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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 도편수에게 듣는 ‘좋은 한옥 이야기’
이성우 도편수에게 듣는 ‘좋은 한옥 이야기’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7.15 0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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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재발견

한옥의 재발견

이성우 도편수에게 듣는 ‘좋은 한옥 이야기’

 

친환경적인 삶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증가하면서 옛 것에서 답을 찾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의 전통 주거문화인 한옥. 흙과 나무 등 친환경적인 재료를 이용해 탄생하는 한옥에 대해 40년 가까이 나무와 함께 살아온 도편수 은당(銀堂) 이성우 선생을 만나 물었다.

취재 | 황정호 사진 | 권오경 자료제공 | ‘전통 한옥 짓기’(황용운·발언 출판사)

이성우 도편수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나무를 잡았다. 소목으로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그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흐 르는 동안 여러 기연을 통해 이제는 대목장 이수자이자 도편수(집을 지을 때 책임을 지고 감독하는 지휘자)로 살아가고 있다. 경복궁과 창덕궁을 비롯해 전국의 수많은 전통 건축물, 크고 작은 사찰의 대웅전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런 그에게 최근 불고 있는 한옥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반갑기만 하다. 흙과 나무의 장점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콘크리트 숲에 묻혀 살다 보면 사람들이 메말라간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는 더욱 확고한 신념이 묻어난다.
“한옥의 장점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죠. 장마철에는 나무의 특성상 습기를 빨아들이기도 하고요. 콘크리트가 독성을 뿜어내는 것과 달리 나무는 숨을 쉬면서 몸에 좋은 물질을 방출합니다. 또 원하는 바에 따라서 마루를 만든다든지, 부분적인 보수와 증축도 쉽고요. 아파트와 다르게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많아요.”

한옥에 부는 변화의 바람

 

“사람은 흙, 나무하고 어우러져 사는 게 제일 좋아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전부 흙에서 뒹굴면서 자랐는데, 그땐 잔병치레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죠. 그런데 요즘에는 아토피니 뭐니 해서 고생하는 아이들도 많고… 그런 문제는 한옥에서 살면 생기지 않아요. 친환경적이라는 게 다른 것이 없어요.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죠.”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대부분의 도시 사람들이 당장 한옥 집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그런 이들을 위한 한옥 아파트나 한옥 호텔 등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 은퇴를 앞둔 사람들 중에는 한옥을 짓고자 궁리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분위기는 한옥을 짓는 사람으로서 새삼 느끼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들어 한옥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좋은 현상이죠. 특히 어떤 지자체에서는 자체적으로 지원을 해서 한옥을 짓기도 하고, 예전보다는 보편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한옥을 짓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사실 돈이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만, 서울에 아파트가 평당 1천만원이 넘는 경우를 보면 그렇지도 않죠.”
그가 지적하는 한옥에 대한 고정관념은 또 있다. 너무 거창하고 화려한 것만을 선호한다는 것. 사실 한옥은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크기가 커질수록 관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작게 지으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성우 도편수는 “한옥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편리한 주거공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정집은 그에 맞는 규격과 방법을 따라 지어야 해요. 사실 예전 한옥집이 간격도 좁고 불편한 점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요즘은 외형은 한옥의 형태를 갖추되, 내부는 현대식으로 변화를 줘 생활하기 편리하게끔 만들고 있어요. 큰 틀에서 한옥을 너무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죠.”
한옥에 있어 변치 않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재료라고 할 수 있다. 그 우선으로 꼽는 것이 좋은 목재, 그 다음이 흙이다. 더구나 요즘은 황토벽돌과 같이 현대식 한옥에 걸맞는 값싸고 개량된 재료도 나오고 있어 취사선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비싸다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요즘에는 건축비를 낮추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전통기와 대신 양기와를 사용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래도 나무만큼은 좋은 것을 써야 해요. 사실 좋은 소나무를 구하기는 쉽지 않아요. 큰 나무를 구하기 힘드니까 웬만한 것은 수입목을 쓰고 있는데 우리나라 소나무로 지으면 훨씬 좋죠. 소나무 송진에서 나는 은은한 솔향은 몇 년을 두고 계속 우러나거든요. 재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좋은 한옥이 될 수 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집은 한옥으로 지어놓고 내부는 시멘트 벽돌을 쌓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것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왕에 지을 거면 제대로 지어야죠.”
한옥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제대로 된 전통 건축 전문가가 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필요하지만, 요즘은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속성 교육을 받고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나 걱정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다.
“나무의 성질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주변 환경에 따라 변화가 심한 특성상 뒤틀리거나 갈라지는 경우가 흔하거든요. 한옥은 짜맞춰 만드는 결구 방식이기 때문에 갈라진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나무가 숨을 쉬면서 습기를 배출할 때 터지는 것이거든요. 세월이 가면 갈수록 맞물리는 부분은 더욱 견고해지고 튼튼해지죠. 옛 궁궐 같은 건축물을 해체하고 보수하려 하면 맞물린 부분이 잘 빠지지 않아서 애를 먹을 정도니까요. 한옥은 지금도 서까래 밑으로는 못을 쓰지 않아요. 제대로 된 한옥을 짓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전문가의 의견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한옥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과의 조화다. 예로부터 주변 경관과 처마 선(線)의 어울림을 중시했던 것 역시 그러한 이유다. 때문에 좋은 한옥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터를 잡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약간 지대가 높으면서 뒤에 산이 있어 자연경관과 어우러지고 앞이 훤히 트인 곳이 좋아요. 예전 향교를 비롯해 좋은 한옥은 대부분 그러한 터에 자리잡고 있죠. 반면 서울 북촌 같은 경우는 사실 한옥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는 공간이에요. 공간적인 한계로 처마를 남의 집 담 밖으로 빼지 못해 자연스럽지 못하고, 내부에서 공간을 넓게 쓰려고 하니 한옥의 멋이 안 나거든요.”

평생을 나무와 벗하며 살아온 삶

 

대목장으로서 그의 인생은 평생 나무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나무의 특성을 열거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신바람이 느껴진다. 나무를 통해 사람과 세상의 이치에 대해 깨닫기도 한다는 그. 남  보기에 한옥의 재료라고 할 수 없는 나무도 그의 손을 거치면 훌륭한 재목(材木)이 된다.
“나무의 생김새나 특성을 봐서 적시적소에 맞게 써야만이 집이 살아날 수 있어요. 크다고 해서 다 좋은 게 아니고, 반듯하다고 해서 또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휜 것 은 휜 나름대로 사용될 곳이 있죠.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어요.”
소목으로 가구를 제작하는 평범한 목수였던 그가 오늘날의 대목장이 될 수 있었 던 것도 그의 남다른 재주를 알아본 스승들과의 인연 덕분이다. 그가 처음 대목을 접한 것은 2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경기도 김포의 집 근처에 위치한 ‘대중사’의 종각 건축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그때 대목장 이중구 선생 밑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그후부터 부산 범어사 대성암 을 짓기 시작해 법주사  등의 공사를 하면서 전통건축 대목장으로 일하게 됐죠.”
전통건축을 시작한 마당에 본격적으로 파고들기로 결심한 그는 이후 궁궐 등 전통건축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혔던 신응수 선생을 찾아가 궁궐 건축을 시작했다. 1년이면 크고 작은 전통 건축물을 열 동 이상 지었던 시간들… 그는 그 시기를 “평생 지을 수 있는 집은 다 지었다”고 회고한다.
“보통 목수들은 1년에 많아 봐야 서너 동밖에 못 지어요. 그에 비해 저는 신응수 선생 곁에서 일을 하며 1백 동 이상을 지은 거죠. 그렇게 보면 목수로서 제가 평생 지을 집은 이미 다 지은 셈이죠. 이제 앞으로 제가 짓는 집은 하나의 작품이라 여기고 있어요. 최선을 다해 제대로 된 집을 짓고 싶은 거죠. 제가 짓는 집이 몇백 년을 갈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전국 곳곳에 그의 손을 거친 전통한옥과 궁궐, 사찰 건축물 중 최고의 역작이라고 한다면 역시 ‘전주객사’라고 할 수 있다. “완전한 해체 보수라서 어려움이 많았던 공사라 기억에 남는다”는 그. ‘전주객사’를 비롯해 지금도 자신의 손길이 간 건축물을 지날 때면 한 번씩 둘러보며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나름대로 다 애착이 가요. 어디 하나가 더하고 덜하고 하는 건 없죠. 건물 하나를 완성했을 때 사람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전통건축을 하는 입장에서 자부심도 있지만 책임감도 크니까요. 제가 일을 잘 못하면 저 혼자 욕 먹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건축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누가 되는 일이니까요.”
오랜 세월 한국의 전통건축을 업으로 삼아온 대목장으로서 그의 또 다른 계획은 아직까지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는 한옥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말 속에서 숨길 수 없는 ‘한옥 사랑’이 느껴진다.
“한옥은 창이 많아 단열이 잘 안 된다고 하지만, 지금은 이중, 삼중 문을 하니까 많이 보완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 한옥체험이라는 것도 있는데, 하루쯤 가서 자보고 어떻게 좋은지 많은 사람들이 느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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