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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칼럼] 육아휴직 해고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의 시사점
[여성 칼럼] 육아휴직 해고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의 시사점
  • 이복실
  • 승인 2023.10.15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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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 그녀에게서 만나고 싶다는 카톡이 왔다. 그때 난 여행 중이었다. 왜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동안 그녀는 육아휴직 부당해고로 회사 측과 소송 중이었다. 무려 수억 원대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소송이다. 육아휴직으로 해고되어 노동청에 구제신청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손해배상 청구는 처음 들어보았다. 그녀의 말로는, 육아휴직 신청을 했는데, 회사 측에서는 신청에 관하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딱 세 줄짜리 근로 계약 기간 종료로 인한 해고통지였다. 그녀는 계약직‧무기계약직이다. 그러나 계약직 근로자도 육아휴직 사용이 가능하다. “육아휴직 신청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어요.”라고 그녀는 강조했다.

회사 측에서는 그녀가 육아휴직을 신청한 것을 정말 몰랐을까? 노동청에 복직신청을 하기보다 바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까닭은 무엇일까? 금액은 어떻게 산정된 것일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양쪽이 다 다를 것이다. 회사는 계약 기간 만료로 인한 고용계약해지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계약 기간 만료 직전에 육아휴직을 내면 안 되는 건지, 고용계약해지의 원인이 무엇인지, 육아휴직의 진정성에 관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지금 양쪽의 의견을 따지고, 분석하자는 것은 아니다. 법정에서 시시비비는 가려질 것이다. 결과가 어찌 나오든 이번 소송결과는 육아휴직에 관한 중요한 정책적 함의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이유에 대하여 그녀는 이렇게 답변했다. “민사소송을 낸 것은 판례를 남겨 육아휴직 부당대우를 근절하기 위해서예요.” 실제로 본인이 육아휴직 소송을 제기했다는 기사가 보도되고 나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여성들이 연락을 취해왔다고 했다. 육아휴직은 남성들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해고되었을 경우, 본인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고통받게 된다. 외국의 경우에는 부당 해고될 경우 수십억 수백억 원대 소송이 제기된다고 한다, 그리고 “억울해도, 소송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냥 참는 것 같아요.” 다툼 자체가 주는 갈등과 상처도 큰데, 다니던 회사와의 법적인 다툼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그녀는 소송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인내심을 강조했다. “소송하려면, 힘들고 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을 버티려면 인내심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녀는 버틸 수 있고, 끝까지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해고 과정을 거치면서 중요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바로 기업문화의 중요성이라고 했다. “기업문화가 조직원의 만족도나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소통하며, 배려하는 기업문화를 가진 기업들이 성과를 낼 수밖에 없음을 느꼈다고 했다. “기회가 되면 우수한 기업문화를 가진 기업에 투자하는 기업문화 펀드도 만들고 싶어요.”라고 앞으로의 계획도 밝혔다.

육아휴직은 여성의 점유물이 아니다

육아휴직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육아휴직은 여성들의 점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하여, 여성들의 경력단절 예방을 위해, 부부가 함께 육아를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 모 공공기관의 정책자문위원회에 외부 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 기관의 육아휴직 현황과 방향이 안건으로 올라왔다. 그 기관 인사책임자는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기관은 남성은 육아휴직 기간이 1년인데 반하여, 여성은 특별히 육아휴직을 1년 더 추가하여 2년이에요.” 단체협상으로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어디 이게 자랑할 일인가. 놀랄만한 일이다. 그것은 육아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고 단정 짓는 것이다. 가사와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전통적 사고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놀라운 것은 여성들도 문제를 못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육아는 여성의 점유물이 아닌, 남녀가 함께 나누어야 하는 공동 책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근로조건은 남녀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남녀별로 제한이나 예외를 두는 것은 진정한 양성평등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나는 육아휴직 기간을 1년이든, 2년이든 남녀 똑같이 하라고 시정을 요구하였다. 인사책임자는 처음에는, 여성에게 혜택을 더 주는 데 왜 문제 삼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지만, 곧 상황을 이해하였다. 외부 위원 임기가 끝나서 그 이후 어찌 정리되었는지 확인하지는 못하였지만, 잘 정리되었으리라 예상한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경우에는 남녀 모두 육아휴직 2년인 회사도 많이 있다. 롯데그룹은 남성 육아휴직의무화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앞서가는 대기업도 있지만, 육아휴직을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기업도 있다. 이렇게 기업마다 육아휴직을 보는 관점이나 처리 방법이 다르다.

그러면 우리나라 육아휴직 정책을 살펴보자. 육아휴직은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 근로자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하여 신청할 수 있다. 현재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 제3항은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금지하고, 육아휴직 기간 중 당해 근로자를 해고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위반할 경우 같은 법 37조 2항 벌칙조항에 근거하여 사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고 되어있다. 지난해 전체 육아휴직자 수는 13만1087명이다. 2021년 11만555명 대비 18.6% 증가하였다. 바람직한 것은 남성 육아휴직자 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도 남성 육아휴직은 전체 육아휴직자 중 26.3%이다.

지난 8월 정부에서 내년도 육아휴직 정책 변화를 발표하였다. 내년 하반기부터 육아휴직 급여 기간이 기존 12개월에서 18개월로 연장되는 것이 큰 변화이다. 단, 정부는 부모 모두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에만 6개월을 추가로 더 준다고 강조했다. 여성만 육아휴직을 쓰는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부공동 육아를 조건으로 6개월을 추가한 것이다. 이 제도는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시행하고 있는 아빠 할당제와 상통하는 개념이다. 육아휴직 기간을 6개월 더 연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지만, 육아휴직 일 년도 버거워하는 중소기업의 현실은 안타까운 상황이다.

육아휴직 해고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회사에 제기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이야깃거리와 시사점을 주고 있지만, 소송으로 가기 전에 양자가 소통하고 논의하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분명히 회사 측에서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직장을 서로 노력하여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고, 일과 가정 양립이 조성된 기업문화가 어서 정착되기를 기대해본다.

글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 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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