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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법] 호스피스를 아시나요?
[여성과 법] 호스피스를 아시나요?
  • 전현정
  • 승인 2023.06.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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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천천히 생각해야 뜻을 알 수 있는 말이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도 그러하다. 라틴어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뜻이다. 김우창 교수는 3년 전 코로나의 공포가 엄습하는 상황에서 메멘토 모리의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중세 시대에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은 삶의 의미를 심각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소재였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명상은 삶의 한계, 죽음의 공포를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궁극적으로 공포를 넘어서 사랑이나 박애로 사람의 마음을 열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지구적 재앙 코로나19 확산 속 되새겨보는 ‘메멘토 모리’』, 중앙 SUNDAY 2020. 3. 28.).

중세에 처음으로 호스피스(hospice)가 생겨난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 말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성지 순례자나 여행자가 쉬어가던 휴식처에서 유래되었다. 여행자가 질병으로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되면 그곳에서 치료와 간호를 받게 되었다. 국어사전에 호스피스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두 가지 뜻이 나온다. 하나는 ‘죽음이 가까운 환자를 입원시켜 위안과 안락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특수 병원’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베푸는 봉사 활동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 호스피스의 시초는 1965년 강릉 갈바리 의원에서 임종자 간호를 시작한 데에 있는데, 그 법적 기초는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면서 마련되었다. 이 법의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다. 법률의 명칭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법은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와 연명의료제도에 대해 규율하고 있다. 완화의료는 질병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증상을 완화시켜 편안하게 삶을 유지하는 데 목적을 둔 의료를 말한다. 따라서 존엄하고 편안한 생애의 마무리를 위한 기본적인 법제도는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에 참석하였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에는 비대면으로 회의를 하다가 최근에 비로소 대면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에서는 제1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19~2023)의 마지막 해인 2023년의 시행계획을 심의하였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를 두고, 호스피스와 연명의료에 관한 종합계획을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건복지부장관이 5년마다 수립·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시행계획의 주된 내용은 호스피스 제공 유형을 다양화하고, 호스피스 대상질환을 확대하며, 호스피스 전문기관의 지역별 편차를 해소하는 것이다.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에 참석할 때마다 뜨거운 열기를 느낀다. 현장에서 호스피스 업무를 직접 다루는 위원들의 열정과 아쉬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완치가 불가능한 말기 암환자나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은 죽음을 앞두고 심한 통증이나 호흡곤란 등의 신체적 어려움과 함께 불안감, 두려움, 우울감 등을 경험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모든 병에 걸린 말기 환자가 호스피스 전문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암, 만성호흡부전, 만성간경화,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말기 진단을 받거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이용할 수 있다. 입원형, 가정형, 방문형이 있는데, 입원형은 암환자만 이용할 수 있다. 호스피스 이용가능 질환이 확대되고 가정형 호스피스가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호스피스 제도를 이용하면 사망 1개월 전에는 일반 치료보다 의료비용을 60% 이상 절감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매우 저조하다. 입원형 호스피스 이용 환자가 2021년에 1만 9,185명 정도이다. 우리나라 암 사망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2020년을 기준으로 할 때 23% 정도로, 영국 95%, 미국 50.7%, 대만 30%에 비해 매우 낮다. 이용을 하면 좋다고는 하는데 무엇이 좋은지, 어떻게 이용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계의 인식수준도 낮다. 연명의료제도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반면, 호스피스 제도는 덜 알려져 있다.

호스피스 제도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병상수가 부족하여 뒤늦게 입원을 하여 하루 이틀 만에 사망을 하거나 대기를 하던 중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 와중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코로나 병상으로 전환되기까지 하여 어려움이 더 컸다. 호스피스 전문병원 나름대로는 운영에 필수적인 손익을 맞추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활동보조금만으로 손해를 메울 수 없어 문을 닫는 호스피스 전문병원도 속출하고 있다. 지역적 편차를 해소하는 문제도 시급하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과 맞물려 고령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고령사회에서는 말기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서 나아가 무겁고 괴로운 마음의 짐을 함께 나누면서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료 서비스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의료는 사람을 치료나 처치의 대상으로 본다. 그러나 호스피스 제도는 인생 말기에 사람을 돌봄의 대상으로 본다. 죽음을 생각하며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지만, 현실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호스피스 제도는 존엄한 삶과 죽음을 위한 제도이다. 이 제도가 현실 사회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말기 환자가 생애 마지막까지 존엄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글 전현정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 파트너 변호사)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파트너 변호사다. 한국여성
변호사회 부회장,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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