와 DAO 등에 쓰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DAO는 이해관계자의 의사 결정을 블록체인에 기록해 투명하고 동등하게 조직을 운영할 수 있게 한다. 모든 의사 과정(제안, 투표 등)은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컴퓨터 암호화 규칙(스마트 계약)에 따라 자동 운영된다.

헌법(Constitution)을 수호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다오' 방식을 채택하며 조직 이름을 '헌법다오'(Constitution DAO)라고 붙였다. 헌법다오는 낙찰에 성공하면 '국민을 위해 초판을 전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이더리움'으로 모금을 시작한 헌법다오는 일주일 만에 4000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성하고 참가자만 1만명을 넘어섰다.

'코드가 법'이라지만 쿨한 금전 거래가 마음처럼 될까? 헌법다오는 이더리움으로 경매에 참여한 개인에게 담보의 의미로 암호화폐를 지급한다. 헌법의 주권을 가진 '국민'(People)에서 이름을 따 '국민토큰'(People Token)이라는 암호화폐를 발행한 것이다.

'국민토큰'은 차용인과 채권자 사이에서 발행하는 일종의 '차용증' 역할을 한다. 맡긴 금액에 따라 참가자가 받게 되는 토큰 수도 달라지는데 헌법다오는 그렇게 모은 이더리움으로 경매에 참여했다. 헌법 초판의 최종 낙찰금액은 4320만달러. 헌법다오가 적어 낸 4000만달러보다 320만달러 더 높은 가격이었다.

헌법다오는 경매 낙찰 실패 이후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경매에 실패했지만, 역사를 만들었다"며 "개별 물건에 대한 크라우드펀딩으로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다. 함께 이뤄낸 것에 감사한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낙찰에 실패했으니 모인 돈을 처리해야 할텐데 놀랍게도 참가자의 절반 정도는 투자한 이더리움을 그대로 돌려받았지만, 일부는 스스로가 돌려받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더리움을 맡기고 받은 '국민토큰'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실제 지난해 11월19일 4원에 불과했던 국민토큰은 12월23일 209원까지 치솟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지난 1월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 정우현 아톰릭스랩 대표 등 업계 유명인사가 '국보다오'를 구성해 금동삼존불감 경매에 참여하려 한 일이다. 이들은 카카오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 기반 NFT를 발행(민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모으려 했다. 하지만 목표 모금액을 달성하지 못하며 경매 참여는 불발됐다.

헤리티지다오는 뒤늦게 다크호스처럼 떠올랐다. 헤리티지다오는 한국계 대표가 운영하는 싱가포르 기반 블록체인 개발사 '크레용'이 주축이 돼 구성됐다고 하는데 크레용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국보 2점을 경매에 내놨다는 소식을 듣고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하위 프로젝트 중 하나로 헤리티지다오를 구성했다.

헤리티지다오에 대해 밝혀진 정보가 많지 않지만 '헌법다오'처럼 '문화유산'을 뜻하는 영단어 '헤리티지'(Heritage)를 따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헤리티지다오는 지난 1월 미국 '헌법다오'가 자금을 모았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주스박스'(Juicebox)에서 암호화폐로 자금 모집에 나섰다. 이들은 '국민토큰'과 같은 역할을 하는 암호화폐 '헤리티지다오토큰'(HDAO)도 발행했다.

주스박스에 따르면 총 57명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헤리티지다오토큰을 배분받은 상태인데 익명성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하는 블록체인 특성상 해당 토큰 보유자의 신원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57명의 참가자가 어떤 목적으로 투자에 참여했는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앞서 헌법다오 사례에 비춰 보면 '국보를 지키기 위한 목적' 또는 'HDAO토큰의 가치 상승에 따른 이익 실현'을 기대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들이 과반이 넘는 지분(51%)을 간송미술문화재단에 기탁한 건 '국보를 되팔 수 없는 구조'를 구성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 만약 이들이 국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면, 많은 참여 권한을 가진(HDAO 토큰을 많이 보유한 자) 소수가 구조를 악용해 국보를 되파는 일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헤리티지다오는 금동삼존불감과 관련한 NFT 발행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국보 실물은 우리 국민이 관람할 수 있게 미술관에 남겨두되, 추가 수익 창출안을 고려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다.

다오가 국보를 낙찰받은 일이 전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선 또 어떤 방식의 다오가 나타날까. 나아가 다오는 기업과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중앙 정부와 중앙 은행에 반발하며 '탈중앙화된 화폐' 비트코인을 제시한 나카모토 사토시의 비전이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Queen 김정현 기자]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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