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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여자들’ ‘벤처하는 여자들’의 수장, 여성과총 오명숙 회장
‘과학하는 여자들’ ‘벤처하는 여자들’의 수장, 여성과총 오명숙 회장
  • 신규섭 기자
  • 승인 2023.11.19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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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총 20년 역사, 여성과학인들과 국가 과학기술에 기여"
2022년부터 여성과총을 이끌고 있는 오명숙 회장.
2022년부터 여성과총을 이끌고 있는 오명숙 회장.

 

2003년 창립된 (사)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여성과총)은 자연과학, 공학, 환경, 에너지, 의학 등 과학기술계를 총망라한 여성과학기술단체 80여개와 약 8만명의 회원을 가진 국내 최대 여성과학기술단체 연합회다. 20년의 역사를 가진 여성과총은 여성리더 육성과 여성과학자 지원, 여성과학기술계 정책제안, 전문성을 활용한 사회공헌사업 등 다양한 공익적 사업을 하고 있다.
오명숙 회장은 2022년 1월부터 여성과총을 이끌고 있다. 제11대 회장인 그녀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와 텍사코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1994년부터 홍익대 신소재화공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이사장,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년의 임기를 마무리 하며, 여전히 ‘여성과총 20주년 회보’ 제작으로 바쁜 그녀를 테헤란로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만났다. 
서가에 꽂힌 책들이 인상적입니다. ‘과학하는 여자들’, ‘벤처하는 여자들’……제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여성과총이 하는 사업 중에 출판이 있습니다. 이공계 출신 여성들이 어떤 분야에 진출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리는 일의 일환입니다. ‘과학하는 여자들’, ‘벤처하는 여자들’ 등은 시리즈로 기획한 건데, 꾸준히 판매되고 있습니다. 책이 나오면 지원금으로 책을 사서 중고등학교에 배포도 하고, 북토크도 가집니다.”

모두가 소중하겠지만, 특히 애정이 가는 책이 있습니까?
“글쎄요…, 번역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행 우주 속의 소녀’, ‘세상을 연결한 여성들’ 같은 번역서들요. 이런 책들은 임원들한테도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코로나19 바로알기’라는 책도 의미가 있는 책입니다. 여성과총에서 활동하는 여성과학자들이 직접 쓴 책인데, 코로나19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이 녹록치 않아도 매해 한권의 책은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책 출판이 주요 업무는 아닐 텐데요.  
“그렇죠. 여성과총의 중요 사업 중 하나가 멘토링인데, 그 일환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성과총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과학인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국가 과학기술에 기여하는 게 연합회가 만들어진 목적입니다. 그런 일들을 통해 전체 여성들의 역할을 높이는 거죠. 우리사회가 여성이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성이라서 받는 미세한 차별이 있습니다. 미세한 차별이 모여 큰 차별이 되고요. 한국보다 앞선 선진국에서도 여성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는 꾸준히 나오고 있거든요.”

특히 과학·기술계에 여성 차별이 심한 듯합니다. 오래 전이지만,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세 개의 성이 존재한다. 남성, 여성, 공대 여성.’ 그만큼 공대에 진학하는 여성들이 적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한국 와서 그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예비고사를 남기고 미국으로 갔거든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직장생활도 그곳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홍대 교수로 다시 한국에 왔는데, 그때 그런 말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미국은 그래도, 여성 차별이 한국보다는 덜할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미국도 여성 차별 문제에선 자유롭지 못합니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는데, 아마 한국에 있었다면 의대에 갔을 겁니다. 그런 면에선 한국보다 조금 나을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당시 화공과 정원이 80명이었는데, 여성 동기는 4명 뿐이었거든요.”

화학공학과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공학 중에서는 제가 잘 하는 과목들이 화공과 1, 2학년 교과과정에 많았습니다. 그래서 화학공학을 전공했고, 나름 잘 해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졸업 후 취업했을 때 임금이 가장 높은 과이기도 했고요. 한 분야 전문가로 살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한 몫을 했고요.”

학교에서는 불편함이 없었습니까. 
“그때는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제가 다닌 UC버글리는 화학대학이 독립되어 있었고, 전공으로 화학과와 화공과가 있었는데 화학과에는 여교수도 있었습니다. 학부 때는 차별을 잘 인식하지 못했죠. 그런 생각은 마흔살이 넘어서 하게 된 듯합니다.” 

그럼에도 동기 중에 여성은 별로 없었고요?
“그런 문제를 의논할 여성도 주변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게 지금 제가 여성과총 일을 하게 된 배경이 된 건지도 모릅니다. 말씀대로 학부 뿐 아니라 대학원에서도 여성은 별로 없었습니다. 박사 자격 심사에 11명이 지원했는데, 여성은 저를 포함해 2명이 전부였거든요. 그러면서 어떤 교수가 여성을 차별하는지, 어떤 교수가 여성 커리어를 지원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게 됐습니다.”

동료애도 남달랐겠습니다.     
“그렇죠. 아기 낳은 동료가 있으면 협력해서 베이비 샤워도 하고요. 앞장서서 그런 일을 주동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고 가신 곳이 미국 국립연구소였군요. 
“국립연구소인 로렌스 리버모어((LLNL)는 연구원만 8천여명이고, 그중 박사급이 3천명 정도인 곳입니다. 대부분이 석·박사인, 편안한 과학자들의 직장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런데 제가 연구소에 다닐 때 여성단체에서 여성과 남성 직원의 급여를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근속 연수 등을 기준으로 임금을 비교한 건데, 시간이 지나면서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통계를 토대로 소속 에너지국에 항의를 했고, 한참 후에야 합의가 이루어져서 몇 년에 걸쳐 임금이 조정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회장님도 비슷한 경험을 하셨나요?
“좋은 학교를 나와서 첫 임금은 높았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급여가 낮아졌습니다. 이상해서 논문도 많이 발표하고 했지만 큰 변화가 없었어요. 그 외 여러 이유로 기업연구소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오 회장은 연말에도 '여성과총 20년 회보'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오 회장은 연말에도 '여성과총 20년 회보'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한국에 돌아오신 게 1994년인데요, 그 과정은 순탄하셨습니까.
“채용 과정 등에서 미국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서울서 출퇴근이 가능한 대학 몇 곳에 지원을 했지만, 유일하게 홍익대학교에서만 합격을 했어요. 교수 면접에서도 인터뷰 내용의 90%가 여성과 관련된 한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미국과는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미국에 있을 때 채용을 위해 다양한 인터뷰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전에 성별, 인종  등과 관련해 삼가야 할 질문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런 질문에 대한 고민이나 문제 의식이 부족했습니다.”

홍익대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그런 문제들과 부딪혔을 듯합니다. 그런 이유로 더 열정적으로 여성과총에 참여하게 되신 것 같습니다.   
“그럼 셈입니다. 저 뿐 아니라 여성과총과 인연을 맺은 많은 분들이 그렇습니다. 겪어온 게 있기 때문에 열정과 헌신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후세들은 우리와 같은 차별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거죠.”

여성과총이 2003년 출범했으니, 올해로 꼭 20주년을 맞습니다. 20년이란 세월동안 변화도 있었을 텐데요. 
“‘자질 함양’이라고 말이 ‘역량 강화’로 바뀐 정도. 그렇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야에서 변했다고는 하지만 숫자로는 여전히 성차별이 존재하거든요.”

정확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20년 동안 GDP와 R&D 등은 엄청 나게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여성과 관련된 숫자의 증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순위가 뒤처지는 분야가 많지만, 그중 여성과 관련된 것이 유달리 많습니다.”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의 숫자가 여전히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산업·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비중이 전체의 15%에 불과합니다. 여성 뿐 아니라 소수라서 겪는 문제가 항상 있거든요. 처음부터 동등한 취급을 받았다면 15%보다는 높아야죠. 대학도 마찬가집니다. 현재도 전체 여성 중 이공계 진학 비율이 11%에 불과합니다.”

성평등 이슈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에서도 꾸준히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미국은 성평등 이슈를 다양성, 포용성 등의 개념으로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에 반해 유럽은 여전히 성평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면에서 유럽이 조금 앞섰다고 할까요. 유럽은 전공자의 약 30%, 산업계에서 활용하는 인력도 30%대가 여성입니다.”

최근 한국 여성의 사회참가율과 관련한 조사가 발표되었습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30대 여성의 사회참가율은 높아진 반면, 그 연령대의 자녀출생률은 낮다고 합니다. 조사업체는 결국 낮은 출산율이 장기적으로 한국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국가적인 이슈입니다. 그 이유를 30대 여성의 사회참가율에서 찾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육아가 여성의 경력 개발 과정에 큰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일한 요인은 아니라고 봅니다. 40대 여성, 그들의 경력 단절 이유를 조사해보면 결국 여성에게 불리한 직장 환경을 언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별 없이 직장에 다닌다면, 도중에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이 있을까요? 해외에서는 그런 문제를 보다 중요시합니다.”   

여성, 그 중에서도 과학·기술분야에서 차별이 심각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런 의미에서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성들이 좀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봅니다.”

여성과총은 80여 단체의 연합체입니다. 연합회 리더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걸 실현하기 위해서 다양성 증진과 포용적 문화 확산이 선결돼야 하고요. 11대 여성과총이 내건 캐츠프레이즈도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이었습니다.”

특히 포용성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차별을 많이 받은 세대입니다. 그러다보니 포용성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게 됐습니다. 요즘은 암묵적 차별을 무시할 수 없는데, 그런 차별이 모여서 큰 차별이 됩니다. 여성들의 차별에 대한 인식 제고, 확산 그게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들도 도움도 필요하고요. ”

인식의 제고와 함께 사회적 시스템도 뒷받침 돼야겠습니다. 
“가깝게는 채용 등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의 자료를 보면 여성이 남성에 비해, 흑인이 백인에 비해 암묵적 차별을 받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글로벌 기업인 구글에서는 이런 차별을 없애기 위해 이력서 이름, 출신학교, 성별 등을 제외하고 평가합니다. 인터뷰에서도 직무관련 질문만 해야 합니다. 우리도 그런 노력이 있어야 평등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리더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여성과총은 단체장의 리더쉽 뿐 아니라 시니어급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리더십에 관심이 많습니다. 유럽이 그렇거든요. 유럽은 이사회 여성 참여율을 40%까지 요구합니다. 그걸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 중심에 리더 양성이 있습니다.”

2년, 여성과총을 이끌면서 아쉬운 점은 없으셨습니까.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웃음) 교수 출신이라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 이유로 제대로 된 수학, 과학 교육과정을 모니터링하는 전문가 그룹을 만들고 싶었는데 실행을 못했습니다. 그 외에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과 포용성 관련 워크샵도 4번 모두 했고, 자료집을 만들어 발전의 토대도 만들었고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모든 게 가능했습니다.”  

최근에도 여전히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여성과총 20년사도 발간하고 ‘2030 비전’도 세웠습니다. 최근에는 ‘20주년 기념 회보’ 만드느라 마지막까지 바쁘네요. 이런 일들이 한국의 여성 과학·기술계가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신규섭 기자 사진 지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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