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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10 [주민증 일제 갱신]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10 [주민증 일제 갱신]
  • 김도형
  • 승인 2023.12.26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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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흑백사진관 김도형 사진작가 첫번째 에세이집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온라인 연재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사진 김도형 (인스타그램 photoly7)

 

고등학생 때 사진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읍내 서점에서 산 사진 관련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 때 서점을 들락거리면서 사진 전문 월간잡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월간 사진'과 '월간 영상'이 그것이었다.

학교공부는 작파한지 오래여서 수업시간에 사진관련 책과 잡지들을 읽었다.

사진잡지를 보니 유독 카메라 광고가 많았다.

사진관에서 빌린 올림푸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니콘 캐논 등의 SLR 카메라는 정말 회가 동할 만큼 갖고 싶었다.

니콘 캐논은 넘볼 수 없었고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미놀타 XD5'에 마음이 쏠렸다.

광고를 보고 또 보았는데 화중지병이 따로 없었다.

그때 그 카메라를 갖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컸으면 지금도 그 광고의 카피를 외운다.

'미놀타 XD5는 전문가의 의도를 백퍼센트 만족시켜 주는 카메라로서 세계최초로 GGG 시스템이라는 노출방식을 채택하여....' 로 시작되는 꽤 긴 문장의 카피다.

그렇게 카메라 장비병을 앓던 어느 날 아버지께 카메라를 사달라고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광고가 있는 잡지를 보여드리면서 내가 요즘 사진이라는 장르의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촬영을 다니는데 이 카메라가 꼭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아버지는 선뜻 '알았다'고 하셨다.

그 카메라의 가격은 30만원 가량이었고 웬만한 대학의 등록금에 해당했다.

아버지가 카메라를 사주겠다고 한 배경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읍내 싸전을 넘긴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라 돈이 좀 있었고, 또 하나는 그 때가 정부에서 시행한 전국민 주민증 일제 갱신 기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민증 갱신을 위해서는 증명사진이 필요했는데 아버지가 읍내 사진관에 증명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사진관에 구름같이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시고 사진이 돈 되는 기술이라는 것을 알고 선뜻 내 요구를 들어준 것이었다.

나는 그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진 확대기까지 사달라는 말씀을 드렸다.

사진예술의 완성은 본인이 찍은 필름을 직접 현상하고 인화까지 해야 된다는 설명도 당연히 곁들였다.

확대기는 읍내 사진관에서 내놓은 낡은 중고 물건 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꿈에 그리던 카메라 구입에 더해 확대기까지 가지게 되는 신기원을 이루게 되었다.

위 사진은 그 카메라로 찍고 그 확대기로 인화한 최초의 작품이다.

확대기로 노광한 인화지를 인화액에 넣었을때 백지에서 서서히 피어오르던 영상은 차라리 마술에 가까웠다.

그 신비함과 신기함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사진속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메주를 쑤고 계시다.

빨랫줄에는 내 유년의 시린발을 감싸던 양말이 걸려 있다.

아버지 어머니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간지 오래고 사진에 보이는 시멘트 마당에는 그 오랜 세월동안 흙먼지가 날아와 쌓여 나무가 울창하게 자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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