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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18 [백운형]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18 [백운형]
  • 김도형
  • 승인 2024.03.15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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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흑백사진관 김도형 사진작가 첫번째 에세이집 '망원경을 가지고 싶어한 아이' 온라인 연재
통인시장흑백사진관 김도형 작가의 풍경- 춘천 2024 [인스타그램 photoly7]
통인시장흑백사진관 김도형 작가의 풍경- 춘천 2024 [인스타그램 photoly7]

 

경성대 사진학과의 실기시험이 이론 지필시험으로 치러진다는 사실을 알고 백운형 형님을 떠올렸다.

운형 형님은 동네에서 함께 자랐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갔다.

형님이 가려리 삼촌 집에 자주 내려온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서울에 있는 형님께 전화를 했다.

근자에 가려리에 올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마침 일이 있어서 온다고 해서 올 때 책 한 권 사올 것을 부탁했다.

그 책은 이론 시험에 꼭 필요한 '사진기술개론' 이라는 책이었다.

당시 사진학과 입시생에게 그 책의 공부는 필수였다.

마산이나 진주의 서점에 전화를 해봤는데 없어서 부득이 운형 형님께 부탁한 것이었다.

전화한지 얼마되지 않아 형님은 책을 사서 내려왔다.

서울서 그런 전문서적이 있는 대형서점까지 일부러 나간다는 것은 여간 번거롭지 않은 일인데 기꺼이 책을 구해준 형님이 고마웠다.

나는 암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초등학교때 '국민교육헌장 먼저 외운 사람 순서대로 집에 가기'에서 교실문을 제일 먼저 나선 학생이 나였다.

'사진기술개론' 책 한권을 외울 정도로 공부했다.

시험 날이 되어 시험지를 받아보니 객관식 50 문제가 출제되어 있었다.

수십 권의 사진 책과 잡지를 탐독하고 사진기술개론 까지 외운 나로서는 그것은 문제라고 할 수도 없었다.

'사진기술개론'에서 많은 문제가 발췌되어 있었다.

십여 분 만에 답안지에 답을 표시하고 문제 옆 공란에 서술형으로도 답을 다는 여유까지 부렸다.

예를들어 '다음 보기 중 필름의 감광재료를 고르시오'라는 문제의 답은 '할로겐화은' 이었는데, 공란에 '필름은 빛에 민감한 물리적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할로겐화은을 투명한 셀룰로이드 바탕에 발라 만든 것이다'라고 적는 식이었다.

답을 서술형으로 부연해서 썼다고 해서 점수를 더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합격의 열망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반증했다.

시험을 보러온 학생들의 숫자를 보니 중앙대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상당한 경쟁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론 시험은 당연히 만점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력고사 점수도 일정 부분 반영되었기 때문에 합격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발표날이 되어 학교로 갔다.

운동장에 설치한 게시판 앞에는 합격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겨우 비집고 게시판 앞까지 간 나의 시선은 깨알같이 적힌 수많은 이름 속에서 '김도형' 이라는 글자에 고정되었다.

내가 대학생이 된 순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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