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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법] 연예인 전속계약
[여성과 법] 연예인 전속계약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23.11.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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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조 신인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는 올해 초 발표한‘큐피드’가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과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 직후 이 그룹은 소속사와 전속계약에 관한 분쟁으로 또 한 번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그룹은 소속사의 계약위반과 신뢰 관계 파괴를 주장하며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계약의 효력 중지에 관한 가처분 신청을 하였다. 제1심 재판부가 이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대하여 이 그룹이 항고를 하였다. 이 분쟁으로 연예인 전속계약에 관한 분쟁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전속계약 가운데 주로 문제되는 것은 연예인과 소속사가 맺은 전속매니지먼트계약이다. 소속사나 매니저는 연예인의 연예업무 처리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연예인은 소속사나 매니저를 통해서만 연예활동을 하고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서는 연예활동을 하지 않을 의무를 진다. 이것이 전속매니지먼트계약의 주요 내용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근무할 때 유명 탤런트와 매니저 사이의 재판을 맡은 적이 있다. 이 사건은 다행스럽게도 조정으로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모든 분쟁은 초기 대응이 중요하지만, 연예인 관련 분쟁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분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분쟁이 장기화되면 그로 인한 비용과 손해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소송으로 세간에 알려지는 분쟁은 빙산의 일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연예인 관련 분쟁이 있을 것이다.

매니저는 연예인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며 연예인의 모든 것을 관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 출연 등 스케줄 관리뿐만 아니라 출연료 협상이나 광고, 홍보 등의 업무도 맡는다. 일정이 바쁜 유명 연예인일수록 매니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소속사는 연예활동과 관련한 매니지먼트 업무를 위임받아 수행한다. 매니지먼트 업무를 맡은 소속사는 사무처리에 대한 대가로 연예활동과 관련하여 발생한 모든 수입을 자신이 수령한 다음, 비용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 중 일정 비율을 연예인에게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전속계약이 장기간으로 체결되다보니 연예인으로서는 비용 등을 어떻게 정산하는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연예인과 소속사 사이에 정산금 관련 분쟁이 생기기도 하고, 소속사가 파산하는 경우에는 오랜 기간 일한 대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연예인으로서는 출연료 등을 누가 받고 어떠한 방식으로 정산을 할 것인지를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국민MC로 지칭되는 유재석도 이런 분쟁에서 피해갈 수 없었다. 소속사 파산으로 인해 10년 동안이나 미지급 출연료 소송을 한 적이 있다.

연예인 전속계약 해지에 관해서는 국악 소녀 송소희가 소속사와 6년 가까운 공방을 벌인 끝에 대법원 판결을 받은 사건이 유명하다. 계약기간을 2013년 7월부터 2020년 7월까지 7년으로 하는 전속계약을 체결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송소희의 차를 운전하던 소속사 대표의 동생이 다른 사람에 대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사실이 알려졌다. 송소희의 부모는 업무배제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는 전속계약의 당사자 사이에 신뢰관계가 깨어지면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법원은 전속계약의 해지를 인정하였다.

전속계약은 연예인의 영향력과 인지도, 전속의 정도에 따라 계약 내용이 달라진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시절에 계약을 체결하면서 너무나 불리한 내용으로 자신을 속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또한 갑자기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고 해서 소속사가 들인 노력과 공을 무시한 채 태도를 갑자기 바꿔버리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고자 전속계약 표준계약서가 마련되어 있으나, 여전히 불충분하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워낙 커지다보니 분쟁도 많아질 뿐만 아니라 양상도 다양해진다. 스포츠 선수들이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른 구단이나 단체와 접촉을 하는 것을 템퍼링(tempering)이라고 하여 논란이 되었는데, 연예계에서도 민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전속계약에서 당사자 사이에 고도의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전속계약에 따라 연예인이 부담하는 전속활동의무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다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깨어졌으면 당사자들이 전속계약을 해지하여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예인 전속계약도 계약의 일종이다. 계약은 약속이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하는 것처럼, 계약을 했으면 계약에 따라야 한다. 신인이라고 해서 계약에서 마음대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계약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고 해서 모든 운명이 계약서에 씌어 있는 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소속사는 연예인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여 연예인에게 계약의 의미와 내용을 설명하고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연예인의 권리와 소속사의 권리를 균형 있게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뒤늦게 전속계약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리는 것은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K-POP을 뒷받침하는 공정한 K-Contract를 기대한다.

글 전현정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파트너 변호사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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