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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여성 정책 연구의 힘
[여성칼럼] 여성 정책 연구의 힘
  • 이복실
  • 승인 2023.11.11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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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9일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클라우디아 골딘(Claudia Dale Goldin)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를 선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노벨위원회는 선정이유로 “골딘 교수는 여성의 소득과 노동 시장 참여에 대하여 최초로 종합적인 설명을 제공했으며, 여성 소득과 노동 시장 참여의 변화와 성별 격차의 주요 원인을 밝혔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아직도 여성은 세계 노동 시장에서 과소대표되고 있으며, 노동으로 얻는 수입도 남성보다 적다고 노벨위원회는 지적했다. 현지 언론들은 노벨 경제학상에 여성 경제학자가 단독으로 선정된 점과 고용에서의 남녀격차에 관한 연구로 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경제학에서는 여성고용연구는 핵심연구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상소감에서도 그 의미가 그대로 드러난다. 골딘 교수는 취재진에게 수상소감으로 “여전히 남녀 간 임금 격차가 왜 큰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사람을 위해 매우 중요한 상”이라고 말했다.

골딘 교수는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축적된 미국 노동 시장 관련 자료를 분석,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별에 따른 소득과 고용률 격차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피고 그러한 차이의 원인을 규명했다. 남녀임금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사회적 차원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등 일과 삶이 양립 가능한 사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골딘 교수는 특히 기업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 포용적인 정책을 갖고 있다 해도 직장 내 문화는 여전히 정책을 따라가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골딘 교수 외에도 노벨 경제학상은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 연구자가 있다.

고용에서의 성희롱을 성차별 개념으로 정립한 맥키넌 교수

성희롱, 성폭력 연구에서 중요한 금자탑을 쌓은 캐서린 앨리스 맥키넌(Catherine Alice MacKinnon)은 미국의 저명한 법학 교수이자 변호사이다. 그녀의 여성 문제에 관한 관심은 연구와 학문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작가와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예일대 법대 교수를 거쳐서 현재 미시간대학 로스쿨의 종신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7년에 고용에서의 성희롱이 성차별의 한 형태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최초로 발표하였다. 논문에서, 성희롱, 성적 괴롭힘 개념을 최초로 정립하였고, 고용에서의 성희롱은 성차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녀의 주장과 이론은 현장에 바로 적용되었다. 미국은 고용 평등기획위원회(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를 설립할 때부터 맥커닌 교수의 ‘성희롱 금지제도의 모델 이론’을 제도화한 것이다. 성희롱을 남녀 차별의 한 형태로 간주하고 시정과 개선을 시작하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1995년 우리나라 법령에 성희롱이라는 용어가 처음 도입되었고, 1999년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이 제정되었다. 그해 7월부터 남녀차별개선위원회를 설립하여 성희롱 사건을 신청받기 시작하였는데, 맥키넌 교수의 이론이 접목된 미국 고용 평등기획위원회의 모델을 많이 참조하였다. 이렇듯, 우리나라 성희롱 예방 및 방지 정책의 수립 및 발전에도 맥키넌 교수의 공로는 지대하다. 성희롱이 남녀 차별이라는 인식은 사회 전반에 큰 변화와 지각변동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1980년대만 해도 성희롱은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색도 못 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으니 어디에 호소할 곳도 없었다. 선배들은 말했다. “너희들은 좋은 세상에 사는 줄 알아.” 성희롱이 차별이며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불과 20년 전이지만, 남녀를 떠나서 ‘해서는 안 되는 언행’이라는 인식은 빠르게 정착되었다.

맥키넌 교수의 연구와 활동은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다. 성폭력, 성매매, 인신매매와 포르노그래피 등 성 착취 문제에 대해 폭넓게 연구하였다. 그녀는 2019년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초청으로 방한하였는데, 간담회에서 한국의 시위에서 본 ‘내 삶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를 자신이 본 가장 강렬한 문구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블로그에는 그녀의 발표가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맥키넌 교수는 “결국 타인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디지털 성범죄는 포르노그래피와 무관하지 않다”라고 강조하였다. 디지털 성범죄의 문제를 예측한 것이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삶이 끝난 건 아니다. 피해 생존자를 지지하며 함께 싸우는 많은 사람이 있고, 당신은 피해 경험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가치를 만들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용기를 주었다. “수치심을 가져야 할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타인의 성을 대상화하고 침해한 사람들의 몫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새겨들어야 할 따끔한 충고이다.

우리나라에도 여성 정책연구원이 1983년 설립되어, 여성 정책 지원을 위한 많은 정책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한 연구 중 기억나는 연구는 정부위원회 여성 참여 확대방안이다. 이 정책제안은 정부에서 수용하여, 양성평등기본법에도 반영되었으며, 지금 모든 정부 부처에서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이 정책의 결과로, 많은 여성 전문가들이 정부위원회에 민간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위원회 활동을 통하여 정책 수립에 기여하면서, 정책 경험을 쌓을 수 있었으니 여성들의 전문성 제고와 경력개발에도 크게 이바지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여성 정책연구에 매진하는 많은 학자에 의하여 원인이 분석되고 개선대책이 제시된다. 현 상황의 문제점을 깨닫게 하니,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학문의 발전으로 사회가 발전하는 것에는 여성 정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골딘 교수와 맥커닌 교수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대를 앞서가는 연구 덕분에 세상은 바뀌고 있었다.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정책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글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 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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