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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법] 공개 소환과 인권
[여성과 법] 공개 소환과 인권
  • 전현정
  • 승인 2024.01.28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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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 유명 연예인이 경찰 수사를 받던 중에 생사를 달리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다. 공개 소환 장면이 보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서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그 직후 문화예술인 2,000여명이 이 사건 수사에 관한 진상규명과 입법적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평생을 살면서 재판을 받는 경험을 하는 사람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다. 10명 중에 한 명쯤은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한국법제연구원의 2019년 법의식실태조사에 따르면, 본인이나 주변 지인 중에 재판과 관련된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서 ‘있다’가 13.8%, ‘없다’가 86.2%로 나타났다. 재판 경험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재판을 받게 되면 원고가 되었든 피고가 되었든지 간에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 형사 사건의 피고인이 된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여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범죄가 있다면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수사기관은 범죄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서 혐의자를 소환하여 조사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죄 혐의가 있다고 해서 무차별적으로 공개 소환을 하는 것은 법적 근거도 정당성도 없다. 공개 소환으로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고 인권이 침해된다면, 인권이 존중되는 법치국가라고 할 수 없다. 유명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수사를 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수사기관으로부터 공개 소환을 당하여 포토라인에 세워져서도 안 된다. 포토라인은 집중촬영을 위한 정지선을 가리킨다. 그러나 정작 영어에는 이에 정확히 대응하는 말조차 없다. 범죄 혐의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혐의자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면 그 자체로 수사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11조 제1항에서는 “형사상 범죄 혐의로 기소당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변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법적 보장이 되어 있는 공개재판에서 법에 따라 정식으로 유죄 판결이 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정한다.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라고 정한다. 이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범죄혐의에 대해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도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무죄로 추정되는 범죄 혐의자를 공개 소환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장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수사는 두 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 수사는 범죄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국가작용이다. 인류 역사에 범죄가 없어지지 않는 한 수사는 계속 존재한다. 그러나 수사에는 그 강제성으로 말미암아 부정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기 마련이다. 수사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법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게 된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수사가 적법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엄격한 규정을 두고 있다. 여기에서 나아가 법무부는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 요소를 없애고자 2019년부터 「인권보호 수사규칙」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그동안의 수사관행을 개선함으로써 수사절차상 국민의 인권을 보다 두텁게 보호하려고 하였다. 또한 사건관계인의 공개 소환 금지가 담긴 「형사사건의 공보에 관한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수사의 또 다른 축인 경찰은「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서 사건관계인 출석 정보 공개 금지를 명문화하였다.

「형사사건의 공보에 관한 규정」에서는 수사공개 금지와 사건관계인 출석 정보 공개 금지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원칙적으로 수사공개를 하지 못하게 하면서, 예외적으로 수사공개를 허용하고 있다. 예컨대 강력 범죄인지, 중요사건으로서 언론의 요청이 있는 등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경우인지에 따라 수사단계별 공개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한다. 사건관계인의 출석 정보 공개와 관련해서는 수사공개가 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건관계인의 출석 일시, 귀가 시간 등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경찰의 경우에도 사건관계인의 출석·귀가·호송에 대한 일시·장소 등의 정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

수사공개와 공개 소환은 별개의 문제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범죄의 종류에 따라 수사대상자의 혐의나 실명에 대한 공개 여부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공개 소환은 인격권과 초상권을 침해한다. 수사를 받는 것 자체보다 공개 소환으로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것이 더욱 치욕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공개 소환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데도, 공개 소환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과 경찰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감수성이 떨어져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수사 과정에서 인권이 제대로 자리매김 하려면 검찰이나 경찰의 수장이 먼저 인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업무는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챙겨야 한다. 수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사건 관련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사례를 없애야 한다.

글 전현정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파트너 변호사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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