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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푸른 난초의 진짜 설계자
<작은 아씨들>, 푸른 난초의 진짜 설계자
  • 김공숙
  • 승인 2022.11.17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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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작은아씨들’ 스틸 사진(tvN)
‘작은아씨들’ 스틸 사진(tvN)

 

<작은 아씨들>(tvN)은 오랜만에 드라마의 재미를 만끽하게 한 작품이었다. 필자는 무엇보다 극본을 쓴 정서경 작가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podbbang, 조용한 생활 2022년 9월호). 정서경은 영화 <헤어질 결심>의 각본가다.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독전>을 썼고, 드라마로는 <작은 아씨들>이 두 번째다. 첫 드라마는 이보영이 나온 2018년 <마더>다. 일본 원작 드라마의 리메이크로, 원작에 한국적 문화 번역과 상상력을 추가하여 주목받았다. 특히 원작에서 미미했던 존재를, 도망치는 주인공을 쫓는 악당 이설악 캐릭터로 설정해 무명에 가까운 배우 손석구를 대중에게 깊이 각인시킨 일등공신이 정서경이다.

그가 영화에서 보여줘온 폭풍처럼 몰아치는 스토리 전개 역량과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 구성력은 그의 첫 오리지널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작은 아씨들>의 최대 장점은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늘어지거나 불필요해 보이는 이야기가 없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16부, 12부, 8부 등 이야기가 긴 편이다. 그러다보니 전달할 핵심 이야기가 많지 않은데도 이런 저런 불필요한 요소를 넣어 분량을 늘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정서경은 “서사를 쓰는 사람은 관객의 시간에 책임이 있다”는 원칙으로 작품을 1분 1초도 낭비됨 없이 누릴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이를테면 대사의 “불필요한 조사 하나 하나라도 아껴서 그 시간을 더 좋은 것으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영화 시나리오 쓸 때의 습관이 이번 <작은 아씨들>에도 충실히 적용되어 낭비 없는 드라마가 되었다고 본다. 그만큼 작가가 전달할 이야기가 차고 넘치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작은 아씨들>이 소녀들의 영혼의 책으로 불리는 소설 『작은 아씨들』과 동명이기에 소소하고 따뜻한 이야기인가 싶었다면 빗나갔다. 반전을 거듭하며 점점 더 커지는 전개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를테면 최고 악당이 박재상(엄기준)인 줄 알았더니 2회를 남기고 자살해 버린다. <셜록홈즈>의 코난도일에서 차용한 이름의 최도일(위하준)처럼 어느 편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캐릭터에, 예측 불가한 전개, ‘푸른 난초’ 같은 신비로운 오브제까지, 소설 제목처럼 익숙한 듯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서경 드라마의 힘은 천재적 작가의 독창성에서 온 것일까? 아니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이야기가 동화 범주에 속할 것”이라며, “그렇게 생각하면 갑자기 이야기가 쉬워진다”고 한다. 옛 이야기는 대중에게 오랫동안 가치와 재미를 승인받아온 것이기에 슬기로운 창작자라면 적극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는 <마더>는 헨젤과 그레텔, 영화 <헤어질 결심>은 인어공주를 생각하면서 썼다고 한다. 거품이 되어 바다로 돌아간, 바다 속에 살던 여자가 땅으로 올라왔을 때 겪는 어려움을 표현했다.

“제가 이야기를 쓴다기보다는, 동화나 민담도 사람들 이야기 속에서 그 시대 떠다니는 어떤 갈등구조, 인물군이나 이미지를 통해 구체화되는 거니까. 그런 식으로 제가 생각하는 동시대적 이미지와 갈등구조를 그런 이야기 구조 속에서 풀어본다고 생각하면 늘 편하더라고요.”

<작은 아씨들>은 민담 「분홍신」과 「푸른 수염」의 드라마 버전이다. 어느 날 문득 이유 없이 ‘푸른 난초’가 자신에게 ‘들어왔고’,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유를 찾아 써나가면서 이야기가 구체화되었다고 한다. 창작자들이 새겨들어볼만한 유용한 팁이다. 필자는 신화와 민담을 인간 무의식의 원형적 집합체로 본 융(C. G. Jung)이 떠올랐다. 융은 ‘시인(작가)은 기껏해야 산파’라고 했다. 작가의 독창성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대자연의 원형적 주제가 작가에게 작품을 만들어 ‘낳게’ 할 뿐이라는 뜻이다. <작은 아씨들>의 산파 정서경도 비슷한 말을 한다. “이야기가 원래 있고… 작은 아씨들이란 이야기 세계 속에서, 어떤 부품도 남지 않고, 레고의 2500피스가 한 전체를 이루는 것처럼 모든 게 맞아떨어지게 하고 싶어요.”

좋은 창작자라면 옛이야기에 대한 이해와 활용력은 든든한 기초가 된다. 다음이 동시대적 변용 능력이다.
 

글 김공숙(안동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부교수) | 사진 tvN ‘작은아씨들’

 

 

김공숙 교수는…

저서로 「OTT 스토리텔링 생존공식」 「멜로드라마 스토리
텔링의 비밀」, 「고전은 어떻게 콘텐츠가 되었을까」 등이 있
다. 한국방송평론상을 수상했고, 동아일보 등 몇몇 일간지
에서 방송비평을 한다. 한국예술교육학회·한국지역문
화학회 이사, 한국방송작가협회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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