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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젊은 여성 재단사 손미현, 대통령 양복을 만들다
30대 젊은 여성 재단사 손미현, 대통령 양복을 만들다
  • 김은정 기자
  • 승인 2022.10.06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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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느질 맞춤옷에 대한 가치와 철학

 


한성대 입구역 뒷골목의 조그만 양복점 페르레이는 30대 젊은 여성재단사 손미현 대표가 두 명의 재단사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맞춤 양복 전문점이다. 이 작은 가게가 대통령의 양복을 만든 곳으로 알려지면서 요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손미현 페르레이 대표를 만나 대통령 내외와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와 옷에 대한 철학을 들어 보았다.
 

손미현 대표가 대통령의 옷을 만들게 된 계기는 작년 7월 한 인스타 DM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어떤 여성분이 메시지를 보내셨어요. 중년의 뚱뚱한 아저씨인데 세련된 느낌으로 양복을 만들어 줄 수 있냐는 거예요. 그래서 원래 그런 주문을 많이 받기에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죠. 그러면서 여러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뭔가 많이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많이 알아 보셨나 생각했는데 일주일 뒤 집으로 와 주실 수 있냐는 거예요. 그래서 원래 출장은 안 가는데 뭔가 VIP분이 아닐까 싶어 찾아갔죠. 그런데 당시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윤석열 총장님이어서 깜짝 놀랐어요.”

당시 손 대표가 주문받은 옷은 봄·가을 옷과 겨울옷 각 2벌, 여름옷 1벌 등 다섯 벌을 먼저 맞췄고, 나중에 취임식용으로 한 벌을 더 맞췄다. 유세 때는 보수적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라펠(재킷깃)의 각을 줄여서 약간 처지게 디자인했다. 반대로 취임식은 경사스러운 날인만큼 라펠을 세워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하도록 했다. 손 대표는 당시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옷을 만드는 만큼 어깨가 무거웠다고 한다.

“정말 사명감을 가지고 만들었어요. 이 옷을 입고 하루 종일 활동을 하시려면 그만큼 옷이 중요하잖아요. 전국을 다니시며 사람들을 만나고 경선과 토론을 하실 텐데 옷이 잘 안 나오면 결과에 어느 정도 우리 책임도 있다 생각하고 실수해선 안 된다는 각오로 만들었죠.”

그렇게 부담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옷을 만들었고 그 인연으로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대되어 참석했다. 자신이 만든 옷을 대통령이 입은 모습을 보니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수만 명 운집한 곳에서 주인공이시잖아요. 대통령께서 선서를 하시고 마지막에 ‘대통령 윤석열’ 하시는데 정말 찌릿찌릿하더군요. 그날의 감동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손미현 페르레이 대표는 손바느질 맞춤옷에 대한 가치와 철학에 대해 “옷을 만들 때 항상 ‘작은 것 하나라도 최선을 다하자’라는 생각으로 해요. 최고의 옷을 만들자는 것이 기본 원칙이구요. 작은 치수 하나도 몇 시간을 고민하죠. 이런 고민들이 모여 좋은 옷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라고 말했다.

 

소탈한 대통령 내외의 모습이 인상적
 

손 대표는 처음에 대통령 내외를 뵙고 느낀 첫인상이 무척 소탈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좀 무섭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중저가의 티셔츠를 입고 계신 대통령과 화이트 티셔츠와 청치마를 입고 맨얼굴로 계신 여사님을 뵙고 상상한 것과는 달라 좀 당황했어요. 다만 대통령의 다부진 체격과 눈빛에서 강한 포스는 느껴졌죠. 두 분이 말투나 행동이 너무 소탈했고 긴장을 풀어주시려고 편하게 질문도 많이 해주셨어요.”

옷에 대해선 넉넉한 핏을 원하는 대통령과 날씬하게 해달라는 직원들의 의견이 달랐는데 김 여사가 적절히 조율해 남편의 바지통 고집은 말릴 수 없으니 본인이 편하게 해주되 너무 펄럭거리지만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양복이니 아주 고가이지 않을까 싶어 가격을 물어보았다.

“양복은 원단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200만원 정도로 우리가게 기준으로는 중가에서 중저가에 해당돼요. 대통령의 양복은 모두 국산 원단을 사용했고요. 상담하고 원단을 정해서 금액을 말씀드리니 그 자리에서 바로 개인 송금을 해주시더군요.”

직접 만난 윤대통령은 직원들과 농담도 많이 하고 장난도 치는가하면 어떤 날은 주방에서 손수 요리를 할 정도로 소탈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보기 드문 30대 젊은 여성 재단사
 

재단사의 평균 연령이 70대인 국내 양복 업계에서 손미현 대표처럼 30대 여성 재단사는 천연기념물이다. 어떻게 이런 젊은 여성이 양복 시장 업계에 뛰어 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 있었는데 평범하게 일반 대학에 진학했어요. 그래서 잘 맞지 않아 스물두 살 때 패션 학교에 진학했어요. 그런데도 그냥 막연하게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학교를 그만두고 방황하다가 종로 5가 한 양복집에서 일하던 친척 할아버지가 떠올랐어요. 한번 놀러 오라고 하셔 찾아갔는데 수제 양복 일을 권해주시더군요. 학교와 전혀 다른 현장도 좋았고 일 마치고 재단사 선생님들과 술 한 잔 하는 분위기도 정겨웠고요. 그렇게 2년 정도 돈 받지 않고 일하고 배웠어요.”

그렇게 양복 일을 시작한 손 대표는 기본부터 제대로 배워 일취월장했고 종로에서 가게를 시작하다 2019년 성북동에 지금의 페르레이 이름을 달고 문을 열었다.

친척 할아버지 가게에서 만난 연륜 있는 70대의 박상학 재단사와 요즘 보기 드문 젊은 30대의 김남훈 재단사와 함께 의기투합해 손바느질 양복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옷 잘 만들기로 입소문이 나 그룹 회장, 대기업 CEO, 법조인, 의사, 연예인 등 신분을 밝히기를 꺼리는 VIP손님들이 많다. 양복을 입어 본 사람들의 좋은 후기도 많아 김건희 여사도 그런 후기들을 보고 페르레이를 컨택 했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가게가 이토록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일단 옷을 잘 만들어서가 아닐까요.(웃음) 그리고 개인에게 맞춰 제작하는 비스포크는 사람 대 사람에서 시작하는 일이에요. 옷이 최우선이지만 비스포크를 경험하면서 서로 교감하고 맞춰나가는 그런 것들을 손님들이 좋아하지 않았나 싶어요.”

내공 있는 오래된 맞춤 양복점들도 많은데 몇 년 되지 않은 이곳의 옷이 사랑받는 데는 손 대표의 남다른 철학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옷을 만들 때 항상 ‘작은 것 하나라도 최선을 다하자’라는 생각으로 해요. 그리고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 타협하는 일이 없어요. 최고의 옷을 만들자는 것이 기본 원칙이구요. 작은 치수 하나도 몇 시간을 고민하죠. 이런 고민들이 모여 좋은 옷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페르레이 오뜨 꾸띄르 첫 뮤즈는 김건희 여사
 

손미현 대표는 요즘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만들고 있다. 페르레이에서 7월에 ‘Elegant Insight’ 라는 주제로 여성 오뜨 꾸뛰르를 새롭게 출시했는데 첫 뮤즈가 퍼스트레이디 김건희 여사다. 작년 여름 처음 인연을 맺고 댁에 방문 드릴 때마다 김 여사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남다른 감각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김 여사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여사님께서 손바느질 기술의 가치를 잘 아시고 높이 평가하시는 거예요. 모든 기술은 손에서 나온다.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이 모두 바느질로 시작했다며 한국의 손바느질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뛰어나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바느질 한 땀 한 땀에 옷의 퀄리티가 좌우되는 이 기술은 예술이다’라고 까지 하시는데 그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보통 칭찬하시는 분들은 ‘멋있다. 대단하다’라는 정도로 말하는데 여사님은 아주 디테일하게 칭찬을 하시는 거예요. 사람의 말을 듣고 그렇게 감동받아 본 적은 처음이었어요.”

페르레이 오뜨 꾸띄르는 소수만을 위한 맞춤옷으로 고객을 더 많이 알 수 있을 때, 고객에 대해 영감을 얻게 됐을 때 나오는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에 부담을 드릴까봐 조심스러웠어요. 여사님을 뵙고 영감이 떠올라 옷을 만들어 봤는데 그냥 부담 없이 편하게 한번 입어보시지 않겠냐고 가지고 갔더니 정말 감사하게도 피팅에 응해주셨어요. 여성미를 강조한 투피스를 가봉 단계에서 소개해 드린 건데 디자인과 핏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원단을 직접 골라 진행해보고 싶다고 하셔 제작하게 되었어요.”

손미현 대표는 인스타와 블로그 활동도 하고 있는데 거기에 이 소식을 올리니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문의가 폭증하고 있다고 한다.

 

'페르레이' 손미현 대표는 대가 끊긴 산업이라 할 정도로 고령화된 양복 재단사 업계를 위해 테일러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손바느질 산업의 가치 이어나가고 싶어
 

대통령의 양복을 만들고 김건희 여사를 뮤즈로 새로운 여성 오뜨꾸띄르 라인을 출시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손미현 대표는 더 큰 꿈과 목표가 있다.

“양복 재단사 일을 하시는 선생님들이 거의 70, 80대 되신 분들이에요. 대가 끊긴 산업이라 할 정도로 고령화되었는데 젊은 사람들은 선뜻 하려는 사람들이 없어요. 그러다보니 후계양성에 힘써야하는 것이 업계의 과제여서 제가 테일러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어요. 상업적인 수단이 아니라 정말 후계양성이 첫 번째 목표여서 일대일로 제대로 가르치는 아카데미로 키워 보고 싶어요.”

본인도 젊은 나이지만 업계의 미래를 걱정하고 후계 양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 당차면서도 진정성이 느껴졌다. 손대표가 손바느질이라는 이 산업에 대해 그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말 손바느질이라는 이 일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한국의 손바느질 기술은 세계적이죠. 메이드 인 이태리라고 해도 나라만 이태리지 한국 사람들의 손에서 탄생하는 명품이 많아요. 이번에 대통령의 양복점으로 저희 가게가 알려졌지만 이 산업이 알려지고 재조명되어 이 일의 가치가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한국인의 손바느질 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취재 김은정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00:00:08 대통령의 양복을 만들게 된 계기는?
00:01:47 본인이 만든 옷을 입고 있는 대통령을 본 소감은?
00:02:13 보기 드문 30대 젊은 여성 재단사인데, 양복을 만들게 된 계기는?
00:03:05 작은 가게가 이토록 알려진 이유는?
00:03:38 옷을 만들 때 철학이 있다면?
00:04:20 앞으로의 각오나 목표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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