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8:10 (토)
 실시간뉴스
<천 원짜리 변호사> 배우의 안간힘으로도 막을 수 없다
<천 원짜리 변호사> 배우의 안간힘으로도 막을 수 없다
  • 김공숙
  • 승인 2022.11.14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디어 비평
SBS <천 원짜리 변호사>

 

남궁민은 <스토브리그>, <검은 태양>에 이어 최근작 <천 원짜리 변호사>(이하 <천변>, SBS)로 연기대상 3년 연속 수상이 점쳐진 배우였다. 그러나 작품 후반부 석연찮은 이유로 축소 편성이 결정된 후 캐릭터와 이야기가 무너지고 말았다.

<천변>은 2017년 배우 지성에게 연기대상을 안겨준 드라마 <피고인>의 최수진, 최창환 남매 작가 팀의 작품이다. 기획 의도는 “수임료는 단돈 천 원. 실력은 단연 최고. ‘갓성비 변호사’ 천지훈이 빽 없는 의뢰인들의 가장 든든한 빽이 되어주는 통쾌한 변호 활극!”이다. 사실 천 원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라는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천지훈은 엄중한 법정에서 치열한 변론 대신 소매치기 시연(試演)으로 승소를 이끌고,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난 의뢰인의 형사보상금을 받아주어 의뢰인 딸이 심장병 수술을 받게 만든다. <천변>은 법정물의 옷을 입은 판타지로, 중요한 것은 그럴듯한 개연성보다는 서민 영웅 천지훈의 기상천외한 활약상이 전하는 통쾌함이다. 진지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우영우>나 <소년심판> 같은 드라마와는 결이 다르다.

<천변>은 천지훈이라는 한 명의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 가는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다. 초반부에 유쾌함과 따뜻함을 지닌 천변의 매력을 코믹하고 시원하게 보여주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천변>은 <동네변호사 조들호>와 비슷한 설정이지만, 배우 남궁민을 떠올릴 때 먼저 생각나는 것은 <김과장>이다. <김과장>은 남궁민을 대중에게 널리 각인시킨 드라마다. “장르로서의 코미디를 통해 자유롭게 풍자하고, 드라마로는 유례없이 현실에 마구 채찍을 가하는” 화제의 드라마였다. 코미디는 특유의 비논리적 전개가 시청자에게 오히려 일탈의 쾌감을 제공한다. 천지훈 변호사, 김성룡 과장이 바로 그런 캐릭터다. 이들은 영악하면서도 비상한 노림수를 잘 이용해 다양한 문제를 비범하게 해결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과정이 비슷하고, 그 계기가 소중한 존재의 죽음이라는 시련을 통해 각성한 결과라는 것도 공통적이다. 모두 부정한 권력 카르텔의 탐욕으로 망가진 세계를 회복해줄 유일한 대안으로서 영웅적 과업을 수행하는 존재다. 하지만 일반적인 영웅이 아니라 오히려 악당과 유사한 반(反)영웅(anti-hero)성을 가졌다는 점도 닮았다(이다운 연구 참조). 말하자면 <천변>은 <김과장>의 변호사 버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천변>은 몸을 던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좌충우돌하는 천지훈의 활약상을 보여주다가 과거사를 풀어놓으며 복수극 스릴러로 변화한다. 천변이 사랑하는 주영(이청아)과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채 깊은 상처를 숨기고 살았고 그 결과 천 원 변호사가 되어 복수를 꿈꿨다는 것이다. 당혹스러울 수 있는 장르 전환은 물론, 우연과 작위적 설정도 적지 않았다. 천변이 수사 대상 회사 CEO에게 자살을 종용하는 상황의 녹취록을 들려주거나, 자동차를 손상시킨 갑질 간부 회사의 사장이 공교롭게도 천변의 고객이라는 것 등이다. 그럼에도 코믹한 천지훈과 대비되는 과거사 속의 진중하고 강렬한 천지훈은 오히려 이후 이야기를 한껏 기대하게 만들었다. 시청자는 이미 천지훈 캐릭터에 설득당해 그를 신뢰할 마음의 준비가 모두 되어 있었다.

하지만 <천변>은 잦은 결방과 축소 편성 이후 이야기가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1년 동안 잠적했다가 나타난 천지훈이 뜬금없이 농촌으로 찾아가 일감(?)을 찾으며 자신이 진짜 변호사인지 아닌지를 밝히는데 시간을 흘려보내는가 하면, 상투적인 권선징악으로 드라마를 끝내고 말았다. 대사와 설정도 작가가 바뀌었나 싶을 정도로 어설픈 수준이 마지막 회까지 이어졌다. 몰입감 있는 캐릭터와 속도감 넘치던 이야기는 사라지고 코미디만 남발하는 인물들과 이야기의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고만 <천변>이 연말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궁금하다. 배우는 중요하지만, 드라마의 전부는 아니다. 배우 혼자 사력을 다해 캐릭터를 표현하려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이야기’다. 이것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진짜 코미디가 되고 만다.

 

SBS '천원짜리 변호사'

 

글 김공숙(안동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부교수)  | 사진 SBS ‘천원짜리 변호사’

 

 

김공숙 교수는…
저서로 「OTT 스토리텔링 생존공식」 「멜로드라마 스토리
텔링의 비밀」, 「고전은 어떻게 콘텐츠가 되었을까」 등이 있
다. 한국방송평론상을 수상했고, 동아일보 등 몇몇 일간지
에서 방송비평을 한다. 한국예술교육학회·한국지역문
화학회 이사, 한국방송작가협회 정회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