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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사’ 여성들의 生存記
‘대행사’ 여성들의 生存記
  • 이복실
  • 승인 2023.04.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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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사’는 최근 종편에서 방영하고 있는 주말 드라마이다.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여주인공이 최고의 위치까지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 기획 의도라고 드라마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한국 드라마 여주인공들은 재벌 2세 만나서 행복을 찾는 신데렐라가 대부분인데 이 드라마는 다르다. 여주인공이 본인의 능력만으로 인정받아 승진한다. 남자 맞수들을 통쾌하게 물리치는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현재까지는 압도적인 업무성과를 거두어 그 회사 최초 여성 임원으로 발탁도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개인적으로 행복하지가 않다. 불면증에 시달려서 약을 먹지 않고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술 없이 맨정신으로 버티지도 못한다. 툭하면 의사인 친구를 찾아가서 약을 달라고 한다. 친구는 “절대로 술을 먹고 약을 먹지 마라. 너 그러다가 큰일 난다.”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 직장에서의 성공에만 매달린 나머지 개인으로서의 행복은 없었다.

만약 MZ세대가 “그녀처럼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답은 “글쎄요.”“아니요.”가 다수일 것이다. 개인 생활은 전혀 없고 일이 100%인 고아인의 삶은 요즘 MZ세대가 추구하는 삶의 질과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는 고아인 상무, 회장 딸인 강한나 상무, 직원인 조은정의 인물을 통하여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과 성공 전략에 대해 시사점을 준다.

그녀들이 일만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주인공인 고아인 상무는 일 중독자이다. 일에 집중하여 업무성과를 내지만, 개인 생활은 전혀 없다. 다른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일에서 승부를 건다. 심지어 회장 딸인 강 상무도 부회장인 오빠에 대적하기 위하여 성과를 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들이 일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보상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다수자인 남성에게 더 많은 점수가 주어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소수자인 여성이 눈에 띄려면, 다수자인 남성보다 몇 배 더 일하고 몇 배 더 성과를 내야 한다. 한국씨티은행 유명순 행장은 한국씨티은행 최초 여성 은행장이다. 민간은행 최초 여성 은행장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시작해 30년 넘게 기업금융 분야에서 근무한 기업금융 전문가로 금융권 유리천장을 깬 여성 인재이다. 그녀도 과거를 돌아보니 “인정받고 승진하기 위해서는 업무성과밖에는 길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최고 의사결정자들이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들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학연과 지연과 의리로 뭉친 그들만의 리그에 아웃 사이더인 여성이 끼어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일만 할 수밖에.

하지만 리더가 되면 일만 해서는 안 된다. 업무성과는 기본이고 배려, 화합, 균형, 소통 등 정서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부하 직원과 리더의 자질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균형감각을 더 갖추기를

이전에 같이 일했던 직원 중에 적극적이고 일 잘하는 직원이 있었다. 업무성과도, 업무태도도 모두 훌륭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너무 오바하는 것’이 문제이었다. 그와 반대인 직원도 있었다. 일에 관심도 없으니 당연히 성과도 없었다. 자신감도 없고 태도도 소극적이었다.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저 둘을 용광로에 넣어서 반으로 가르면 이상형이 나올 거야.” 사실 균형을 갖는다는 것은 여성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필요한 공통의 과제이다. 균형이라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둘 다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갖추어야 할 균형은 한둘이 아니다. 일과 가정의 균형, 권한과 책임의 균형, 자신감과 겸손의 균형, 감성과 이성의 균형, 채찍과 당근의 균형, 외면과 내면의 균형, 예스와 노의 균형, 이 중 하나라도 놓친다면 금방 극단적인 사람이라는 평을 듣게 될 것이다.

고아인 상무도 마찬가지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나머지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 여성은 자기를 내세우고 자랑하는 일에 익숙지가 않다. 근데 고아인은 반대이다. “제가 일을 좀 하잖아요.”라는 멘트를 막 날린다. 하지만 자신감이 너무 지나치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한 것을 그녀는 모른다. 하지만 멘토와 그녀를 지지하는 직원들 덕분에 점점 그녀도 변하고 있었다.

그녀들에게는 멘토가 있었다

성공한 여성 리더들을 보면 거의 공통점이 있는데 공통점 중 하나가 나의 능력과 자질을 인정해주고 코칭을 해주고 도와주는 멘토가 있다는 점이다. 앞이 막막하고 길이 안 보일 때 등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멘토이다. 거창한 인물만 멘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고충을 들어주고 내가 미처 못 보는 것을 끄집어낼 수 있다면, 다 멘토의 범주에 들어간다. 회장 딸인 강 상무도 멘토가 있었다. 속상한 일이 생길 때마다 멘토인 대표를 찾아간다. 대표는 그녀를 달래주느라 그녀가 좋아하는 바나나우유를 건네며 지혜로운 조언을 한다. 고 상무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옛날 상사인 멘토를 찾아가 상담하고 조언을 구했다. 여주인공인 고상무는 멘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돕는 부하 직원들도 있었다. 조직에서는 나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므로 함께하는 직원이 필요한데, 그녀는 운이 좋게도 그녀를 진심으로 돕는 부하 직원 4인방이 있었다. 하지만 4인방은 무조건 “네네”하며 그녀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상사가 잘 못 했을 때는 따끔한 지적도 하고, 반대도 한다. 때로는 멘토 역할을 하였다. 고 상무는 그런 부하 직원들에게 확실한 성과보상으로 보답한다. 그렇게 끈끈하게 그들은 팀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은정이 보여주는 짠한 워킹맘의 모습

드라마 속 부하 직원인 은정은 워킹맘이다. 그녀의 아들은 매일같이 “엄마, 언제 직장 그만둬?”를 외치고 산다. 아들 때문에 가슴 아파하며 은정은 사직서를 내려는데 그날 그녀는 공교롭게도 승진 통보를 받는다. 일과 가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녀는 일을 선택한다. 그대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나 같아도 일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어린 아들을 설득하기 이하여 은정은 머리를 쓴다. 아들에게 “네가 좋아하는 고기를 사기 위해서 엄마는 직장을 다녀야 한단다.”라고 말한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더 “엄마, 직장 그만둬”를 외치지 않을 것이다. 육아 문제는 은정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워킹맘이 겪는 애환이다. 언제쯤이면 워킹맘들이 마음 놓고 직장을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올까?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하여 정시 퇴근문화 및 근로의 시간과 장소의 유연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OECD 국가의 평균 근로시간은 1,696시간인데 우리나라 근로자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무려 2,116시간에 이른다. OECD 평균보다 25%가량 더 일하는 셈인데 노동생산성은 OECD 30개 국가 중 28위에 불과하다. 비효율적인 장시간 근로 관행은 일 가정 양립 차원뿐만 아니라 삶의 질과도 직결되는 과제이기 때문에 개선해야 하는 우리의 숙제이다.

드라마 ‘대행사’는 현재 우리나라 여성 직장인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향후 뒤에 오는 우리 딸들이 보게 될 드라마에서는 일과 가정이 정착된 직장이 주요 무대가 되기를, 드라마 속의 워킹맘들이 마음 놓고 일하는 사회가 되기를, 극단적인 리더가 아니라 균형감각을 갖춘 여주인공이 등장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가득하다. 
‘대행사’의 여성들 모두 파이팅!

글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 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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